대구 간송미술관에서는 김정희(金正喜,1786~1856)탄신 240주년을
기념하여 "추사의 그림수업"이라는 제하로, 2026.4.7~ 7.5일 까지
특별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데, 특히 이번 전시에는 유명한 세한도가
전시되고 있으며, 단 세한도는 5월 10일까지만 전시된다고 한다.

추사의 그림수업
이번 전시회에서는 추사의 예술세계는 물론
추사와 제자들의 예술적 교감을 살펴보는 것으로 추사의 회화작품을
총 망라하는 미공개 작품 7건을 포함 총 47건 67점을 전시하고 있다.

입구의 추사영정

추사 김정희 영정(보물. 이한철, 1857) ~ 추사(秋史), 시대를 열다
추사 사망 이듬해인 1857년 제자 이한철이 그려낸 초상화 정본이다.
추사 김정희는 19세기 조선 문인화의 격조를 한 단계 높였는데,
그 핵심은 산수와 묵란에 적용된 담박하고 예스러운 필묵법에 있다.

추사 김정희의 완당 세한도(歲寒圖) ~ 국보 제180호
세한도의 크기는 23 X 69.2 cm로, 추사 김정희가 귀양 시절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북경에서 귀한 서책인 120권 79책짜리
황조경세문편을 구해와 유배지 제주도까지 가져다 준 것에 감명해
그렸다고 전하며, 이 때 추사 김정희는 "가장 추울 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
있구나."라면서 날씨가 추워진 뒤 제일 늦게 낙엽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답례로 그려준 것이다.

그림 왼쪽에는 자신의 발문과 청대 16인의 찬시 등
그림 끝에 작화 경위를 담은 작가 자신의 발문과 청대 16명사들의 찬시가
적혀 있고, 이어 뒷날 이 그림을 본 김정희의 문하생 김석준(金奭準)의 찬문과
오세창,이시영(李始榮)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옆으로 긴 화면에는 오른쪽에 "세한도"라는 제목과
"우선시상"(우선 이상적에게 이것을 줌) "완당"이라는
관서를 쓰고, "정희" 와 "완당"이라는 도인(낙관)을 찍었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청나라로 가져가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를
비롯한 청나라 문인 16명에게 제찬(시문)을 받아 장대한 두루마리 형태로
꾸몄으며, 이것을 다시 조선으로 가지고 돌아온 후 문인 3명에게
또 제찬을 받았는데, "세한도"는 시(詩), 서(書), 화(畵), 인(印)의 한중
서화교류의 서사가 깃든 문인화의 정수로 세한도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청나라의 문인 조무견의 제찬
추사라는 이름 일찍 들어는 보았으나 아쉽도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네.
우여곡절 끝에 가시에 상처를 입고, 몸은 곤궁하나 도는 변함이 없네.
푸르름이 동심(冬心)을 품고, 꿋꿋이 서리와 눈에 굽히지 않네.
서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먼저 이 시로 인사하노라.

세한도는 이상적(李尙迪) 사후에 민씨 일가로 넘어갔다가
경성제국대학의 중국철학 교수로 고미술 수집가이자 완당 매니아였던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의 손에 들어갔으며, 후지츠카는 완당의 서화나
그에 대한 자료를 매우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서예가 손재형이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여 세한도를 양도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손재형이 세한도를 양도받은 지 석 달이 지난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후지츠카의 서재가 모조리 불타버리면서 그가 수집한
완당의 수많은 작품들도 함께 사라졌는데, 세한도는 운명처럼 살아남았다.

세한도 두루마리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손재형은 일본에서 세한도를 받았으나, 이후 정치에 투신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세한도를 내놓았고,
해당 그림을 개성 출신의 갑부였던 손세기(1903~1983)가 인수했다.
이후 그림은 손세기의 아들인 손창근이 소장하고 있다가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새한도 파노라마
손세기, 손창근 부자(父子)는 많은 부를 축적한 것을 사회에
나눈 것으로 유명한데, 부친 손세기는 1974년 서강대학교에
"양사언필 초서"(보물)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고, 아들 손창근도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억대의 재산을 국립중앙박물관과 KAIST 등에
기증했으며, 이후 2018년 부친과 본인이 수집했던 컬렉션 304점을 기증했는데,
당시 세한도는 기탁 형식으로 남겨두었다가 2년 뒤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계산무진(谿山無盡)
계산무진(谿山無盡)이란 "계산은 끝이 없네"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완당 김정희(1786~1856)가
자신보다 12살 아래인 계산 김수근에게 추사체로 써준 글씨이다.
추사 김정희 서예 작품의 특징을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고사소요(高士逍遙, 보물) ~ 고상한 선비가 소요하다(김정희 19세기 중반)

소림모옥(疎林茅屋, 보물) ~ 성근 숲속의 초가 집(김정희,19세기 중반)
소림모정(疏林茅亭, 보물) ~ 성근 숲속의 띠풀 지붕 정자

묵란(墨蘭) ~ 먹으로 그린 난초(김정희, 19세기 중반)

삼십만매수하실(三十萬槑樹下室) ~ 삼십만 그루 매화나무 아래 집(김정희, 1853년경)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 예술의 높고 낮음을 풍평한 기록(김정희, 1849)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은 1849년 제주 유배지에서 돌아온
추사 김정희가 제자 8인의 서화를 직접 품평하여 엮은 책이다.

추사의 여덟 제자
8인의 제자 중 허련과 유재소는 남종문인화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이다.
이한철,박인석,조중묵,유숙은 어진(御眞) 제작에도 기여한 뛰어난 도화서
회원들로 초상화의 정교한 기술에 추사의 문인화풍을 접목한 섬세한 산수화를
선보였다. 전기와 김수철은 추사가 강조한 탈속의 미를 참신한 감각으로
재해석해 문인화의 지평을 열었으며, 이들의 화풍은 조선말기 서화 전통이
근대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왼쪽부터 ~ 추수계정(유재소,劉在韶,1829~1911), 고촌모애(박인석,朴寅碩, 19세기),
계당납상(김수철,金秀哲 ?~1888이후), 추림독조(조중묵,趙重默, 1820~1894이후)

왼쪽부터 ~ 소림청장(유숙,劉淑,1827~1873), 추산심처(전기,田琦, 1824~1854)
추강만촉(허련,許練, 1808~1893), 죽계선은(이한철,李漢喆, 1812~1893이후)

편주척서(片舟滌暑) ~ 조각배 하나로 더위를 씻어낸다(허 련, 19세기)

소림모옥(疏林茅屋) ~ 성근 숲의 초가 집(허 련, 19세기)

제주 망경루(望京樓) ~ 제주 음성과 한라산을 그린 산수화(허 련, 19세기)
허련이 제주 유배중인 추사를 찾아가 그림을 그리고 찬문을 받은
소치작품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최근 환수되어 이번 전시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묘암근수(茆庵近水) ~ 물 가까운 띠풀 집(허 련, 19세기)
산촌우제(山村雨霽) ~ 산 마을에 비가 개다(허 련, 19세기)

고목쟁영(古木崢嶸) ~ 고목이 우뚝 솟다(허 련,19세기)

관산한가(關山閑暇) ~ 변방 산의 한가로운 여가(유재소, 19세기)
죽림괴석(竹林怪石) ~ 대나무 숲과 기이하게 생긴 돌(유재소, 19세기)

산관소요(山館逍遙) ~ 산속 집에서 소요하다(조중묵, 19세기)

동원수류(東園垂柳) ~ 동쪽 정원의 늘어진 버들(조중묵, 1886)

오송강(吳淞江) ~ 중국 태호에서 발원한 강(조중묵, 19세기)

연강조어(烟江釣魚) ~ 안개 낀 강에서 물고기를 낚다(유 숙, 19세기)

운계선관(雲溪仙館) ~ 구름 시내의 신선의 집

강호한거(江湖閒居) ~ 강과 호수의 한가로운 거처(이한철, 19세기)

조산루상월(艁山樓觴月) ~ 조산루에서 달빛 아래 마시다(유 숙, 1870)

추산원천(秋山遠天) ~ 가을 산과 먼 하늘(이한철, 19세기)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 매화 숲속의 서재(이한철, 19세기 말)

백매(白梅) ~ 흰 매화(조희룡, 19세기)

매화서옥(梅花書屋) ~ 매화 숲속의 서재(유숙, 19세기)

승주심매(乘舟尋梅) ~ 배를 타고 매화를 찾다(조중묵, 19세기)

홍매(紅梅) ~ 붉은 매화(조희룡, 19세기)

홍백매도(紅白梅圖) ~ 붉고 흰 매화그림(조희룡, 1851년경)

설중한매(雪中寒梅) ~ 눈 속의 시린 매화(김수철, 1859)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 매화 숲속의 서재(허련, 19세기)

묵매(墨梅) ~ 먹으로 그림 매화(허련, 19세기)

묵매(墨梅) ~ 먹으로 그림 매화(조희룡, 19세기)

매화서옥(梅花書屋) ~ 매화 숲속의 서재(전기,1849)

매화서옥(梅花書屋) ~ 매화 숲속의 서재(조희룡, 19세기)

죽창문설(竹窓聞雪) ~ 죽창에서 눈내리는 소리를 듣다(김수철, 1859)

야주어적(夜舟漁笛) ~ 밤배에서 부는 뱃사공의 피리소리(김수철,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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