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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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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물염.창랑적벽과 물염정(勿染亭) 화순 적벽은 동복천 상류와 영신천 유역의 크고 작은 붉은 색의 수직 절벽으로, 붉은 색 때문에 적벽(赤壁)으로 불리게 된 경승지이다.동복천의 상류인 창량천 유역에는 약 7km에 걸쳐서 절벽경관이 발달하고 있는데,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물염적벽, 창랑적벽의 4개가 가장 크며, 이중 이서적벽이라고도 불리는 노루목적벽이 가장 크고 수려하다. 물염정 입구 조선 중종(1506~1544) 때인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현으로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이 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소동파가 선유하며 유명한 적벽부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라 부른것이 화순적벽의 이름이 되었다. 물염정(勿染亭)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찾았던 상류의 노루목적.. 2026. 9. 8.
독립운동가이자 선비의 모범, 조병의(曺秉儀) 반곡(盤谷) 조병의(曺秉儀, 1910~2008) 선생은광주농업학교에 재학중이던 1928년 6월, 교내 항일학생결사인 광주농업학교 독서회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길렀으며, 민족차별을 자행하는 악질 일본인 교사의 추방운동을 전개하며 동맹휴학을 주동하기도 했다. 화순군 동복향교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광주농업학교의2학년 책임자로서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학생들을 동원하다가 일제 경찰에체포되었고 이로 인하여 1930년 초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동복향교 입구 또한 독서회 활동과 관련하여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한조사를 받다가 1930년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예심에서 면소로 석방되었다.출옥 후 그는 고향 화순군으로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면서, 1935년 3월고향에 야학을 설치하여 농촌.. 2026. 9. 8.
대청호 호반길의 아름다운 정원들 가을의 문턱 9월에 대청호반길의 아름다운 정원들을 거닌다. 대청호 500리길의 중심 명상 정원과 천상의 정원 숲속길에서 호반을 넘어 숲사이로 불어오는 조금은 더운 가을을 만난다. 대청호 명상 정원 천상의 정원 하와이 무궁화 백년초와 보라색무릇 시원한 대청호 영지버섯 운지버섯(구름버섯) 숲속의 종 그림같은 풍경들 부옥잠(부레옥잠화) 쿠르쿠마 ~ 태국 원산지 피커렐위드(물옥잠과) 사계장미(핑크 홋꽃) 돌아오는길 시인 정지용 생가의 피리부는 아이 고향 ~ 시인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2026. 9. 4.
안동 락고재 하회 한옥호텔의 멋 옛것을 즐기는 집, 하회 한옥호텔 락고재를 둘러본다.하회마을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락고재는 모두 한옥건물이다.지난 2026년 5월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하회 한옥호텔 락고재 입구 완전 한옥의 멋이 풍긴다 정자 옛 정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정자 연못의 풍취 순 한옥으로만 지어져 옛 멋이 한껏 풍기는 민속마을을 한바퀴 도는 기분이다. 2026. 9. 2.
"가노라 삼각산아" 의 김상헌 유허지 목석거 안동 풍산읍 서미리의 우뚝한 바위 위에 건물이 한채있다.이름하여 빗집바우에 "목석거(木石居)"라는 암각서가 새겨져 있는 조선시대 문신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유허비와 비각이다. 목석거와 김상헌의 유허비(각) 이 암각서(巖刻書)는 조선후기 안동부사였던 김학순(金學淳)이 1820년 7대 조부인 청음 김상헌을 기리기 위해 새긴 글이다.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은 병자호란 이후 벼슬에서 물러나 이곳 안동으로 낙향하여 만석산 자락에 초가를 짓고"목석거 만석산방"이라 이름 하였는데 바로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목석거 경진 중춘 선생 7대손 본부사 학순근서(木石居 庚辰 仲春 先生 七代孫 本府使 學淳謹書) 암각서는 "경진년(1820년) 봄 선생의 7대손 본부사 학순이 삼가쓰다"라고 되어 있.. 2026. 9. 2.
의령 벽화산 수암사와 서울올림픽 법고 의령 벽화산 수암사는 1995년에 창건된 최근의 사찰이지만333기의 관음보살상이 길게 이어진 곳의 보천사지 삼층석탑은고려전기 보천사터에 세워진 석탑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이곳이 의령지역의 신성한 공간으로 존재해온 것은 분명하다. 의령 벽화산 수암사 의령 보천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사찰로,그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절에 빈대가 많아 살기가 힘들자 승려들이 다른 절로 떠나게 되어 곧바로 폐사되었다고 하며, 조선 중기 이전에 이미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절터에는 이 탑 외에도 보천사지 승탑이 남아있다.천왕문 의령 수암사는 특히 봄에 벗꽃이 피었을 때 절경으로 소문나 있다.현재의 가람 건물들은 대부분 1995년 수암사 창건당시 건물들로 이제 30여 년이 조금 지.. 2026. 9. 1.
의령 상정리 상원재와 창녕조씨 고가 의령의 창녕조씨 사직공파는 창녕조씨 갱기 1세인 송무, 송군,송학 중 송학(松鶴)을 1세로하여, 2세는 필화(弼和), 3세는 적(適), 4세는 익기(益奇), 5세는 단(端), 6세는 신량(臣亮)이며, 7세가 사직공파의 파조인 사직공 조려(曺呂)이다. 상원재(上元齋) ~ 사직공파 종중재실 의령 화정면 상정리에는 430여 년전 사직공파의 지파인현감공파(縣監公派) 4세손인 조계헌(曺季憲, 11세)이 이곳 상정리로 입향하여 정착하면서 창녕조씨 세거지가 되었다. 벽송당(碧松堂) 현감공파 1세인 조충가(曺忠可, 8세)는 당시 함안에 거주하였는데, 2세 조달하(曺達夏, 1469~1494)는 의령 가례면 수성리로 이거하였고,4세손인 조계헌(曺季憲,1537년생, 후릉참봉, 11세)은 둘째 아들로 임란 시 함안 남쪽 7㎞.. 2026. 8. 31.
운무속의 앞산 밤새 소리없이 비가 내린날 아침, 앞산 중허리에 하얀 운무가 드리워 운치를 더해준다. 그리고는 서서히 산정으로 오른다. 2026. 8. 30.
석당 조세우의 동명 소술재(紹述齋) 칠곡군 동명 구덕리에 있는 소술재(紹述齋)는 창녕조씨 칠곡 동명입향조 석당(石塘) 조세우(曺世虞,1483~?)를 추모하기 위하여1935년 조병선이 건립한 재실로, 정면 6칸, 측면 1칸 반 규모이다. 동명 소술재(紹述齋) 조세우는 창녕 고암에서 부사를 지낸 조상겸(曺尙謙)의 아들로4형제 중 2남으로 태어났으며, 아호는 석당(石塘), 자는 백원(伯元)이다.어릴 때부터 기개가 높고 도량이 넓었으며, 타고난 자질이 강직했다. 소술재 대청 1513년(중종 8) 진사시에서 정흠, 회재(晦齋) 이언적, 태두남,송희규 등과 함께 합격했으며, 이어 급제하여 정언(正言)이 되었다.1537년 성균관 생원으로 있으면서 권신인 김안로와 허항 등의 탄핵에앞장서서 세 차례나 상소하여 사림의 기강을 세운 강직한 성품을 가졌다. .. 2026. 8. 29.
고령 송곡마을의 봉강 조상선생 후송재 고령 다산 송곡리 봉강 조상(曺塽)의 후송재(後松齋)를 찾는다. 봉강 조상(曺塽)은 임재 서찬규(臨齋 徐贊奎)와 간재 전우(艮齋 田愚) 문하에서 수학하여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유학자이다. 후송재 표석 기호 낙론계열의 학통을 이었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고령군 다산면 송곡촌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1938년 문인들이 봉강선생을 기리고자 후송재를 건립하였으며, 후송재(後松齋)는 고령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후송재 정문 조상(曺塽)은 10세 때 아버지의 명으로 임재 서찬규(臨齋 徐贊奎)의문하에서 학문에 대한 뜻을 돈독히 하고 힘써 실천하여 수제자가 되었으며,스승은 칠조훈(七條訓)인 “입지지대(立志之大), 입심지정(立心之正),진실심지(眞實心地), 과실필개(過失必改), 절문.. 2026. 8. 26.
장성 백양사와 천진암의 늦여름 장성 백양사는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늘 새로운 느낌을 준다. 특히 단풍이 곱게든 가을이나 눈덮인 겨울풍취가 일품이긴 하지만봄이나 여름에 찾아도 너무좋아 대한민국 명성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원한 분수와 백학봉 여름의 백암산 더위로 바위에 배를 깔고 앉은 암닭 천진암으로 천진암 계곡 백양사 비자나무숲 ~ 천연기념물 제153호 난대기후에서 자생하는 비자나무는 내장산국립공원이 북방한계지다.피톤치드 물질인 테르펜 성분인 리모넨이 41~44%, 알파피넨이38~43%로 가장 많은데, 이 성분들은 스트레스 감소와 살충 및항우울증, 항산화 근육완화, 함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거북바위 천진암 전경 대웅전과 동.서탑 천진암 가람 천진암 야생화 ~ 옥잠화, 팥꽃, 능소화, 큰도둑놈의갈고리 백양사 쌍계루 대가람 백.. 2026. 8. 23.
고창 월암마을 조서(曺庶)의 정산사(鼎山祠) 고창 월암마을의 정산사(鼎山祠,사당)와 정산강당을 찾았다.정산사는 청간공 조서(曺庶)와 조의기(曺義起) 조언징(曺彦徵)세분을 향사하는 조선후기의 사당 건축물이다. 정산사(鼎山祠,사당) 외삼문(정문) 조서(曺庶)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중(汝衆), 호는 청간(淸澗)으로고려 후기에 진사를 거쳐 1392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산기상시,예조참의, 한성부윤 등을 역임한 고려말, 조선초기의 문신이며청간공파의 파조이다. 왼쪽 건물이 정산사, 오른쪽 건물은 정산강당 청간공(淸澗公) 조서(曺庶)는 창녕조씨 갱기 1세인조송무(曺松茂)의 5세손으로 조원유(曺元宥,4세)의 아들이며조원유는 창녕에 묘소가 있는 조원계(曺元桂)의 막내 동생이다. 정산강당 입구 전경 청간공의 상계 약보를 살펴보면 始祖 ①曺繼龍 ― ② 應神 ― ③ .. 2026. 8. 22.
상주 덕암산 활공장에서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8월 19일)이고, 처서는 23일이다.아침저녁으로는 숲속에서 풀벌레소리가 들려오니 분명 가을이가까이 오고 있는가본데 한낮으로는 아직까지 무덥기만하다.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상주 덕암산에 올라 가을바람을 불러본다. 상주 덕암산(덤바우) 낙동강 경천대가 눈아래 보이는 시원한 풍경 백령풀꽃이 피기 시작 밤의 요정 달맞이꽃 홍도까치수염 상주 활공장의 바람은 고요 2026. 8. 18.
창녕 고암의 태복경공 설단과 재실들 중훈대부 태복시경의 창녕 고암 제단을 찾아보고 상계를 살펴본다.창녕조씨(昌寧曺氏)의 시조(始祖)는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의사위인 조계룡(曺繼龍)이며, 중시조(中始祖)는 고려(高麗)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사위인 조겸(曺謙)이시다.이후 혼돈의 시기를 거쳐 갱기(更起)로 다시 정리하여, 조겸의16세(世)인 송무(松茂), 송군(松君), 송학(松鶴) 삼형제를 1세로 하고있디. 태복경 설단(제단)비 ~ 창녕 고암 간상리 둘째인 송군의 7세손인 조흥(曺興)은 고려말 중훈대부(中訓大夫) 태복시경을 역임하였으며, 태복경공파(太僕卿公派)의 파조가 되었다.송군(松君)의 후손으로는 태복경공파(太僕卿公派)가 유일하다.조흥(曺興)의 부(父)는 조한우(曺旱雨), 조부(祖父)는 조식(曺寔)이다.그는 상림(上林), 중림(中.. 2026. 8. 14.
주세붕선생의 무산서당과 무릉사(사당) 주세붕(周世鵬, 1495~1554)선생은 조선 명종때의 문신, 학자로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 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 손옹(巽翁)이며 고려 말에 고조가경상도 합천에 우거했으나, 아버지대에 함안 칠원(漆原)으로옮겨살아 칠원에서 출생(일설에는 합천)하였다. 무산서당과 무릉사(사당) 전경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여러관직을 거쳐 1537년 곤양군수(昆陽郡守),1541년 풍기 군수가 되었다. 이때 사림 및 그들의 자제를 위한교육기관으로 1543년 백운동서원(白雲洞=紹修書院)을 건립했는데,사묘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을 지닌 우리 나라 최초의 서원이 되었다. 무산서당 입구의 무릉동천 문화지향(武陵洞天 文華之鄕) 1.. 2026.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