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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종택,고택,생가55

봉화 법전마을 경체정과 고택 둘러보기 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은 법전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예조좌랑과 승지를 지낸 강윤(姜潤),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완(姜浣), 가의대부를 지낸 강한(姜瀚) 삼형제의 우애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로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강태중​(姜泰重)​이 1858년(철종 9)에 지은 정자이다. 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 정자는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의 정사각형 건물이다.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8호(2017.5.15 지정)이다. 경체정(景棣亭) 편액 정자의 이름은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있는 형제의 우애를그린 글에서 취했다고 하며, 정자의 정면 오른쪽 현판은 추사 김정희,왼쪽 현판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의 친필이다.. 2024. 10. 29.
영양 주실마을의 조지훈 생가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趙芝薰,1920∼1968)이 태어난영양 주실마을은 일월산 남쪽자락에 있으며, 조지훈 시인이태어난 호은종택(壺隱宗宅)은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이곳에는옥천종택(玉川宗宅) 등 많은 문화자원들이 있다. 마을 입구 주차광장의 조형물 조지훈의 본명은 동탁(東卓)이며, 1946년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청록집의 시편들에서는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 선(禪) 세계 등을 노래하였다.  조지훈은 어릴 적부터 서당 교육을 받았고, 검정고시를 거쳐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합격했으며, 일제식 교육은 받지 않았다.1941년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부터 사망할 때까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 2024. 10. 23.
여헌 기념관과 모원당(남산고택) 여헌기념관은 구미(인동) 출신의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그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던 동락서원 맞은편에 건립하였다. 여헌기념관 전경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선생은 벼슬에 뜻을두지 않고 학문에 힘써 당대 유학을 선도했고 왕과 대신들에게 도덕정치 구현과 정치개혁을 촉구하였다. 여헌기념관 입구의 표지판(석)과 여헌선생 좌상 여헌기념관은 국.도.시비 18억원과 자부담 5억원 등 23억원을 들여3천647㎡(1,204평) 부지에  2층 규모의 기념관을 건립(2008~2014)했다.기념관은 상설전시실, 시청각실, 사무실, 수장고, 기획전시실,강의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문집, 부채, 우의 등 유품 16점을 비롯해생애를 다룬.. 2024. 8. 21.
최철견의 경산 난포고택(蘭圃故宅) 난포고택은 경산 용성면에 있는 조선전기의 건축물이다.난포(蘭圃)는 영천최씨 시조 최한(崔漢)의 14세손 최철견(崔鐵堅)의 아호이며,  난포고택(종택)은 그가 1546년(명종 원년)에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에 전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1975년) 되어있다. 난포고택 대문 1809년(순조 7)경의 막새기와와 1817년(순조 16)의 상량문이 있어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안채, 아랫채, 사당채, 수오당(守吾堂)이현존하며, 대문간채,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채, 방아실채 등 일부는최근세에 복원하였고, 수오당도 용산(龍山)에서 이건하였다. 난포종택 표석 최철견(崔鐵堅,1548~1618)의 본관은 영천(永川, 윗대는 전주에서 분파),자는 응구(應久).. 2024. 6. 16.
합천 묵와고택 (陜川 默窩古宅)과 육우당(六友堂) 합천 묘산면에 있는 묵와고택은 국가민속문화유산 제 206호이다.이 고택은 가야산에서 뻗어 내린 깊은 산속의 화양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에 선전관을 역임하였던 윤사성(尹思晟,1557~1619)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고택의 명칭은 윤사성의 고손자인 묵와 윤우(默窩 尹楀,1784~1836)의 호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묵와고택 입구 묵와 고택은 윤사성의 10대손인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의 생가이기도 하다. 대문채 대문을 닫아 놓아 내부를 볼수없는 아쉬움이 있었으나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문간채의 가운데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가면‘ㅜ’자형으로 동향한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의 우측에는 중문채가 있다.중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안채가 있으며, 안채 마당을 지나면.. 2024. 4. 27.
거창 동계종택(桐溪宗宅)과 반구헌(反求軒) 거창 동계종택(居昌 桐溪宗宅)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鄭蘊)이 태어난 집으로 1820년(순조20)에 중창(다시 지음)하였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05호이다.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거창 동계종택 사랑채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이며,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호는 문간(文簡) 이다. 남명 조식의 학맥을 이었으며,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칩이 지났는데도 설산인 금원산 1610년(광해군 2) 진사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설서·사서·정언 등을 역임, 1614년 부사직으로 재임하던 중 영창대군의 처형이 부당함을 상소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제주도 대정에서 10년간.. 2024. 3. 6.
상주 운곡마을과 의암고택 구름도 쉬어 가는 곳, 상주 운곡마을은 예법과 규범이 정연한 양반촌으로, 인심이 순후하고 풍요로운 마을이다. 아침에 마을 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하다하여 운곡(雲谷)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풍양조씨의 전통적인 세거지로서 일명 "갈가실" 이라고 한다. 운곡마을 안내도 운곡마을에는 의암고택(依巖古宅)과 청간정(聽澗亭), 유신당(維新堂), 양교당(養敎堂), 경신당(敬愼堂) 등의 고택들과 수령 500년 이상의 고목들, 마을 공동우물이 남아있고, 특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상화강암이 있다. 마을입구 담장 의암고택 골목 의암고택 앞 의암고택의 안채는 1800년경에 모임당 연안 이씨와 큰아들 조식이 지었고, 다른 건물은 현 소유자의 조부인 만당(晩堂) 조태연(趙泰衍,1877~1934)이 1910년에 기존의 낡은 건물들을 .. 2024. 3. 1.
명성황후 생가와 감고당 명성황후는 "풍전등화의 조선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여걸" 이다.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 생가는 1687년(숙종 13)에 처음 지어졌다. 본래 이 집은 숙종(肅宗)의 비(妃)였던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1701)의 부친이자 명성황후의 6대 조부인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묘가 마을 뒷산에 있어 묘를 관리하는 묘막(墓幕)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여주의 능말이라 불리는 마을(능현동)에 남서향으로 지어졌다 명성황후 생가 행랑채 명성황후는 이 집에서 민유중 묘를 관리하던 직계 후손 민치록(閔致祿)과 한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8세 때(1858)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민자영(명성황후) 시절의 유일한 사진 민자영(명성황후의 어린 시절 이름)은 8살 때 아버지 민치록이 사망하자 친척집.. 2024. 1. 17.
지수면 승산 부자마을 이야기 진주 지수면 승산 부자마을 안내도에 의하면 "부자의 기(氣)가 흐르는 역사의 마을 !" 이라는 구호아래 "600년 전통의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오는 승산 부자마을은 김해허씨와 능성구씨가 300년 이상 사이좋게 살아온 유서깊은 마을로 많은 기업인이 태어나고 꿈을 키운 터전입니다." 라고 시작한다. 지수 승산부자마을 안내도 또 "승산 부자마을 가운데 있는 100년 역사의 옛 지수 초등학교는 금성(LG.GS), 삼성, 효성 창업주가 다녔고, 구태회 LS그룹 명예회장,허정구 삼양통상 회장, 허준구 GS그룹 명예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등이 다녔던 대한민국 기업인의 산실입니다." 라고 되어있다. 더 이상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설명 그대로이다. 유명 기업인들이 다녔던 지수초등학교(1921년 개교) 전경 지.. 2023. 12. 17.
1조 7천억원의 기부왕 관정 이종환 생가 관정(冠廷) 이종환(李鍾煥) 생가는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 있다. 그는 "평생 거지 같이 벌어서 천사처럼 쓰겠다."고 말하며 살아왔고, 악착같이 벌어서 1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삼영그룹을 만들었으며 평생모은 1조 7천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한 후 세상을 떠났다. 이종환 생가 후원의 관정헌(冠廷軒) 전경 이종환은 1923년 5월 의령에서 태어나 2023년 9월 13일 별세했다. 꼭 백수를 채우고 떠난 그의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관정(冠廷)이다. 마산고를 졸업한 후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1945년 태평양전쟁 시 일본 측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 수료에 그쳤으며 이후 만주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사선을 넘나들다 종전을 맞아 귀국했다. ​ 이종환 생가 대문채 해방 후 고향으로.. 2023. 12. 16.
영양 한양 조씨 사월 종택 영양읍 하월리에 있는 한양 조씨 사월 종택(漢陽 趙氏 沙月 宗宅)은 영양에 처음 입향한 조원(趙源, 1511-?)의 손자 조임(趙任, 1573~1644)이 1602년에 건립한 조선시대의 종가(宗家)로, 북쪽의 야산을 뒤로하고 남쪽으로는 반변천과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사월 종택(沙月 宗宅) 전경 이 건물은 "ㅁ"자형 본채와 좌측의 방앗간채, 우측 후면에 별도의 영역을 이룬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립과 중수 등의 기록을 알 수 있는 문헌과 편액 등 관련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고택의 보존 상태도 양호하며, 조임의 사월문집책판이 타 문중의 책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등 종가가 갖는 역사성과 학술성의 보존 가치가 있어 국가민속문화재 제294.. 2023. 6. 3.
홍성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독립운동가 김좌진(金佐鎭,1889~1930) 장군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며, 충남 홍성에서 김형규(金衡圭)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났으나 3세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김좌진장군은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였다. 이듬해에는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하여 근대화에 앞장섰다. 김좌진장군 생가지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 이후 대한협회(大韓協會), 기호학회(畿湖學會),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의 간부를 지냈다. 1913년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여 이 후 13년간인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바쳤으며, 3ㆍ1운동 후에는 북로군정서(北.. 2023. 5. 15.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의 생가지를 찾아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며, 스님이자 시인으로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1904년 내설악의 오세암으로 출가하여,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하였다.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이며 계명은 봉완(奉玩), 법호는 만해(萬海), 법명은 용운(龍雲)이다. 만해 한용운 생가지 3.1독립운동을 이끈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와 공약 삼장을 작성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26년 "님의침묵"을 출간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서고 민족혼을 깨우려고 노력하였다. 민족시비공원 석비와 생가지 만해 한용운은 1911년 이회광 일파의 친일매불 책동을 격파하였으며 1913~1914년 조선불교 유신론과 불교대전.. 2023. 5. 15.
영덕 영양남씨 난고종택과 무안박씨 희암재사 영덕군 영해면 원구마을에 있는 영양남씨 난고종택(英陽南氏 蘭皐宗宅)은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제271호(2012.4.13)이며, 영덕군 창수면에 있는 무안박씨 희암재사(務安朴氏 喜庵齋舍)는 문화재청에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2022.9.19)하여 곧 지정을 앞두고 있다. 영덕에 있는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두곳을 차례로 둘러본다. 영덕 난고종택 정침(正寢) 1)난고종택의 난고(蘭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성균관 진사 남경훈(南慶勳,1572~1612)의 호이며 난고종택 건물은 난고 남경훈의 아들 안분당(安分堂) 남길(南吉, 1595~1564)이 1624년(인조2년) 그의 아버지인 난고 남경훈을 추모하면서 건립했다고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난고종택 난고종택은 대문채, 정침, 만취헌, 불천위.. 2022. 10. 25.
영양 삼지리 하담고택과 섬천리 영양남씨 신암공파종택 영양읍 삼지리에 있는 하담고택은 1710년경 조시벽(趙是壁)이 지은 건물이다. 조시벽은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사월 조임(沙月 趙任,1573~1644)의 손자이다. 조임의 후손인 하담 조언관(荷潭 趙彦關)이 이집에서 태어나 호를 따서 하담고택이 되었다. 영양 하담고택 이곳 삼지리 일원은 조선중기에 약산당(藥山堂) 조광의(趙光義,1543~1608)선생이 입향한 이후 조카인 사월 조임, 사월공의 후손인 조시벽(1670~1753)선생이 정착하면서 한양조씨의 세거지라 불리게 되었다. 하담고택에는 조시벽의 아들이 심었다는 수령300여년의 회화나무(보호수) 한그루와 비슷한 시기에 심은것으로 보이는 향나무 한그루가 있으며, 집주변에는 고인돌 3기도 있다. 사랑채와 연못 사랑채에 걸린 하담고택 편액 안채 회화나무.. 2022.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