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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58

조수문(曺秀文)의 죽림재 배롱나무꽃 온통 배롱나무꽃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죽림재를 찾아본다.지난 봄 홍매가 곱게피었던 죽림재를 둘러본 뒤 한여름에 붉게 물들인배롱나무꽃이 그리워, 담양 잣쟁이 마을 창녕조씨(昌寧曹氏) 집성촌에 있는죽림(竹林) 조수문(曺秀文,1426∼?)이 건립한 정사(精舍)를 다시 찾았다. 죽림재의 배롱나무꽃 이곳 죽림재는 조수문이 어려서부터 강호 김숙자(金淑滋,1389~1456)의 문하에서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과 함께 학문을수학한 뒤 죽림정사를 건립하여 후진교육을 하며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문화재 돌봄이들이 점검차 들린 차량들 문화재 돌봄이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의 취사당(聚斯堂 : 죽림사 강당),세일재(歲一齋 : 조유도 묘각.曺由道 墓閣, 1899년 건립),충효각(忠孝閣 : 조부의 효자 정려각,曺.. 2024. 8. 1.
조우인(曺友仁)이 배향된 봉산서원과 임어재 이재(頤齋) 조우인(曺友仁,1561~1625)선생이 배향된 상주 봉산서원과그가 은거하다가 여생을 마쳤으며, 사당이 있는 상주 매호리를 찾아본다. 봉산서원이 자리한 상주 화서면 금산리 서원앞 봉산지 이재 조우인선생의 약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익(汝益), 호는 매호(梅湖)· 이재(頤齋)이며 예천에서 출생. 우부승지 조계형(曺繼衡)의 증손자이다.조우인은 1588년(선조 21)에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고,160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1616년(광해군 8)에는 함경도경성판관을 지냈다. 봉산서원 정문인 진덕문 1621년에는 제술관(製述官)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잘못을 풍자했다가그 글로 말미암아 3년간 옥에 갇혀있던 중 인조의 등극으로 풀려나이곳 상주(尙州)의 매호(梅湖)에서 은거하.. 2024. 7. 27.
별제공과 영월공 묘소 선영곁으로 서울 고척동에 모셔져 있던 별제공과 영월공 묘소를2024년 봄 대항면 복전리 마암 선영 아래로 이장하였다.고척동 묘소는 바로 앞에 고척고등학교가 세워지고 이곳이 공원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토지 보상금 수령문제가 대두되어 종중내부에서 오랜기간 소송의 분쟁에 휘말려 문장공 문중을 거의 초토화 되다시피 휩쓸고간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고척동 별제공(別提公) 조사우(曺士虞) 묘(이장 전) 별제공(別提公)의 휘(諱)는 사우(士虞). 자(字)는 중개(仲凱)이며, 증조는 김천 입향조 휘(諱) 심(深)이고, 할아버지는 울진현령 계문(繼門)이다.아버지(考)는 매계 위(偉)이고 어머니(妣)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환(煥)자 항렬(行列) 기준 14대조 이시다. 부러진 문인석(고척동) 별제공 사우(士虞)는 매계선.. 2024. 7. 9.
대종보에 실린 우졸당과 4효4학행 창녕조씨 대종보(大宗報) 제19호(2024년 간행)에 실린"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와 4효4학행 아들 4형제"를 소개합니다.아래 내용에도 있습니다만 우졸당 조유는 매계선생의 5대손이자조제창(曺悌昌)의 아들로 환(煥)자 항렬의 10대조가 되십니다. 창녕조씨 대종보(제19호, 2024년)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와 4효4학행 아들 4형제"~ 조지환(曺智煥) 우졸당 종회장 ~ 사진 :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 묘소 사진 : 우졸당 조유(曺逾) 유고(遺稿) 사진 : 조세호(曺世虎) 묘소와 간찰(1750년,영조 26년) 사진 : 교지 통덕랑 조세봉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자도광 19년 2월(헌종 5년, 1839년 2월) 경렴서원 봉안문 ~ 향장(鄕長) 안동(安東) 김시응(金時應) 찬(撰) 우졸당(愚拙堂).. 2024. 6. 25.
정와 조수천의 합천 덕양재(德陽齋) 합천 덕양재(德陽齋)는 쌍책면 덕봉리에 있는 창녕조씨 재실이다.원래는 1790년(정조 14)에 정와(靜窩) 조수천(曺受天), 봉곡(鳳谷) 조이천(曺以天), 정곡(靜谷) 조신천(曺信天), 세 선생의학문과 덕을 기리고 제향하는 덕양서원으로 건립하였었다. 덕양재와 덕양서원 삼선생 창녕조공 유적비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그 뒤 1872년 덕양재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양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덕양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납도리 5량의 맛배지붕 건물이며, 좌우측에는 방을 두고 가운데에 마루를 배치하였다. 덕양재 마루 대부분의 보들은 구부러진 목재를 사용하여 자연미가 두드러지며,특히 양 측면의 보와 인방(引枋)이 이루는 곡선미가 매우 아름.. 2024. 6. 18.
죽림 조수문의 담양 죽림재 홍매 담양 죽림재(竹林齋)는 무등산에서 발원해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수남학구당, 관수정, 동강조대, 창평향교 등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품고 영산강으로 흐르며, 조선의 선비 문사들에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했던 유서 깊은 증암천 옆 향백산 아래 고서면 분향리 잣정마을에 있다. 담양 죽림재 홍매 이곳 분향리 잣쟁이 마을은 창녕조씨(昌寧曹氏) 집성촌으로 원래 죽림재는 죽림(竹林) 조수문(曺秀文,1426∼?)이 건립한 정사(精舍)로서 대대로 창녕조씨 문중의 강학장소로 이용되었으며, 처음 건물은 임진왜란시 귀중한 문서와 함께 소실되었고, 1623년(인조1)에 죽림의 6대손인 삼청당(三淸堂) 조부(曺簿)에 의해서 중건되었다. 죽림재 전경 그후 죽림과 그의 아들인 운곡(雲谷) 조호(曺浩)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70.. 2024. 3. 17.
남명 조식의 남명매와 기념관, 묘소 매화의 계절을 맞아 매화향기따라 탐매여행에 나선다.지리산 자락의 산청 3매 중 남사예담촌의 원정매와 단속사지의 정당매는고사한지 이미 오래이고, 지금은 옆의 후계목들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있다.오직 산천재의 남명매만이 살아 남아서 고매(古梅)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산천재(山天齋)와 남명매 남명매는 실천 유학의 대가 남명 조식(曺植,1501~1572)선생이 61세이던명종 16년(1561년)에 산천재를 짓고 앞뜰에 매화를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대략 460여년이 지난 고매(古梅)인데, 산천재 앞뜰에 서면 지리산 천왕봉이 한 눈에 들어와 해마다 많은 매화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산천재 입구 남명선생은 이곳에서 산천재를 지은 후 후학들을 가르쳤으며,1572년 2월 8일 72세를 일기로 이곳 산천재에서 운.. 2024. 3. 13.
독립운동가 조성환의 여주 보통리 생가 독립운동가 조성환(曺成煥,1875~1948)은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창녕, 호는 청사(晴蓑)이고, 다른 이름은 조욱(曺煜,曺旭)이다. 대대로 조선시대의 고관대작을 두루 역임한 명문대가 집안 출신으로, 한 집안에서 다수의 인재들을 탄생시킨, 모두가 부러워 했던 그 고택을 찾아본다. 여주 보통리 조성환 생가 이 고택은 경기 동부지역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임진왜란때 조성환의 11대조인 조경인(曺景仁)이 전란을 피해 외가인 무송 윤씨의 터전인 이곳 보통리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이후 조선 순조 13년인 1813년 이조판서를 지낸 조윤대(曺允大)와 역시 공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 그의 아들 조봉진(曺鳳振)이 건립하여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였었다. 큰 사랑채(왼쪽)와 작은 사랑채(중.. 2024. 1. 17.
중종이 청백리 조치우에게 내린 옥비(玉碑)이야기 조치우(曺致虞,1459~1529)는 조선전기에 정언, 대구부사, 예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요 효자이며, 재임 중 선정으로 청백리에 녹선되었다.중종(中宗)은 조치우(曺致虞)가 선정과 노모봉양의 효심 또한 지극하여 소학(小學)을 내리고, 1529년(중종 24) 그의 사후에는 청렴결백한덕을 표창하고자 옥으로 만든 옥비(玉碑) 두좌를 하사하였다. 영천 내사옥비각(內賜玉碑閣,2023.12.28) 그 한 좌는 조치우에게 내린 청옥(靑玉)으로 현재의 영천 대창면 대재리 송청산(松靑山) 유후재(遺厚齋) 안 내사옥비각에 안치되어있고, 다른 한 좌는 부인인 숙인 창원 박씨에게 내린 백옥(白玉)으로부인묘소가 있는 창원시 북면 지개동 구룡산(九龍山) 아래 모선재(추감재,追感齋) 옆 어사옥비각(御賜玉碑閣)에 안치되어있다. 어.. 2023. 12. 29.
상주 조우인선생 문학비와 낙동강 어풍대 이재 조우인(曺友仁,1561~1625)선생은 조선조에 선조, 광해군, 인조등 3대 임금을 섬기며 시, 글씨, 그림등 3절로 이름났던 선비였으며,특히 매호별곡(梅湖別曲)·자도사(自悼詞)·관동속별곡(關東續別曲)·출새곡(出塞曲) 등 4편의 가사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거나 EBS 수능특강, 고교모의고사나 수능고사 등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상주 매호리 낙동강변에 있는 조우인 문학비와 어풍대 등을 둘러본다. 이재 조우인선생 문학비(頤齋 曺友仁先生 文學碑) 이재 조우인선생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익(汝益), 호는 매호(梅湖)·이재(頤齋)이며 예천에서 출생. 우부승지 조계형(曺繼衡)의 증손자이다.조우인은 1588년(선조 21)에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고,160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1616년(광해군.. 2023. 12. 25.
창녕조씨 거제문중 방문기 한점 구름없이 맑고 화창한 12월 초순 창녕조씨 거제문중을 찾았다. 거제문중은 송무(松茂) 13세(世)이며 매계 조위(曺偉)선생의 8세손인 조응상(曺應祥)을 입거조(入巨祖, 거제 입향조)로 하여 사등면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거제 일원에서 번창한 창녕조문이다. 창녕조씨 거제종회 정충사(靖忠祠) 입구 창녕조씨 찬성공파 약보(昌寧曺氏 認齊公派 略譜) 始祖 ①曺繼龍 ― ② 應神 ― ③ 壽享 ― ④ 敦 ― ⑤ 欽 ― ⑥ 謙 中祖 ⑥謙(高麗太祖駙馬) ― ⑦ 瑞 ― ⑧ 延祐 ― ⑨ 漢知 ― ⑩ 之賢 ― ⑪ 思詮 ― ⑫ 正鱗 ― ⑬ 仲龍 ― ⑭ 義文 ― ⑮ 自奇 ― ⑯ 允恭 ― ⑰ 碩 ― ⑱ 誼 ― ⑲ 挻文 ―⑳ 瑀 ― (21) 松茂 更起 ①世 송무(松茂) ― ② 俊 ― ③ 人取 ― ④ 元桂― ⑤ 遇禧 ― ⑥ 경.. 2023. 12. 5.
매계 조위선생의 생애와 유적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은 조선조 김굉필(金宏弼)· 정여창과 더불어 초기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로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김종직과 더불어 신진사류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5년 식년문과에 급제, 1479년 영안도경차관이 되었다. 성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으며 검토관, 시독관 등으로 경연에 나갔으며 이후 지평, 문학, 응교를 거쳐 노모 봉양을 위해 함양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매계구거 율수재 (梅溪舊居 聿修齋) 1492년 동부승지, 도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충청도,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498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다가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으로 일어난 무오사화로 김종직의 "조의제문" 시고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체포, 투옥된 후 오랫동안 의주에.. 2023. 12. 3.
남명 조식선생의 생애와 유적 남명 조식(曺植,1501~1572)선생은 1501년(연산군 7년) 6월 26일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토동) 외가댁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이다. 조선 전기의 대학자로 이황과 더불어 경상도(경상좌·우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로, 성리학자이며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삼가면 외토리(토동) 조식선생 생가 어릴때는 이곳에서 자랐으나 아버지가 벼슬길에 나가자 임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배웠으며, 30세부터 처가가 있는 김해의 신어산 아래에 산해정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48세에 다시 고향인 삼가현의 토동으로 돌아와 뇌룡정과 계부당을 짓고 제자를 길렀다. 61세에 지리산 아래 산청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1572년 .. 2023. 12. 1.
서양화가 조규석(曺圭石) 화백의 작품산책 서양화가 조규석은 파리유학시절의 스승이신 "이브 브라이예(Yves Brayer)" 교수로 부터 세계적인 작가가 되려면 일 만점의 작품을 제작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작품 한점 한점에 열과 성의를 다하며 초인적인 정열로 작품에 임해왔다. 2019년 10월 19일 제43회 남명(조식) 선비문화축제에서 만난 화백 1940년 경산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하다가 2024년 2월 25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영원한 화단의 세계로 돌아갔다. 화가 조규석은 가장 광범위하고 풍부한 화필로서 힘찬 대비로 선명함을 높은 톤(ton)으로 특히 야생의 자연안에서 권위를 갖고 처리하고 있다. ~ 이 세련된 수인(壽人,Anateur)에 대해 현실보다 많은 영혼을 포착한 그의 우수하고 만능적인 미적 세계를 덧붙이고 싶.. 2023. 11. 27.
2023년 창녕 선조산소 성묘 창녕 대초리와 남지에 모셔져 있는 선조 묘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이곳은 경주 안강 초제리에 모셔져 있는 시조 태사공(조계룡) 묘소를 제외하고는 고려말 조선초기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선조묘소이다. 휘(諱) 원계(元桂) 선조 묘소 창녕 대초리에 있는 휘(諱) 원계(元桂) 선조는 김천 입향조이신 휘(諱) 심(深) 선조의 증조부 이시며, 매계선생의 5대조 되신다. 환(煥)자 항렬 기준으로는 20대조(규자는 21대조)가 되시며, 고려말기에 모신 묘소로 600여년이 넘은 산소이다. 성묘 준비중 묘사는 시류에 따라 수년전부터 김천 덕원재에서 입향조와 합설하여 모시고 있으며, 이곳은 매년 성묘만 하고 있다. 오늘은 올 겨울들어 처음 쌀쌀한 날씨인데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 6명(규상,정만,운현,지환,순집,각환)만 참석하.. 2023.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