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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한국 성씨의 뿌리32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의 평장사(平章祠) 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광산(광주의 별호로 현 담양과 광주지역)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신라 제45대 신무왕(?~839)의  왕자(셋째아들)인 김흥광(金興光, 810~820년경 탄생)을 시조로 한다.참고로 김씨 분관록과 동국만성보, 조선씨족통보 등에는 신라 49대 헌강왕(김정,金晸)의 셋째아들로 되어있기도 하다. 광산김씨 평장사 전경 광산김씨는 신라의 왕자인 김흥광(金興光)이 무진주 추성군 서일동(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자리 잡으면서 시작되었으며, 김흥광의 아들 김식(金軾)이 각간에 오르고, 손자 김길(金吉)이 고려에 귀의하여 무공을 세워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어 삼중대광(三重大匡)에오르자 조부인 김흥광은 광산부원군(光山附院君)에 봉해졌다. 평장사 입구의 광산김씨 발상지(왼쪽)와 광.. 2025. 3. 31.
순천김씨 시조 김총의 동원재와 묘소 순천 김씨(順天 金氏)는 전남 순천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토종 성씨이다.시조 김총(金摠)은 후삼국시대에 태어나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도와 관직이 인가별감(引駕別監)에 이르렀으며, 많은 공을 세워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순천을 본관으로 삼았으며, 평양(平陽)은 순천의 별호이다. 순천김씨 시조 재실 동원재(同源齋) 전경 시조 김총(金摠)은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이라 기록되어 있고, "신라김씨선원록서(新羅金氏璿源錄序)" 등에서는"태봉국 태자 청광보살(靑光菩薩)의 아들로 궁예(弓裔)의 장손(長孫)",즉 태봉왕 궁예의 왕손 이라고 되어 있으나 인정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으며,참고로 궁예는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설이 지지를 받고있다. 동원재 정문인 숭상문(.. 2025. 3. 21.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 묘소와 보광사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청송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始祖)로 삼으며, 그의 증손 심덕부(沈德符)가 우왕(禑王)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러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가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진봉되어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청송심씨 시조묘소 입구 그뒤 심덕부(沈德符)는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창업에 공을 세우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으며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와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1399년(정종 1)에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렀다. 그의 아우 원부(元符)는 고려말에 여러 관직을 거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王.. 2025. 2. 20.
평산신씨 시조 신숭겸장군 묘역과 유적지 평산신씨(平山申氏=平州 申氏)는 황해도 평산군을 본관으로 하는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고려의 1등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장군이다.신숭겸(?~927)장군의 초명은 능산(能山)이며 전남 곡성현에서 태어났다. 고려태사 장절공 신숭겸장군상 신숭겸은 태봉(국)의 장군으로 있다가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궁예를 축출하고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세웠다.신숭겸은 활쏘기가 뛰어나 왕건과 함께 황해도 평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왕건이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가르키며 "저 기러기떼 중 앞에서 세번째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춰보라"고 명하자 그대로 쏴서 떨어뜨렸다고 한다. 신숭겸장군 묘역 왕건은 기러기를 화살로 맞추는 모습과  비슷한 한자인 신(申)자를 성(性)으로, 숭겸(崇謙)을 이름으로 하사(사성,賜姓) 하였으.. 2025. 2. 14.
순흥안씨 시조 단소와 회헌 안향선생 순흥안씨(順興安氏)는 영주 순흥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시조는 고려(高麗)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 保勝別將)을 역임한안자미(安子美)이고, 중시조는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지내고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인 회헌 안향(安珦)선생이다.파조는 안영유(安永儒), 안영린(安永麟), 안영화(安永和)이다. 순흥안씨 시조 재실 추원재(追遠齋) 순흥면은 영주 소백산 기슭의 현재 소수서원이 있는 일원으로,지명은 조선 초기 설치된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에서 유래되었다.시조(始祖)인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神宗 재위: 1197~1204) 때사람으로 사후에는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는데, 순흥현(順興縣) 토착 가문으로 관향(貫鄕)을 순흥(順興)으로 삼게 되었다. 순흥안씨 시조 세사단(歲祀檀) 단소(檀所).. 2025. 1. 11.
재(齋)와 재실(齋室)과 재사(齋舍) 재(齋)와 재실(齋室)과 재사(齋舍)는 거의 같은 의미와 용도로 쓰인다.먼저 재(齋)의 사전적 의미는 "재계하다, 공경하다" 라는 의미인데주로 조상이나 성현 등을 모시고 섬길 때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이하고정갈히  하는것을 이르며, 재실이나 재사를 줄여서 재(齋) 라고도 한다.  1.여주 세종대왕 영릉 재실(2024.1.16) 좀더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실(齋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 이라고 하며, 재사(齋舍)란 학문과 덕행, 충효가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건축물로 정의하고 있다. 여주 세종대왕 영릉(2024.1.16) 세종대왕릉(영릉)의 이장은 세조 때부터 논의되다가1469년(예종 1년)에 와서 현재 자리로.. 2024. 12. 27.
영양남씨의 뿌리 시조 남민(南敏) 영양 남씨(英陽南氏)는 경북 영양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인데, 신라 경덕왕 14년(서기 755년), 즉 당나라 현종(玄宗) 천보(天寶) 14년에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귀로에 태풍을 만나 영덕(盈德)의 죽도(竹島)에 표착하여 신라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에 신라 경덕왕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성(姓)을 남씨(南氏)로, 이름은 민(敏)으로,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   영양남씨 시조묘역 입구 증보문헌비고에는 남민의 7세손이며 고려 때 대장군을 지낸 남진용(南鎭勇)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 남홍보(南洪甫)는고려 충렬왕 때 도첨의찬성사를 지냈으며, 영양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차남 남군보(南君甫.. 2024. 12. 3.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의 묘 청주 한씨(淸州 韓氏)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은 충북 영동 황간면 난곡리에서 한지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40세 무렵에 청주 방서동(方西洞)으로 이주하여 마을 언덕에 무농정(務農亭)을 짓고 방정리(方井里) 무농평(務農坪)의 농토를 개척한 호족이었다. 청주한씨 시조 재실 정문(솟을 삼문) 928년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정벌하기 위하여 청주를 지날 때, 당시 가뭄으로 왕건의 군사와 군마 등이모두 지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한란은 왕건을 군례(軍禮)로 맞이하고자신의 군사와 군마 그리고 10만 대군이 먹을 수 있는 군량미를 제공하고,왕건과 함께 종군(從軍)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담너머로 본 세일재(歲一齋)  ~ 청.. 2024. 10. 11.
풍산류씨 금계재사(金溪齋舍)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安東 豊山柳氏 金溪齋舍)는 풍산부원군 류중영(1515∼1573)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서후면 성곡리에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88호(2016.7.1 지정)이다. 금계재사 영모루(永慕樓) 류중영(柳仲郢,1515~1573)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이다.영남지방의 사족으로 풍산 류씨 가문의 중흥을 일군 인물이자류운룡과 명재상인 영의정 류성룡 형제의 아버지이기도 하며,안동 하회마을에 입향한 류종혜(柳從惠)의 5대손이다. 영모루 정문 류중영은 1540년 식년시문과에 급제하여 의주목사,황해도관찰사, 승지, 예조참의 등을 지냈다.  사후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풍산 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보수공사 중인 숭실재 금계.. 2024. 9. 23.
(구)안동김씨 중시조 김방경의 음수재(飮水齋) (구)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손자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로, 일반적으로 안동 김씨로 칭하는데,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후 안동 김씨)와의 구별을 위해 구 안동 김씨(선 안동 김씨, 또는 상락 김씨)라고도 한다. 구(상락) 안동김씨 음수재(飮水齋) 전경 고려 후기 몽골과의 전쟁과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 맹활약한 명장인 문하시중.첨의중찬을 지낸 김방경(金方慶)이 중시조이다.선(구) 안동 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 몰락에 가까운 위기에 처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김자점(金自點)은 1623년 3월(광해군 15) 이괄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 6품직에 오르고 후에 승정원동부승지가 된다. 음수재(飮水齋) 정문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도원수가 되어 토산 전투에서 대패하자 삭탈관직 .. 2024. 9. 21.
안동 김씨 시조 김선평의 태장재사 안동김씨 태장재사(安東金氏 台庄齋舍)는 안동 서후면에 있는조선 후기에 건립된 건물로 (신)안동김씨 시조인 태사 김선평(金宣平)의 단소(壇所)를 지키고 봉향(奉享)을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태장재사(台庄齋舍) 원경 1711년(숙종 37) 작은 집을 지었다가 1749년(영조 25)에확장하였는데, 식수난과 질병이 겹쳐 사헌부 지평 김양근(金養根)이경향 각처의 뜻을 모아 현 위치에 승려의 집을 철거하고 터를 닦아1793년(정조 17)에 28칸을 중건하고 익실(翼室 : 분채의 좌우편에딸려 있는 방)과 문루(門樓)를 옮겨 지었다. 태장재사 측면 1913년 주사(廚舍)를 현위치에 확장하여 10칸을 중건했고1960년 풍수해를 당해 재사를 보수했는데, 재사는 일(一)자형의이상루(履霜樓)와 口자형의 재사, ㄷ자형의.. 2024. 9. 20.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능동재사(陵洞齋舍)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는 고려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며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재사(齋舍)이다.조선 중기의 건물로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83호(1984년 지정)이다.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능동재사는 1653년(효종 4) 관찰사 권우(權堣)가 종인(宗人)들과 논의하여 마루, 방, 곳간 등 16칸을 건립하였으며1683년(숙종 9) 관찰사 권시경(權是經)이 누각 7칸을 추가로 지었다.그러나 1743년(영조 19)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어 중건하였다.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추원루(追遠樓)  1896년 다시 화재를 입어 당시 70여 칸의 건물 중임사청(任事廳), 전사청(典事廳) 등 몇 칸만 남기고 모두 소실된 것을 1896년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추원루 편액.. 2024. 9. 20.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城谷齋舍)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張太師公 城谷齋舍)는 안동 장씨(安東 張氏)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제단을 관리하고제사를 지내기 위해 1806년(순조 6)에 세워진 건물이다. 성곡재사 영휘루(永輝樓)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과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6)이고창(현 안동)에서 전투를 벌이자 장정필은 김선평, 권행과 함께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고, 세 사람은 공신으로 태사의 벼슬을 하사 받았다.  왼쪽으로 돌아  이 후 왕건은 고창(현 안동)이 동쪽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안동(安東)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성곡재사(城谷齋舍)는 1806년 건립되어 1853년에 중건하였고, 1966년에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2024. 9. 20.
안동 3태사묘(안동 김씨,권씨,장씨)와 재사(齋舍) 안동의 3태사묘는 고려 건국 때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토벌한 공로로 대광태사(大匡太師)의 벼슬이 하사된 3공신인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장씨의 시조인 장정필(張貞弼)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3태사묘(三太師廟) 정문인 경모루(景慕樓) 안동은 신라 초기에는 고타야군으로, 통일 신라 경덕왕 때는고창군으로 불렸으며, 이곳 고창군 병산에서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사활을 건 대전투를 펼쳤고 병산은 지금의 안동시 상아동 득심골이다. 태사묘앞 태사광장 득심골은 역사책 속에 등장하는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결전을 펼쳤던 고창군 병산전투 현장이며, 고창전투라고 알려진 이 전쟁은 왕건을 고려 태조로 만들어준 아주 귀중한 전투였다.안동은 고려 태조 왕건이 지어준 지명으로 .. 2024. 9. 20.
능성구씨 시조 재실 영모재와 단소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화순 능성(능주의 옛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고려 왕조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낸구존유(具存裕)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능성구씨 시조 묘역  능성 구씨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유력 가문이었으며, 문신과 무신 중에서도 특히 무관으로 유명한 무신(武臣)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관직에 진출했고, 조선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현대에도 여러 고관대작과 대재벌가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모재 정문 능성구씨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었던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202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