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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한국 성씨의 뿌리25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의 묘 청주 한씨(淸州 韓氏)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은 충북 영동 황간면 난곡리에서 한지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40세 무렵에 청주 방서동(方西洞)으로 이주하여 마을 언덕에 무농정(務農亭)을 짓고 방정리(方井里) 무농평(務農坪)의 농토를 개척한 호족이었다. 청주한씨 시조 재실 정문(솟을 삼문) 928년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정벌하기 위하여 청주를 지날 때, 당시 가뭄으로 왕건의 군사와 군마 등이모두 지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한란은 왕건을 군례(軍禮)로 맞이하고자신의 군사와 군마 그리고 10만 대군이 먹을 수 있는 군량미를 제공하고,왕건과 함께 종군(從軍)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담너머로 본 세일재(歲一齋)  ~ 청.. 2024. 10. 11.
풍산류씨 금계재사(金溪齋舍)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安東 豊山柳氏 金溪齋舍)는 풍산부원군 류중영(1515∼1573)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서후면 성곡리에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88호(2016.7.1 지정)이다. 금계재사 영모루(永慕樓) 류중영(柳仲郢,1515~1573)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이다.영남지방의 사족으로 풍산 류씨 가문의 중흥을 일군 인물이자류운룡과 명재상인 영의정 류성룡 형제의 아버지이기도 하며,안동 하회마을에 입향한 류종혜(柳從惠)의 5대손이다. 영모루 정문 류중영은 1540년 식년시문과에 급제하여 의주목사,황해도관찰사, 승지, 예조참의 등을 지냈다.  사후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풍산 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보수공사 중인 숭실재 금계.. 2024. 9. 23.
(구)안동김씨 중시조 김방경의 음수재(飮水齋) (구)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손자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로, 일반적으로 안동 김씨로 칭하는데,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후 안동 김씨)와의 구별을 위해 구 안동 김씨(선 안동 김씨, 또는 상락 김씨)라고도 한다. 구(상락) 안동김씨 음수재(飮水齋) 전경 고려 후기 몽골과의 전쟁과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 맹활약한 명장인 문하시중.첨의중찬을 지낸 김방경(金方慶)이 중시조이다.선(구) 안동 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 몰락에 가까운 위기에 처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김자점(金自點)은 1623년 3월(광해군 15) 이괄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 6품직에 오르고 후에 승정원동부승지가 된다. 음수재(飮水齋) 정문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도원수가 되어 토산 전투에서 대패하자 삭탈관직 .. 2024. 9. 21.
안동 김씨 시조 김선평의 태장재사 안동김씨 태장재사(安東金氏 台庄齋舍)는 안동 서후면에 있는조선 후기에 건립된 건물로 (신)안동김씨 시조인 태사 김선평(金宣平)의 단소(壇所)를 지키고 봉향(奉享)을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태장재사(台庄齋舍) 원경 1711년(숙종 37) 작은 집을 지었다가 1749년(영조 25)에확장하였는데, 식수난과 질병이 겹쳐 사헌부 지평 김양근(金養根)이경향 각처의 뜻을 모아 현 위치에 승려의 집을 철거하고 터를 닦아1793년(정조 17)에 28칸을 중건하고 익실(翼室 : 분채의 좌우편에딸려 있는 방)과 문루(門樓)를 옮겨 지었다. 태장재사 측면 1913년 주사(廚舍)를 현위치에 확장하여 10칸을 중건했고1960년 풍수해를 당해 재사를 보수했는데, 재사는 일(一)자형의이상루(履霜樓)와 口자형의 재사, ㄷ자형의.. 2024. 9. 20.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능동재사(陵洞齋舍)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는 고려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며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재사(齋舍)이다.조선 중기의 건물로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83호(1984년 지정)이다.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능동재사는 1653년(효종 4) 관찰사 권우(權堣)가 종인(宗人)들과 논의하여 마루, 방, 곳간 등 16칸을 건립하였으며1683년(숙종 9) 관찰사 권시경(權是經)이 누각 7칸을 추가로 지었다.그러나 1743년(영조 19)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어 중건하였다.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추원루(追遠樓)  1896년 다시 화재를 입어 당시 70여 칸의 건물 중임사청(任事廳), 전사청(典事廳) 등 몇 칸만 남기고 모두 소실된 것을 1896년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추원루 편액.. 2024. 9. 20.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城谷齋舍)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張太師公 城谷齋舍)는 안동 장씨(安東 張氏)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제단을 관리하고제사를 지내기 위해 1806년(순조 6)에 세워진 건물이다. 성곡재사 영휘루(永輝樓) 930년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943)과 후백제의 견훤(甄萱,867~936)이고창(현 안동)에서 전투를 벌이자 장정필은 김선평, 권행과 함께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고, 세 사람은 공신으로 태사의 벼슬을 하사 받았다.  왼쪽으로 돌아  이 후 왕건은 고창(현 안동)이 동쪽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안동(安東)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다.성곡재사(城谷齋舍)는 1806년 건립되어 1853년에 중건하였고, 1966년에 누문인 영휘루(永輝樓)를.. 2024. 9. 20.
안동 3태사묘(안동 김씨,권씨,장씨)와 재사(齋舍) 안동의 3태사묘는 고려 건국 때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토벌한 공로로 대광태사(大匡太師)의 벼슬이 하사된 3공신인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장씨의 시조인 장정필(張貞弼)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3태사묘(三太師廟) 정문인 경모루(景慕樓) 안동은 신라 초기에는 고타야군으로, 통일 신라 경덕왕 때는고창군으로 불렸으며, 이곳 고창군 병산에서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사활을 건 대전투를 펼쳤고 병산은 지금의 안동시 상아동 득심골이다. 태사묘앞 태사광장 득심골은 역사책 속에 등장하는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결전을 펼쳤던 고창군 병산전투 현장이며, 고창전투라고 알려진 이 전쟁은 왕건을 고려 태조로 만들어준 아주 귀중한 전투였다.안동은 고려 태조 왕건이 지어준 지명으로 .. 2024. 9. 20.
능성구씨 시조 재실 영모재와 단소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화순 능성(능주의 옛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고려 왕조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낸구존유(具存裕)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능성구씨 시조 묘역  능성 구씨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유력 가문이었으며, 문신과 무신 중에서도 특히 무관으로 유명한 무신(武臣)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관직에 진출했고, 조선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현대에도 여러 고관대작과 대재벌가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모재 정문 능성구씨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었던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2024. 9. 10.
인동장씨 시조의 옥산고택과 옥산사(玉山祠) 인동장씨(仁同張氏) 옥산고택은 시조(始祖)인 고려 초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 상장군(神虎衛 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의 유허지로, 고려 초에 창건한 후 천여 년 동안종손이 대대로 세거하고 있는 유서깊은 대종가(大宗家) 고택이다. 인동장씨 옥산고택(대종가) 이 종택은 조선 초기까지 여러 번 중수를 거치며 세거하여 왔으나 1592年(선조 25) 임진왜란 때 병화로 건물이 전부 소실되었다가1631년(인조 9) 20대 종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 다시 중건하였다. 대문채 이 후에도 몇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이후 2000년 대동보의 헌성금으로 대대적인 중건을 하여 현재에 이른다.대지가 488평, 건물이 110평(27칸)으로 가묘(家廟,사당)도 복원했다.한 집에서 천여 년 동안 종손이 계속 살아온 것은.. 2024. 9. 1.
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의 조경단 조선왕실의 뿌리이자 곧 전주이씨의 뿌리이기도한 조경단은 전주 건지산(乾止山)기슭에 소나무와 편백나무숲으로 둘러 싸여있다.전주 이씨는 신라시대에 사공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있다.이한(李翰)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며, 시조 이한에서 18대손인 목조까지 전주에 거주하였다고 하여 전주 이씨의 발상지가 되었다. 조경단(肇慶壇) 입구  이한(李翰,713~754추정)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사공(司空)의 직급을 받았으며, 죽기 전에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임무를 수행했다.또한 당(唐)나라 천보(天寶, 742~756년)말 때 방관(房琯)의 벼슬을 했다. 제29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했다. 조경단 안내판 1771년(영조 47)에 칠도 유생들은 조선왕조 시조인 .. 2024. 7. 30.
영일정씨 시조 묘단과 남성재(南城齋) 영일정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지백호(智伯虎)이다.정종은(鄭鍾殷)의 후손인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을 역임하고 영일현백으로 봉해졌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영일을 본관으로 정했다.영일의 옛 지명이 연일로도 불려 연일정씨라고도 하고, 이들이 살고 있는 본 고장이 오천(烏川)이어서 오천정씨라고도 한다. 영일정씨 시조 재실 남성재 정문 영일정씨는 연원이 같으면서도 갈래가 다른 2파가 존재한다.고려 의종 때 추밀원지주사를 역임한 정습명을 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와 감무를 역임한 정극유를 시조로 하는 감무공파가 있다. 고려 추밀원지주사 형양 정선생 신도비(高麗 樞密院知奏事 滎陽 鄭先生 神道碑) 이들 두파는 선계가 실전되어 합보(合譜)하지 못하고 있는데, 지주사공파에는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있으며, 감무공파에는 송강 .. 2024. 7. 7.
창녕성씨(昌寧成氏) 뿌리와 물계서원 창녕 성씨의 뿌리인 시조 묘는 창녕 대지면 맥산(麥山)에 있다. 시조 성인보(成仁輔)는 고려 중기 때 향직(鄕職)을 역임하였으며,묘소 뒤편에는 재실인 맥산재(麥山齋)가 있다. 창녕성씨 시조 묘소 가는길 창녕성씨 뿌리인 시조묘가 있는 맥산을 부리산(浮鯉山)이라고도하는데, 지형을 물위에 뜬 잉어로 형상화한 것으로, 풍수 형국도유어농파형(遊魚弄波形,물고기가 물결을 일으키며 뛰노는 형국)이다.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묘 창녕지방(昌寧地方)의 중윤호장(中允戶長)이었던 성인보(成仁輔)는 어느 해 정월초 왕(王)에게 신년하례(新年賀禮)를 드리기 위해 송경(松京,현 개성)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병사(病死)했다.이때 조정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던 그의 아들 송국(松國)은 아버지의 시체(屍體)를 지고 천리길.. 2024. 6. 13.
진주정씨 충장공파 파조 정분(鄭苯)의 묘 진주 정씨의 원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 6촌 중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다.그러나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 정씨가 여덟 파가 되어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정신중(鄭臣重), 정이오(鄭以吾), 정분(鄭苯) 3대의 묘 진주 정씨(晉州 鄭氏), 진양 정씨(晉陽 鄭氏)는 경남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동래 정씨, 경주 정씨 다음으로 많은(325천여명) 성씨이다.진주 8정(晉州八鄭)으로 불렸던 진주 정씨는 세계(世系)를 달리하는즉 시조를 달리하는 1)정예(鄭藝)의 예계, 2)정헌(鄭櫶)의 헌계, 3)정장(鄭莊)의 장계, 4)정자우(鄭子友)의 자우계 등 4계통, 8파로 계대(繼代)를 이어오고있다. 정신중(鄭臣重) .. 2024. 5. 14.
초계정씨 시조 정배걸의 합천 옥전서원 옥전서원(玉田書院)은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서원으로초계정씨(草溪鄭氏)의 시조 정배걸(鄭倍傑)과 그의 아들 정문(鄭文, ?∼1106) 부자를 향사(배향)하기 위해 1799년(정조 23)에 건립한 서원이다. 고종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보존된 47개 서원중 하나이며, 1861년(철종 12)과 1981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01호로 지정(1993.12.27)되어있다. 합천 옥전서원(玉田書院) 전경 초계 정씨(草溪 鄭氏)는 합천군 초계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초계 정씨(草溪 鄭氏)의 시조 정배걸은 (鄭倍傑)은 합천군 초계면  성산출신으로고려전기 중추원부사, 예부상서 중추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문신이다. 옥전서원 출입문(외삼문) 1017년.. 2023. 9. 22.
대전 뿌리공원과 장태산 휴양림, 육영수여사 생가 여행크럽에서는 6월 여행지로 신록이 우거진 대전 장태산 자연휴양림과 우리나라 성씨들의 설화와 유래가 담긴 대전 뿌리공원, 그리고 옥천에 있는 육영수여사의 생가를 선정하였는데 풋풋한 녹음향기따라 차례로 둘러본다.    1.대전 뿌리공원뿌리공원 입구 의 만성교 대전 뿌리공원은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여 경로효친사상을 함양 시키고한겨레의 자손임을 일깨우고자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운 충효의 교육장이다.우리나라의 국조는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시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성은 삼국시대 왕족과 일부 귀족을 중심으로 사용된 것으로, 고려 초기부터 귀족은 물론 평민도 성과 본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뿌리공원 전경 성(姓)은 조선조 세종때 세종실록지리지에 265성, 영조 때 도곡총설에 298성, .. 2023.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