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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222

의령 상정리 창녕조씨 고가 의령 상정리 조씨 고가(宜寧 上井里 曺氏 古家)는 조선 후기에서근대기에 건축된 경남 의령군 화정면에 있는 창녕 조씨 고가이다. 1993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있다. 의령 상정리 창녕조씨 고가 대문채 이 건물은 대문채, 사랑채, 마굿간채, 중문채, 안채, 고방채,가묘, 별채, 광채 등 9채로 구성된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이다. 사랑채와 마굿간채 창녕조씨(昌寧曺氏) 현감공파(縣監公派) 1세 조충가(曺忠可)가 함안에 거주하였으며, 2세 조달하(曺達夏, 1469~1494)가 의령 가례면 수성리로 이거하였고, 4세 조계헌(曺季憲, 1537년생, 후릉참봉)은둘째 아들로 남쪽 7㎞ 거리의 화정면 상정리로 이주하였다.  사랑채  그의 큰아들 조사남(曺士男, 1560~1592, 장악원.. 2024. 11. 4.
봉계마을 조응방 정려각과 율수재,나화랑생가 김천 봉산면 봉계마을의 봉산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 맞은편 골목에는 창녕조씨 17세손 조응방(曺應邦)의 효자 정려각이 있다.조응방은 부친의 병을 고치기 위해 단지주혈(斷指注血)하는 등지극 정성으로 봉양하고, 부친상을 당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1875년(고종 12) 지역유림의 청원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조응방 효자 정려각(曺應邦 孝子 旌閭閣)  효자 창녕조공 휘 응방, 배 효부 창녕성씨 지각(孝子 昌寧曺公 諱 應邦, 配 孝婦 昌寧成氏 之閣) 효자 정려비(구,신) 효자 창녕 조응방 지각(孝子 昌寧 曺應邦 之閣)  (위)효자 정려각 개축 기공기,  아래(효자효부 정려 중수기) 효자 정려각을 둘러보고 율수재로 최근에 아스콘으로 말끔하게 포장된 율수재 진입로(도덕문 앞) 율수재(매계구거) 율수재앞 연못의 홍교(.. 2024. 10. 21.
창녕조씨 김천입향조 참의공묘소 개축 창녕조씨 김천 입향조이신 참의공 조심(曺深) 묘소를 개축중이다.참의공의 유택은 김천 봉산면 예지리 방목산자락으로 봉황이물위에 떠있는 봉황부유형(鳳凰浮遊形)의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덕원재(德源齋) ~ 보수 예정으로 어수선하여, 시사도 관리동에서 봉행 참의공이 개경에 살다가 1389년 처가곳(서산정씨 친정)인김천으로 낙향하게 된것은 위화도 회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려말기인 1388년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한 우군도통사 이성계와좌군도통사 조민수 등은 9일만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폐위시키고 창왕을 옹립하며, 그 공으로 조민수는 좌시중에 오른다.  참의공 묘소 ~ 개축공사가 진행중인 상태 그러나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 등, 정책 마찰로 조민수(曺敏修) 장군이 1389년 조정의 탄핵을 받아 .. 2024. 10. 20.
김천 황악산 기슭 학하재(鶴下齋) 학하재(鶴下齋)는 대항면 본리 황악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창녕조씨 찬성공 9대손(매계 6대손)인 삼석재(三惜齊) 세봉(世鳳)문중 재실(재사)로 1946년(병술,丙戌) 4월에 창건한 건축물이다. 학하재(鶴下齋) 학하재 창건기에 의하면 (전략) ~ 맑은 물쌀과 하얀 돌에서는 거문고, 비파, 퉁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양달과  음달에는 여러 촌락이 즐비하니 이따금 지나는 이가 한 고장의 승지(勝地)로 지칭한다.   우리 7대조모인 숙부인 안동김씨의 영택이 본산 중봉에원맥(元脉)해 있고 그 아래는 5대조부(國明)인 성균진사 행 가선대부의 의리(衣履,옷과 신)가 모셔지고 또 다른 분들의 분묘가 국내(局內)에산재하니 이는 우리 문중의 세장지(世葬地)라 이를 만 하다.  (중략)공사에 그 책임을 전담하여 시종일관 .. 2024. 10. 3.
매계 조위선생의 중추월과 능성 봉서루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이 중추절에 달을 바라보며 옛 친구가 생각나서 숙강 권건( 叔强 權健,1458~1501)에게 보낸 "억진아(憶秦娥)"와 1495년(연산군1) 8월 전라감사로 부임한 후 이듬해 늦가을에 관할지역 순시를 하는 도중 능성(현 능주)객관에서 하루를 머물며 봉서루에 올라 읊조린 한시를 올려본다. 2024년 9월 17일 음력 8월 보름달 팔월 보름달에 /  중추월(中秋月)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저녁 구름이 다 날려가니 맑고 훤히 비치도다. /  모운비진청휘철(暮雲飛盡淸輝徹)맑고 훤히 비치는 강의 남쪽과 북쪽이며,  / 청휘철강남한북(淸輝徹江南漢北)초가집 처마와 높은 대궐에 /  모첨위궐(茅簷魏.. 2024. 9. 18.
조수문(曺秀文)의 죽림재 배롱나무꽃 온통 배롱나무꽃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죽림재를 찾아본다.지난 봄 홍매가 곱게피었던 죽림재를 둘러본 뒤 한여름에 붉게 물들인배롱나무꽃이 그리워, 담양 잣쟁이 마을 창녕조씨(昌寧曹氏) 집성촌에 있는죽림(竹林) 조수문(曺秀文,1426∼?)이 건립한 정사(精舍)를 다시 찾았다. 죽림재의 배롱나무꽃 이곳 죽림재는 조수문이 어려서부터 강호 김숙자(金淑滋,1389~1456)의 문하에서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과 함께 학문을수학한 뒤 죽림정사를 건립하여 후진교육을 하며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문화재 돌봄이들이 점검차 들린 차량들 문화재 돌봄이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의 취사당(聚斯堂 : 죽림사 강당),세일재(歲一齋 : 조유도 묘각.曺由道 墓閣, 1899년 건립),충효각(忠孝閣 : 조부의 효자 정려각,曺.. 2024. 8. 1.
조우인(曺友仁)이 배향된 봉산서원과 임어재 이재(頤齋) 조우인(曺友仁,1561~1625)선생이 배향된 상주 봉산서원과그가 은거하다가 여생을 마쳤으며, 사당이 있는 상주 매호리를 찾아본다. 봉산서원이 자리한 상주 화서면 금산리 서원앞 봉산지 이재 조우인선생의 약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익(汝益), 호는 매호(梅湖)· 이재(頤齋)이며 예천에서 출생. 우부승지 조계형(曺繼衡)의 증손자이다.조우인은 1588년(선조 21)에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됐고,160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1616년(광해군 8)에는 함경도경성판관을 지냈다. 봉산서원 정문인 진덕문 1621년에는 제술관(製述官)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잘못을 풍자했다가그 글로 말미암아 3년간 옥에 갇혀있던 중 인조의 등극으로 풀려나이곳 상주(尙州)의 매호(梅湖)에서 은거하.. 2024. 7. 27.
별제공과 영월공 묘소 선영곁으로 서울 고척동에 모셔져 있던 별제공과 영월공 묘소를2024년 봄 대항면 복전리 마암 선영 아래로 이장하였다.고척동 묘소는 바로 앞에 고척고등학교가 세워지고 이곳이 공원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토지 보상금 수령문제가 대두되어 종중내부에서 오랜기간 소송의 분쟁에 휘말려 문장공 문중을 거의 초토화 되다시피 휩쓸고간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고척동 별제공(別提公) 조사우(曺士虞) 묘(이장 전) 별제공(別提公)의 휘(諱)는 사우(士虞). 자(字)는 중개(仲凱)이며, 증조는 김천 입향조 휘(諱) 심(深)이고, 할아버지는 울진현령 계문(繼門)이다.아버지(考)는 매계 위(偉)이고 어머니(妣)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환(煥)자 항렬(行列) 기준 14대조 이시다. 부러진 문인석(고척동) 별제공 사우(士虞)는 매계선.. 2024. 7. 9.
주요 종가 소개에 선정된 매계구거(율수재) 영남문화연구원(경북대학교 부설)에서는 연구사업 중 한 분야인종가문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종가문화는 산업화에 따른 농촌인구 감소와 종손.종부의 고령화로 소멸.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그 첫걸음으로전국의 40%이상을 점하는 경북 지역의 주요 종가를 소개하는 책자를 집필하고 영상물을 제작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천 율수재 도덕문(道德門) 매년 4~5곳의 종가를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올해(2024년)는매계구거가 선정되어, 우중에도 불구하고 연구원 6명이 매계선생유허지인 율수재 등 현장을 방문하고 후손들의 의견을 들었다. 매계구거 율수재 (梅溪舊居 律修齋) 이번 연구에서 소개할 내용들은 종가.종손 보존실태, 전승되고 있는제례문화, 전통, 전수음식은 물.. 2024. 7. 8.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삶과 생각 2024년 6월 21일 오후 4시 김천문화원에서 열린매계 조위선생 학술발표회에서는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장권진호박사가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삶과 생각"이라는 주제로생애와 시(詩)세계를 요약하여 발표했는데, 그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삶과 생각 조위(曺偉,1454~1503)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태허(太虛),호는 매계(梅溪), 시호는 문장(文莊)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신라 때 창성부원군을 지낸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고려 태조의 부마가 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한다. 매계 조위의 상계(上系), 사우관계 및 학문연원 충간공 조석문(曺錫文)에게 소학을 배웠고, 자형이자 스승인점필재 김종직에게서 김굉필,정여창 등과 동문 수학하였으며신종호,권건,정석진,유.. 2024. 6. 25.
대종보에 실린 우졸당과 4효4학행 창녕조씨 대종보(大宗報) 제19호(2024년 간행)에 실린"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와 4효4학행 아들 4형제"를 소개합니다.아래 내용에도 있습니다만 우졸당 조유는 매계선생의 5대손이자조제창(曺悌昌)의 아들로 환(煥)자 항렬의 10대조가 되십니다. 창녕조씨 대종보(제19호, 2024년)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와 4효4학행 아들 4형제"~ 조지환(曺智煥) 우졸당 종회장 ~ 사진 : 우졸당(愚拙堂) 조유(曺逾) 묘소 사진 : 우졸당 조유(曺逾) 유고(遺稿) 사진 : 조세호(曺世虎) 묘소와 간찰(1750년,영조 26년) 사진 : 교지 통덕랑 조세봉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자도광 19년 2월(헌종 5년, 1839년 2월) 경렴서원 봉안문 ~ 향장(鄕長) 안동(安東) 김시응(金時應) 찬(撰) 우졸당(愚拙堂).. 2024. 6. 25.
매계문학제와 제45회 매계백일장 시상식 2024년 6월 21일 오후 4시, 김천문화회관에서는제8회 매계문학상 시상식과, 매계 조위선생 학술대회,그리고 제45회 매계백일장 시상식이 열렸다. 매계문학제 안내서 매계 조위(曺偉, 1454~1503)선생은 조선 성종조의 대학자이자명문장가로서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한시를 최초로 우리말로번역한  "두시언해" 와 유배가사의 효시가된 만분가(萬憤歌)를 집필하는 등 우리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매계문학제는 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하였다. 매계 조위 선생 학술발표회는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삶과 생각" 이라는 제목으로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장인 권진호박사가 강의하였다.그리고 제8회 매계문학상 본상은 김상미 시인이, 향토문인상은 민경탁 시인이 각각 수상하였다. 국민의례 제.. 2024. 6. 22.
정와 조수천의 합천 덕양재(德陽齋) 합천 덕양재(德陽齋)는 쌍책면 덕봉리에 있는 창녕조씨 재실이다.원래는 1790년(정조 14)에 정와(靜窩) 조수천(曺受天), 봉곡(鳳谷) 조이천(曺以天), 정곡(靜谷) 조신천(曺信天), 세 선생의학문과 덕을 기리고 제향하는 덕양서원으로 건립하였었다. 덕양재와 덕양서원 삼선생 창녕조공 유적비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그 뒤 1872년 덕양재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양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덕양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납도리 5량의 맛배지붕 건물이며, 좌우측에는 방을 두고 가운데에 마루를 배치하였다. 덕양재 마루 대부분의 보들은 구부러진 목재를 사용하여 자연미가 두드러지며,특히 양 측면의 보와 인방(引枋)이 이루는 곡선미가 매우 아름.. 2024. 6. 18.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의 장인(丈人) 진평왕릉 신라 제26대 진평왕은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曺繼龍)의 장인(丈人)이다.진평왕(眞平王)의 성은 김씨, 이름은 백정(白淨), 진흥왕의 장손자 이며,어머니는 만호부인(萬呼夫人)이고, 왕비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579년에 왕이 되어 632년에 승하할 때까지 54년 동안 왕으로 있었다.  신라 진평왕릉(眞平王陵)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曺繼龍,571-651 )은 창녕의 한림학사 이광옥의 따님인 예향의 몸에서 태어났다.예향은 어려서부터 속병으로 고생하였는데, 명의를 찾아 고치려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인지라 근심과 절망에 싸여 있었는데,어느날 선인이 나타나 화왕산정에 신령한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서 목욕을 하고 성심으로 기도하면 완쾌될것이라 하였다.  화왕산 연못(용지)에 가서 목욕을 하고 성심으로 기도를 하는데,.. 2024. 6. 5.
매계 조위선생의 만분가(萬憤歌) 만분가는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전남 순천으로 이배되었을 때 지은것이다.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는 슬픔과 원통함을 선왕(先王:성종)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을 읊었는데, 이것은 한국 최초의 유배가사(流配歌辭)이다.  지은이가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유배된 뒤 귀양살이하는 원통함을, 천상에서 하계로 추방된 처지를 옥황상제로 비유된 성종에게 하소연한 내용으로 작품의 가의(歌意)가 굴원의 천문(天問)과 유사한 점이 있다.  만분가는 한편으로는 임을 잃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설정하여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辭)의 형상을 취하는 한편, 만분가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유배를 당하게 된 현실에 대한 발분의.. 2024.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