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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197

성주 도남리 등암 배상룡의 도천서원 성주 대가면 도천서원은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1574~1655)과괴재(愧齋) 배상호(1594-1632) 형제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1725년(영조 원년)에 건립한 서원으로, 원래 가천 사뢰촌(思瀨村) 동쪽 기슭에 세웠다가 1786년(정조 10) 이곳 후포로 이건 하였다. 도천서원 홍살문인 창의문(倡義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영당만 보존되고 있다가1900년(고종 37) 도남재를 건립하였고, 1975년 서원을 복원하였다.경내에는 본당건물과 솟을대문, 관리사가 있으며, 본당은 정면 5칸,측면 1칸반의 팔작지붕으로 중당협실형 구조이며, 서원 북편에는 성균진사 배보(裵報)의 사단비가 있고, 그 옆에는 등암 영각이 자리하고 있다. 도천서원 입구 배상룡(1574-1655)선생의 본관은 성산(星山.. 2025. 7. 19.
대구 무태 서계서원과 연경동 구강당 대구 무태(서변동)에 있는 서계서원(西溪書院)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인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1358~1414)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1781년(정조 5)에 지어진 건물로 동화천계곡 서쪽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서원 편액은 조선 말기의 명필 윤용구 선생의 글씨라 전해진다. 서계서원(西溪書院) 서계서원 경내에는 이문화 선생과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이주 선생을 추가로 배향한 3칸 규모의 사우인 숭덕사와 신문이 있으며,강학당인 화수정, 환성정(금수랑, 희리당), 협문, 서고, 주사, 대문 등이 있는데,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2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환성정(喚惺亭) 환성정은 임진왜란 때 대구지방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주의 정각으로, 이주(李輈,1.. 2025. 7. 18.
영양 연당마을 서석지와 태화당종택 서석지(瑞石池)는 영양 입안면에 있는 연못으로 1613년(광해군 5)에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이 자연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조성한 민가 정원으로,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원림(세연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가 전통 정원 중 하나이며,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1979년)되어있다. 영양 서석지 입구 서석지는 자양산(紫陽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못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서쪽에는 큰 정자인 경정(敬亭)이 있다.주일재 앞에는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어 사우단(四友壇)이라 하였으며, 연못과 수령 4백여년의 은행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석지 입구 연당마을 표지판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은 지금의 예천 용궁현 포내리에서 태어났는데,.. 2025. 7. 9.
산청 매란정사와 대포서원,오의정 산청 매란정사와 오의정은 지리산에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경호강을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아름답고 유서깊은 건축물들이다. 매란정사 입구 매란정사는 쌍매헌(雙梅軒) 민제연(閔齊淵,1632~1720)과관란재(觀瀾齋) 민홍석(閔弘錫,1685~1772)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사이다.정사(精舍)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곳에 건물을 지어 거처하는 집으로 거주 외에도 교육, 제사, 유림의 모임장소 등으로 활용하였다. 매란정사(梅蘭精舍) 매란정사는 쌍매헌 민제연이 남한일기(南漢日記)를 읽다가청나라에 굴욕적으로 강화한것에 분노하여 태학관에서의 공부를그만두고, 귀향하여 쌍매정(雙梅亭)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왼쪽부터 쌍매헌雙梅軒), 매란정사(梅蘭精舍), 관란재(觀瀾齋) 이 후 쌍매정이 누휴한데다 민재연의 뜻에.. 2025. 7. 1.
미수 허목의 의령 이의정(=미연서원) 이의정(二宜亭)은 곧 미연서원(嵋淵書院)과 같은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의령군 대의면에 있으며, 미수 허목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추모하기 위해 1825년(순조 25)에 창건한 서원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01년에 이의정(二宜亭)으로 이름을 바꾸어 중건하였다. 이의정(=미연서원) 정문인 인지문(仁智門) 1920년에 침랑(寢郞) 정영훈(鄭英壎) 등 여러 후손들이 뜻과 재력을 모아위패를 봉안할 사당인 숭정사(崇正祠)와 "미수기언(眉叟記言)" 책판을 보관할 장판각을 건립하였으며, 서원건립 봉안문과 상향축문은 유치명(柳致明)이 지었다. 미연서원 강당과 동.서재 미수 허목(許穆,1596~1682)선생은 조선후기에 성균관제조, 이조판서,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 2025. 7. 1.
합천 황강정(黃江亭)과 관수정 엣 선인들은 대부분 강변의 절벽 난간을 찾아 그 위에 정자를 짓고학문을 강론하기도 하고, 시를 읊거나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으리라.요즘같이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 땐 그 옛날 선현들이 노닐던 정자가그리워져, 발자취를 드덤어 보고 풍취도 즐길 겸 이곳저곳 찾아 나선다. 합천 쌍책 황강변의 황강정(黃江亭)과 관수정(觀水亭) 황강정 출입문인 망도문(望道門) 황강(黃江)은 덕유산에서 발원해 합천을 거쳐 낙동강과 합류하는데,황강 하류인 합천 쌍책면 성산리 내촌마을 푸른 절벽 위에 황강정이 있다.조선 중기의 학자인 황강이 남명 조식선생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던 정자이다. 담 너머로 본 황강정(黃江亭) 황강 이희안(李希顔,1504~1559)의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우옹(愚翁), 호는 황강(黃江)이며,합천 초.. 2025. 6. 30.
유방선,이보흠을 배향한 영천 송곡서원 영천 청통면 애련리에 있는 송곡서원은 1702년(숙종 28)에 건립하였으며,원래 경현원(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했다가 뒤에 송곡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5년 복원하여유방선과 이보흠을 배향하였으며,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동서 협문, 강당, 서재, 대문과 사당 옆에는 태재 유선생 신도비도가 있다. 송곡서원 전경 유방선(柳方善,1388~1443)의 본관은 서산. 자는 자계(子繼),호는 태재(泰齋)이며, 1405년(태종 5) 국가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공부했으며, 1409년(태종 10) 아버지가 민무구의 옥사에 관련, 연좌되어유배된 후 1427년까지 1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숭인문(崇仁門) 유배생활 중 후진 양성에 힘써 서거정,이보흠.. 2025. 6. 29.
포항 우각리 오의정(五宜亭) 포항 신광면 우각리에 있는 오의정(五宜亭)은 회재 이언적선생의 다섯째 손자이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큰 공을 세운 오의정이의온(李宜溫)이 전쟁이 끝난 후 벼슬을 사양하고 돌아와 지은 정자이다. 포항 우각리 오의정 오의정은 1624년에 건립하고, 1883년에 중건, 1976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전면과 좌우측에계자 난간을 달았으며, 정자 앞에는 이의온이 정자를 세우고 손수 심었다는수령 400여 년의 수형과 생육상태가 양호한 향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다. 오의정 입구 표지석 오의(五宜)란1)형제간에 우애있고, 2)가정을 화목하게 하며, 3)자연을 즐기고,4)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며, 5)속세를 초월하여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고 한다. 오의정 향나무와 정문 .. 2025. 6. 27.
약포 정탁선생의 예천 도정서원(道正書院) 예천 호명면 황지리에 있는 도정서원(道正書院)은 조선 선조 때의 좌의정이며, 옥중의 이순신장군을 구한 약포 정탁(藥圃 鄭琢,1526~1605)선생을 기리고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640년(인조 18)에 건립한 사당(祠堂)이다. 도정서원 전경 1697년(숙종 23) 강당채를 세워 도정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약포의 셋째 아들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1571~1629)을 추향하였다. 1866년 서원철폐령으로 일부가 훼철되었다가 1997년 동재, 서재와 전사청,누각 등을 복원하였으며 약포사당은 도 문화재자료 제142호이다. 도정서원 입구 안내판 서원앞 낙동강변 절벽위에 위치한 읍호정(挹湖亭)은 1601년(선조 34)에 세웠으며, 읍호정 누마루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내성천(낙동강)을 즐길 수 있다. 도정서원 .. 2025. 6. 22.
예천 풍양 삼수정(三樹亭) 삼수정은 예천 풍양면 정곡리,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자인데, 이 건물은 이곳 청곡리 입향조인삼수 정귀령(鄭龜齡)이 1425년(세종 7)에 세웠다가 그후 퇴락하여1829년 경상감사로 부임한 정기선(鄭基善)이 다시 중수하였다고 한다. 삼수정 입구 삼수 정귀령은 정자를 건립하면서 자손들의 학자나 벼슬을 기원하는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정자 이름도 삼수정(三樹亭)이라 하였는데현재는 수령 600여 년(보호수 표지판은 300여년)의 한 그루만 남아있고,옆에는 역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50여년의 소나무가 우뚝 서있다. 회화나무와 삼수정 삼수(三樹) 정귀령 (鄭龜齡)은 본관이 동래이며, 1424년(세종 6)결성현감(현 충남 홍성)을 지내고 이듬해 이곳 청곡리로 들어와 터를 잡.. 2025. 6. 22.
나재 채수선생의 쾌재정과 함창 유적지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선생은 성종조의 문신, 학자로본관은 인천, 자는 기지(耆之) 또는 난재, 나재(懶齋), 청허자(淸虛子)이다.충북 음성 용당리(현 원남면 삼용리)에서 태어나 1468년(세조 14) 생원시와 진사시,1469년(예종 1) 증광 문과에 갑과 제1인으로 장원급제하여 곧 사헌부감찰로 임명되었다. 채수의 쾌재정 안내판 1476년 6월, 성종임금의 명으로 조위(曺偉), 채수(蔡壽), 권건(權健),허침(許琛), 유호인(兪好仁), 양희지(楊熙止)등 6명이 선발되어장의사(藏義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쾌재정 입구의 채문식 석비 나재선조 장수지소 16세손 국회의장 채문식(懶齋先祖 藏修之所 十六世孫 國會議長 蔡汶植) 이후 채수는 성종조에 교리 지평, 이조정랑, 충청도 .. 2025. 6. 21.
구미(선산) 해평 삼가정(三檟亭) 구미(선산) 해평의 삼가정(三檟亭)은 가정 유봉시(柳奉時)가 용와 유승현과 양파 유관현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집 앞에 세 그루의 가죽나무를 심고 서재(書齋)를 지어 삼가정이라 하였다. 삼가정(三檟亭)조선 현종 15년(1674) 안동군 임동면 위리에 지었다가, 1922년에는 박곡리로 옮겼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옮겨 지었다.건물은 퇴칸을 둔 정면 4칸, 옆면 한 칸 반 규모이며 중앙마루에는 문짝을 네 개 두었는데, 들어서 걸 수있는 여닫이 문과 쌍여닫이 문으로 이 문을 닫아서 마루를 폐쇄할 수도 있도록 하였다. 삼가정 정문 가정 유봉시(柳奉時,1654~1709)는 전주유씨로 숙종 때 인물이며,초야에 은둔하며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고 자녀교육에 정성을 다했다... 2025. 6. 21.
서애 류성룡의 문경 봉생정 문경 봉생정(鳳笙亭)은 문경 진남교반이 내려다 보이는 야산위에 있다.안내판에 봉생정은 속리산과 대야산, 희양산 등지에서 발원한 가은천과 주흘산 조령산 대미산 등에서 발원한 조령천이 합수하는 용연(龍淵)에 위치한다. 문경 봉생정(鳳笙亭) 독립적으로 구성된 야산의 정상부에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전형적인 정자의 형태로 건립되었으며,주변에는 고모산성, 석현성, 토끼비리 등의 역사유적지가 있고 건물은 사방의 낮은 담으로 둘러쳐 있어 경관을 조망할 수있다. 봉생정 오른는 길 봉생정은 1583년(선조 16)에 서애 류성룡선생이 한양을 오갈 때쉬어갔던 장리지소(杖履之所)를 기리기 위해 그의 문인인 우복 정경세와 향유들이 세웠으며,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것을 1804년(순조 4)에류성룡의 8대손인 .. 2025. 6. 19.
담양 송강정(=죽록정)과 면앙정 담양의 송강정(松江亭)과 면앙정(俛仰亭)을 차례로 둘러본다.송강정은 식영정, 환벽당과 더불어 정송강유적(鄭松江遺蹟)으로 불리는 곳으로 즉 송강 정철(鄭澈,1537~1594)의 유적지이다. 면앙정(俛仰亭)은 송순(宋純,1493~1583)이 건립한 정자로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송강정(松江亭) 송강정은 정철(鄭澈)이 대사헌의 자리를 그만두고 낙향하여초막을 짓고 살던 곳이라고 하여 당시에는 죽록정(竹綠亭)이라 불렀다.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정철을 기리기 위하여 1770년(영조 46)에세운 것으로, 그때부터 이름을 송강정(松江亭)이라 하였다. 송강정 오르는길 정자는 동남향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방이 꾸며져 있다.정자 정면에는 송강정(松江亭).. 2025. 5. 29.
영동 화수루(花樹樓)와 영모재 영동 화수루(永同 花樹樓)는 조선중기인 1546년(명종 1)에 옥계서당으로 세웠던 것을 1804년(순조 4)에 고성 남씨 수일파 문중에서 후손들에게학문을 전수할 목적으로 현재의 위치에 옮겨짓고 이름도 화수루로 바꾸었다. 영동 화수루(永同 花樹樓) 영동 화수루는 상촌면 하도대리 마을안 평지에 세워져 있고전면에 일각대문을 세워 두었으며, 정면 2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간결한 누각식 건물로 추녀의 올림이 경쾌하다. 화수루 편액과 우물마루(강당) 전면열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아 누마루로 만들어 개방해 두었고,후면열 2칸은 온돌방을 두었으며, 4면의 기둥 밖으로2자 정도 마루를 내달고 난간을 세워두었다. 기둥은 누하주(樓下柱)와 누상주(樓上柱) 모두 원주를 세우고기둥머리에서는 창방을 걸고 그 위에 사.. 2025.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