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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171

영주 군자정과 오계서원 영주 평은면 군자정(君子亭)은 1570년(선조 3)에 지은 건물로,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 선생이 공부하던 정자이다.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영주 군자정(君子亭)  정자의 앞쪽에는 군자당(君子塘)이란 연못이 있고, 서쪽에는이덕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오계서원이 있다.이덕홍선생은 10여 세에 이황의 제자로 들어가 오로지학문에만 열중하였다.   군자정 이덕홍은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거북선을, 육지에는거북선 모양의 수레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임진왜란 후에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며,많은 저서를 남겼다.   군자정 측면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 2024. 10. 29.
입재 강재항 삼형제의 봉화 뇌풍정 뇌풍정(雷風亭)은 봉화 법전리 성잠마을에 있는 정자이다.뇌풍정은 입재(立齋) 강재항(姜再恒, 1689∼1756), 설죽당(雪竹堂) 강재숙(姜再淑, 1677~1758) 형제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입재의 6대손 강욱이 1907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봉화 뇌풍정(雷風亭)  조선후기의 정자 건물로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나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고, 노론계열 정자라는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일자형 건물로 암반위에 건축되었다.정자에는 입재문집 310여장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현재는국학진흥원에 기탁보관중이고, 이시영선생이 쓴 현판 10장이 있다.  뇌풍정(雷風亭) 편액 편액은 중앙이 뇌풍정(雷風亭), 왼쪽은 성잠서실(星岑書室),오른쪽은 설죽당(雪竹堂)이며, 뇌풍정 현판글씨.. 2024. 10. 29.
봉화 사덕정과 한산군종택 사덕정(俟德亭)은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에 있는 정자로추만 이영기(秋巒 李榮基, 1583~1661) 선생이 덕을 닦고 선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1641년에 처음 지은 정자이다. 봉화 사덕정(俟德亭)  1863년(철종 14)과 1928년에 각각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고,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루방을 두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9호이다. 연못과 사덕정사덕정 출입문 사덕정(俟德亭) 현판 "사덕정" 이란 이영기 자신은 덕이 있지 않기 때문에 백대토록 이어질덕을 갖고 있는 사람을 기다려 그들과 종유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편액의 글씨는 말미의 낙관에 남병호(南秉鎬)가 행서로 쓴 것이다. 사덕정 앞면과 옆면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 대문채 사덕정 바로옆에는 전주이씨 풍정촌 한산.. 2024. 10. 29.
운무속의 도산서원과 농암종택 그리고 고산정 가을비가 내리는 10월 느즈막에 운무속의 청량산 자락을 찾는다.신선이 노닐다 갔는지, 선녀가 노닐다 갈려는지, 몽환경이다.도산서원과 농암 종택, 고산정을 찾아 운무속을 거닐어 본다. 도산서원 도산서원 강당과 동.서재 강당인 전교당(典敎堂) 고직사(庫直舍) ~ 도산서원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 수령 400여 년의 왕버들 시사단(試士壇) 천연대(天淵臺) 오르는 길 단풍이 들어가는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을 둘러보고 농암 이현보선생 종택으로 농암종택 대문 너머로 보는 청량산자락 운무 이현보(李賢輔,1467~1555)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자는 비중, 호는 농암(聾巖), 설빈옹(雪賓翁), 본관은 영천(永川),시호는 효절(孝節)이다. 농암종택 사랑채 농암은 안동 도산 분천리에.. 2024. 10. 23.
안동 서후면 송은정과 학천정 안동 송은정은 조선시대의 문인 송은(松隱) 송형구(宋亨久)가1664년(현종 5) 이송천 근처에 처음 세운 정자인데, 그 후 쇠락하여1932년 후손 송인명(宋仁命)이 지금의 태장리로 옮겨 지었다.  안동 송은정(松隱亭)   송형구는 안동출신으로 1642년(인조 20)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은퇴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학문을 닦았다. 송은정(松隱亭) 편액 송은정의 내력과 이곳을 찾은 문인들이 남긴 시 편액 들 안동 학천정 입구 바위의 "김태사 단소동 구암(金太師 壇所洞 口巖)" 음각  김태사는 안동김씨 시조 김선평(金宣平)을 말하며 태장재사와 단소는 여기서 1km이내 거리에 있으며 후손들이 새긴듯 하다. 안동 학천정(鶴天亭) 측면 안동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학.. 2024. 9. 21.
화순 학포당과 쌍봉사, 임대정원림 화순 쌍봉마을에 있는 학포당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서화가인 학포 양팽손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서재로 1521년에 처음 건립하였다.현재의 학포당은 양팽손이 쓰던 당시의 건물이 중간에 퇴락하여없어진 것을 1920년에 후손들이 현 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학포당 입구 양팽손(梁彭孫)은 중종 11년(1516) 과거에 급제한 후 정언을 거쳐교리로 재직하던 중,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절친이던 조광조가유배를 당하자 부당함을 호소하다 삭탈관직을 당한 후고향인 화순으로 내려와 자연을 벗삼으며 시와 그림으로 지냈다.  학포당 전경 학포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각지붕으로 꾸몄다.경내에는 학포당을 창건할 당시에 양팽손의 둘째 아들 응태가심었다는 500년된.. 2024. 9. 10.
대구 강창 이락서당(伊洛書堂) 이락서당(伊洛書堂)은 대구. 칠곡. 성주에 세거하고 있는 성주도씨, 밀양박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일직손씨, 광산이씨, 광주이씨,  전의이씨, 함안조씨 등 아홉문중이 인재양성과 향촌 사회의 교화를 위해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과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선생이  활동하던 곳인 파산(대구 강창)에 1798년(정조 47) 처음 건립하였다. 이락서당 전경 이락(伊洛)이란 이름은 정호(程顥). 정이(程頤) 형제가 학문활동을 한, 이수(伊水,금호강)와 낙수(洛水,낙동강)를 뜻하며, 주희(朱熹)까지 포함하는 정주학 즉 성리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락서당 서당이 세워진 이곳 강창은 이수(금호강)와 낙수(낙동강)가만나는 합수지(合水地)이며, 현재 건물은 2010년에 중건하였다. 이락서당과 바로 옆의 금호강 건너.. 2024. 9. 1.
의성향교와 마지막 성냥공장 의성향교는 1394년(태조 3) 창건되어 1545년(인종 1) 중수하였고,대성전과 명륜당은 1745년에 다시 중수하고,광풍루(光風樓)는 1762년과 1910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의성향교  건축형태는 남향으로 배치되어 대성전이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있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형태이다. 대성전이 명륜당 앞쪽 왼편으로 산허리 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의성향교 전경 왼쪽이 명륜당이고 오른쪽 언덕위에 있는 건물이 대성전이다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광풍루(光風樓)  봄,가을에 석전(釋奠)대제를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 2024. 8. 22.
구미 인동 향교(仁同鄕校) 인동향교는 조선 중기에 창건된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창건연대는 미상이며, 현재의 향교는 1864년(고종 1)에 중건되었다.고종 말기에는 옥성학원(玉城學院)이 설립되어 교사로 쓰기도 하였다. 인동향교 입구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6. 25 때 소실되었으며,  동재(東齋)와서재(西齋)도 그 뒤 철거되어 서재 자리에 관리사(管理舍)를 지었다.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신도문(神道門),외삼문 등이 있으며, 명륜당은 초익공오량가(初翼工五樑架)이며공(工)자형 지붕을 하고 있어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향교 정문인 외삼문(外三門)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봄, 가을에 석전(釋奠)대제를 봉행하고 있으며,대성전은.. 2024. 8. 18.
여헌 장현광선생의 구미 동락서원 동락서원(東洛書院)은 1655년(효종 6)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張顯光,1554~1637)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서원으로 구미 임수동 낙동강변 언덕위에 위치해 있다. 동락서원 강당입구 동락서원은 장현광(張顯光) 선생이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1610년에 세웠던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 자리에 묘우를 짓고 서원 체제를 갖추어 "부지암서원" 이라 했다.그 후 1676년(숙종 2) 동락(東洛)이라고 사액이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서원 정문인 준도문(遵道門) ~ 누문(樓門) 형의 외삼문 1904년(광무 8) 영당을, 1932년 묘우를  복원함과 동시에장경우(張慶遇,1581~1656)를 추가로 배향하였으며,1971년 부속.. 2024. 8. 18.
청풍정에 얽힌 김옥균과 기생 명월 이야기 청풍정은 옥천 석호리 대청호반가에 있는 정자이다.산수가 수려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조선말기 김옥균은 본인 주역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자이곳 청풍정으로 내려와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대청호반가의 청풍정 금강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절벽 위에 정자 하나 우뚝 서있다.이곳 청풍정에 김옥균과 명월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회로 김옥균은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사대당 거두들을 사살한 뒤 신정부를 조직하고 호조참판 겸 혜상공국당상이 되었으나 청나라가 군대를 보내 정변을 막는 바람에 삼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옥천 청풍정 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은 명월이라는 기생과 함께 청풍정으로 내려와 울분을 달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그러.. 2024. 8. 9.
담양 명옥헌 원림 배롱나무꽃 명승 제58호인 담양 명옥헌 원림은 따가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이글이글 타는듯한 여름날이면 빨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붉다 붉다 더하여 검붉게 변한 배롱나무 정원을 만날 수 있다. 담양 명옥헌 원림 배롱나무꽃 연못을 중심으로 둑방길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못 한가운데 있는 섬 안에도 배롱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야말로 배롱나무는 이 정원을 온통 뒤덮고 있다.  연못 위에도 연못 속에도 빨갛게 물들인 배롱나무꽃 이곳의 배롱나무는 대부분 고목이 되어 총총히 가지를 뻗고 그 빼곡한 가지마다 빨갛게 탐스러운 꽃무리를 수관 가득히 달고 있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빨간 배롱나무꽃 명옥헌 뜨거워서 더 좋은 빨간 여름 명옥헌 원림 가는길의 하늘수박꽃 2024. 8. 1.
담양 독수정(獨守亭)과 가사문학관 담양 독수정(獨守亭)은 가사문학관과 소쇄원 등이 자리한 무등산 자락인 남면 연천리에 있는 정자이다.고려 공민왕 때에 병부상서를 지낸 전신민(全新民)이 세운 정자인데현재의 독수정은 1972년에 중건한 건물이다. 독수정 오르는 계단 독수정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은거하며 살아가는 선비의 높은 절개를 나타낸다고 한다. ​서은(瑞隱) 전신민(全新民)은 고려가 망한 후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독수정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전신민이 아침마다 고려 도읍지인 송도(지금의 개성)를 향해 절을 하며 충절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독수정 독수정 주변에는 느티나무, 회화나무, 살구나무, 매화 등이  심어져 있다.​ 독수정 전경 독수정 .. 2024. 8. 1.
함양 남계서원 배롱나무꽃에 취하다 함양 남계서원의 7월은 붉게물든 배롱나무꽃에 둘러싸여있다.2019년 7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일두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함양 남계서원(灆溪書院) 배롱나무꽃 1566년(명종 21)에 "남계(藍溪)서원"으로 사액되었다.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으며,1603년에 나촌(羅村, 구라마을)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1612년 옛 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남계서원(灆溪書院)   이 서원은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되었으며,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 전사청(典祀廳), 명성당(明誠堂), 양정재(養正齋), 보인.. 2024. 7. 25.
남명 선생의 덕천서원 배롱나무꽃 남명 조식(曺植)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산청 덕천서원을 찾는다.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에 창건되어,1609년(광해군 1) 사액서원으로 승격했으며, 그뒤 최영경(崔永慶)을 추가 배향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1920년대 복원되었다. 덕천서원 풍경 몇번을 다녀도 배롱나무꽃이 활짝핀 때를 맞추어 가기란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절정인 때를 제대로 맞추어 온것 같다. 홍살문 외삼문인 시정문(時靜門) 강학당과 동.서재 배롱나무꽃이 활짝핀 덕천서원 산청 덕천서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 경의당 대청 경의당에서 본 동.서재와 정문 강당 서편 강당 동편  강당에 걸린 경의당과 덕천서원중수기 등 편액들 사당 입구 내삼문 숭덕사(崇德祠,사당) 사당과 내삼문 측면 사당 벽화(용과 호랑이) 관리동,장.. 202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