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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183

영동 화수루(花樹樓)와 영모재 영동 화수루(永同 花樹樓)는 조선중기인 1546년(명종 1)에 옥계서당으로 세웠던 것을 1804년(순조 4)에 고성 남씨 수일파 문중에서 후손들에게학문을 전수할 목적으로 현재의 위치에 옮겨짓고 이름도 화수루로 바꾸었다. 영동 화수루(永同 花樹樓) 영동 화수루는 상촌면 하도대리 마을안 평지에 세워져 있고전면에 일각대문을 세워 두었으며, 정면 2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간결한 누각식 건물로 추녀의 올림이 경쾌하다. 화수루 편액과 우물마루(강당) 전면열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아 누마루로 만들어 개방해 두었고,후면열 2칸은 온돌방을 두었으며, 4면의 기둥 밖으로2자 정도 마루를 내달고 난간을 세워두었다. 기둥은 누하주(樓下柱)와 누상주(樓上柱) 모두 원주를 세우고기둥머리에서는 창방을 걸고 그 위에 사.. 2025. 4. 21.
효자 박응훈의 호랑이 이야기와 흥학당 영동군 황간에서 물한리계곡쪽으로 가는 매곡면 길가 언덕에는오촌 박응훈(梧村 朴應勳,1539∼1590)의 효자문과 바로 옆에는통덕랑(通德郞) 박수현(朴守玄)의 처 열부 선산 김씨 열녀문이 있다. 효자문과 열녀문이 동시에 있는 쌍려문(雙閭門) 오촌 박응훈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박이룡 장군의 동생으로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는데, 부모상을 당하여 장지를구할 때 호랑이가 나타나 묘소를 정해 주었으므로 이를 호점산소(虎占山所)라 하며, 묘소는 황간면 소계리 안산에 있다. 효자 오촌 박선생 응훈 지려(孝子 梧村 朴先生 應勳 之閭) 박응훈은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는데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공을 지켜 주었다고 하며,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선조 34년(1601년) 정려가 내려졌고, 현.. 2025. 4. 21.
황간향교와 가학루(駕鶴樓) 황간향교(黃澗鄕校)는 1394년(태조 3)에 황간현감 하첨(河詹)이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황학루(黃鶴樓)를 세우고, 황간현(縣)의 뒷산에 창건하였다. 황간향교 전경 그 후 1666년(현종 7)에 토성(土城) 안으로 이건하였고,1752년과 1755년, 1901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는 명륜당을 중수하였다.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홍살문 대성전에는 5성(五聖)과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의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고있다. 외삼문 봄과 가을에.. 2025. 4. 19.
창녕 부용정(芙蓉亭) 창녕 부용정(芙蓉亭)은 창녕군 성산면 달창저수지 상류에 자리하고 있으며, 1580년(선조 13) 창녕 현감이었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지방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창녕 부용정(芙蓉亭) 정구선생은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학, 역사, 천문, 풍수 등다양한 분야에 박학하였으며,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부용정 정면 중앙에는 부용정(芙蓉亭), 오른쪽에는 광풍헌(光風軒) 왼쪽에는 풍욕루(風浴樓)와 재월료(霽月寮) 편액이 걸려있다. 한강 정구선생은 훗날 제자인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에게이 정자를 물려주었으며, 1727년(영조 3)에 불에 타 없어졌다가 53년 후인 1780년(정조 4)에 다시 지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다시 소실되어 195.. 2025. 3. 28.
대구 유학의 출발점 파동 무동재 대구 파동에 위치한 무동재(武洞齋=계동정사)는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 1532~ 1585) 선생이 강학한 계동 정사의 옛터로이곳은 대구지역에 퇴계학을 처음으로 전파한 곳이기도 하다. 무동재 전경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 1532~ 1585) 선생의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계하(季賀), 호는 계동(溪東)이다.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관직은 검열, 정언에 이르렀다. *옥산 전씨(玉山 全氏)는 경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며경산 전씨(慶山 全氏)는 옥산 전씨(玉山 全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역락문(亦樂門) 성리학의 태두인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한때 가야산에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기도 하였다.대구 연경서원(硏.. 2025. 3. 7.
영주 순흥향교 순흥향교(順興鄕校)는 영주 순흥면에 있는 향교로창건시기는 미상이며 처음에 순흥부(順興府) 북쪽 금성(金城)에 창건되었다가 1718년(숙종 44) 동쪽 위야동으로, 1750년(영조 26) 남쪽 석교리(石橋里)로, 1770년(영조 46)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순흥향교 문루인 영귀루(詠歸樓) 현존하는 건물로는 7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각 5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4칸의 동재(東齋), 7칸의 문루(門樓),삼문(三門), 협문(夾門), 주사(厨舍) 등이 있다. 명륜당과 동.서재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의 위패가 동무 · 서무에는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명륜당 명륜당 강당 내부 대성전 삼문 대성전과 동무.서무 대성전 삼문과 협문 명.. 2025. 1. 12.
고려와 조선의 향교(鄕校) 이야기 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유학(儒學)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공공교육기관으로, 유교교육과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재사를 지내는 2가지 역할을 맡았으며, 오늘날의 중등교육 기관 또는지방국립대학, 공립대학에 해당되는데, 현재 전국에 234곳이 남아있다. 함양향교 태극루(太極樓) 중앙인 한성부는 직할 특수행정구역 관할이어서 향교가 없었으며,대신에 향교 역할을 하는 4부학당(四部學堂)과 성균관 등이 있었다.학당은 고려 후기에는 개경(개성)에 있었으나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철폐하고, 한성에 동부학당, 서부학당, 중부학당, 남부학당 등 4곳의학당을 세웠는데 현재 건물은 단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  선산향교 청아루(菁莪樓) 향교의 경내 건물로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통틀어 어진 인물들의위패를 봉안하고 .. 2025. 1. 7.
조선시대의 서원(書院)과 서당(書堂)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제사와 교육을 담당하던지방 기관으로 주로 사대부를 대상으로 유학을 가르치고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그 기능은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유학을 가르치는 강당, 유학생들의 숙식 등 세가지 공간으로 나뉜다.또 서원은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과 일반서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백운동서원(현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周世鵬)선생  서당(書堂)은 향교나 서원과는 다르게 일정한 규칙이나 조건없이 문중이나 마을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용도와 성격이 정해졌다.주로 7세에서 16세 까지가 가장 많았으며, 천자문을 통한 학습과명심보감, 소학, 사서삼경 등 유학을 배우는 초등 교육기관이었다.2024년에 탐방했던 서원(20)과 서당(5) 25곳을 다시 만나본다 1.청도 금호서원(20.. 2024. 12. 26.
김천 봉계마을 봉암서당과 영천이씨 정려각 김천 봉암서당은 봉산면 봉계마을에 있는 조선전기의 서당이다. 1540년(중종 35) 영일(연일) 정씨 문중에서 만취당 정이교(鄭以僑)를 추모하고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도장서당(道藏書堂)으로 창건하였다.  봉암서당 정문 약 100년 뒤 인종 중엽에 각곡(角谷) 평전(坪田)으로 옮겼다가1757년(영조 33)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고 봉암서당이라고 했으며,1895년(고종 32)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천 봉암서당(鳳巖書堂)  서당 건물은 1,652.9㎡(500평) 정도의 부지에, 66.12㎡(약 20평)의 3칸 겹집 건물이다. 봉암서당 편액 이곳 봉암서당에서는 조선시대에 생원 진사에서 대사성,삼도통제사, 참의, 참판, 판서 등 문무(文武) 정 2품까지 75인의 인재를 배출하였고, 근세에는 육군 .. 2024. 12. 5.
주실마을의 월록서당,만곡정사,지훈시공원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영양군 주실마을을 다시 찾았다.주실마을은 1519년 조광조의 기묘사화로 인해 전국에 흩어진 한양 조씨 집안 중 일부가 1629년(인조 7년) 태백준령의 오지인 이곳 영양으로 들어와서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월록서당(月麓書堂) 지난번 왔을 때 오후 늦은시간이라 둘러보지 못한 월록서당과 만곡정사, 지훈시공원 등을 천천히 둘러본다.월록서당은 월하 조술도(趙述道,1729∼1803)가 만곡 조술도(趙述道)와함께 1764년에 착공하여 1773년에 완성하였으며, 한양조씨(漢陽趙氏),함양오씨(咸陽吳氏), 야성정씨(野性鄭氏)가 함께 건축하였다.  영산서당이 서원으로 승격된 후 영양군에서 처음 지어진 서당이다.당시 서당의 설립은 관변측(官邊側)의 지원없이 순수 민자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 2024. 12. 3.
안동 풍천 상봉정과 파산정 상봉정(翔鳳亭)은 서애(西厓) 류성룡의 종증손 회당(悔堂) 류세철(柳世哲,1627~1681)이 도학(道學)을 연찬(硏鑽)하고 강론하며 말년을 보내기 위해 1662년(현종 3년) 하회(河回)마을 서쪽 강건너 언덕 위에 세운 정자이다. 안동 풍천 상봉정(翔鳳亭)  서애 류성룡(柳成龍)은 이곳을 흡사 봉이 하늘을 나는 형국이라 하여,상봉대(翔鳳臺)로 이름짓고 정사를 지으려 하였으나 재력이 없어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지명을 자호(自號)로 하였던 곳이다. 담너머로 본 상봉정  상봉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가운데 마루를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의 상봉정(翔鳳亭)으로,정자의 이름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이곳 절벽을 "상봉대(翔鳳臺)"라 부른데서 따왔다.  1696년 수해로 대지가 침하되.. 2024. 11. 22.
포항 흥해 칠인정(七印亭) 칠인정(七印亭)은 조선 태종 9년(1409) 고려말 흥위위 보승랑장 출신의 장표(張彪)가 건립한 정자로서 포항 흥해읍 초곡리에 있다.정조 21년(1797) 중창, 그 후 1904년, 1986년, 1993년 세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69호이다포항 칠인정(七印亭)  1409년(태종 9) 정자 낙성식을 거행할 때 장표의 네 아들인장을제(張乙濟), 장을하(張乙河), 장을해(張乙海), 장을포(張乙浦)와세 사위인 유정봉(柳廷鳳), 이읍(李邑), 이현실(李玄實)이 모두관인(官人)으로 참여하였으며, 그들은 칠인정 바로 앞에 기이한형상의 쌍괴수(雙槐樹)를 심고, 그 나무에 각자 자신들의 벼슬을 증명하는인수(印綏) 7개를 걸었는데 이를 기념하여 칠인정(七印亭)이라고 하였다.  남향의 정자로서 .. 2024. 11. 10.
영주 군자정과 오계서원 영주 평은면 군자정(君子亭)은 1570년(선조 3)에 지은 건물로,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 선생이 공부하던 정자이다.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영주 군자정(君子亭)  정자의 앞쪽에는 군자당(君子塘)이란 연못이 있고, 서쪽에는이덕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오계서원이 있다.이덕홍선생은 10여 세에 이황의 제자로 들어가 오로지학문에만 열중하였다.   군자정 이덕홍은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거북선을, 육지에는거북선 모양의 수레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임진왜란 후에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며,많은 저서를 남겼다.   군자정 측면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 2024. 10. 29.
입재 강재항 삼형제의 봉화 뇌풍정 뇌풍정(雷風亭)은 봉화 법전리 성잠마을에 있는 정자이다.뇌풍정은 입재(立齋) 강재항(姜再恒, 1689∼1756), 설죽당(雪竹堂) 강재숙(姜再淑, 1677~1758) 형제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입재의 6대손 강욱이 1907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봉화 뇌풍정(雷風亭)  조선후기의 정자 건물로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쳤으나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고, 노론계열 정자라는 의미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일자형 건물로 암반위에 건축되었다.정자에는 입재문집 310여장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현재는국학진흥원에 기탁보관중이고, 이시영선생이 쓴 현판 10장이 있다.  뇌풍정(雷風亭) 편액 편액은 중앙이 뇌풍정(雷風亭), 왼쪽은 성잠서실(星岑書室),오른쪽은 설죽당(雪竹堂)이며, 뇌풍정 현판글씨.. 2024. 10. 29.
봉화 사덕정과 한산군종택 사덕정(俟德亭)은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에 있는 정자로추만 이영기(秋巒 李榮基, 1583~1661) 선생이 덕을 닦고 선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1641년에 처음 지은 정자이다. 봉화 사덕정(俟德亭)  1863년(철종 14)과 1928년에 각각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고,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루방을 두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9호이다. 연못과 사덕정사덕정 출입문 사덕정(俟德亭) 현판 "사덕정" 이란 이영기 자신은 덕이 있지 않기 때문에 백대토록 이어질덕을 갖고 있는 사람을 기다려 그들과 종유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편액의 글씨는 말미의 낙관에 남병호(南秉鎬)가 행서로 쓴 것이다. 사덕정 앞면과 옆면 한산군종택(韓山君宗宅) 대문채 사덕정 바로옆에는 전주이씨 풍정촌 한산.. 2024.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