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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한국 성씨의 뿌리

진양(=진주)하씨 시조 하공진의 세덕사

by 안천 조각환 2025. 8. 23.

진주(晋州 = 진양,晋陽) 하씨(河氏)는 백제시대부터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해온 사족(士族)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토족 성씨이다. 

본래는 같은 뿌리에 연원을 두고 있지만, 고려초기 시조로 볼 수 있는

복야공의 휘(이름)를 상고 할 수 없어 그 후손인 하공진(河拱辰)을 시조

하는 시랑공파와 하진(河珍)을 시조로하는 사직공파의 크게 두 계통으로

시조를 달리하고 있으며, 하성(河成)을 시조로하는 단계공파도 있다.

 

진양(=진주)하씨 세덕사(世德祠)

 

진양(=진주)하씨는 1451년(조선 문종 2)에 경태보가 편찬되었으며,

는 국내에서 가장오래된것으로 보는 안동권씨 성화보 보다 25년이 앞서고

1423년(세종 2) 편찬된 문화류씨 영락보에 이어 두번째 오래된

족보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현재는 세보 서문만

국립중앙전자도서관에 남아 있다.

  

진양하씨 세덕사묘정비(世德祠廟庭碑)

 

진양은 진주의 옛 이름으로 조선초기 진주목이 진양대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진양으로 변경되었다가 여러 행정적 변화를 거쳐 1949년 진주시가 되었다.

진주 대곡면 단목리 세덕사(世德祠)는 진양(=진주)하씨 시조

하공진(河拱辰)의 위패를 봉안한 계원사(啓源祠~사당)가 있는곳이다.

 이곳 세덕사에서 시조에 대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연못속의 세덕사묘정비와 세덕사 건물

 

하공진(河拱辰,미상~1012)은 고려 전기의 무신이요 관료요 공신이다.

994년(성종 13)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

목종 때 중랑장으로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

 중랑장 탁사정 등과 함께 목종이 거처하는 궁궐 주변을 숙위했으며,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郎中)이 되었다.

 

세덕사 정문인 귀후문(歸厚門)

 

1010년(현종 1)에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동원하여

동여진(東女眞)의 촌락을 치다가 패한 일이 드러나 유배당하였다.

그 해 요나라의 성종이 목종을 시해한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핑계로

고려에 침입하자 현종은 고작 2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급하게 피난하였다.

 

세덕사 재실인 경모재(景慕齋)

 

유배에서 풀려난 하공진은 현종을 양주까지 따라가 거란군과 교섭을

자청하며, 현종의 사절로서 요나라 성종을 만나 현종의 친정과 더불어

자신이 불모가 되는 조건으로 거란 군대를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경모재 대청마루

 

그리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 고영기(高英起)와 함께 요나라에

불모로 잡혀가 고려로 탈출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연경(燕京)으로 옮겨져

양가(良家)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마루위의 선장각(璿章閣)과 어제치제문 편액

 

이후에도 저자 거리에서 준마를 구입하여 고려로 가는길 중간중간

배치하여 귀국을 꾀하다가 탄로가 나 요 성종의 국문(鞠問)을 받게 되었다.

 

 

요나라 성종은 이를 기회로 자신의 신하로 만들기 위해 온갖 회유와

악형을 가했으나 "나는 고려인이고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며 완강히 

거절하자  요나라 성종은 크게 격분하여 결국 처형당하게 된다.

 

 

1025년(현종 7) 현종은 하공진과 강민첨의 공로를 높이 사 하공진을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으로 추증하고 영정을 기린각에 모셨으며,

자손들은 공신후손의 대우를 받아 300년 동안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이후 진주는 충절의 고장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정교한 문 창살

 

후손들은 하공진을 진양(=진주)하씨 시조(시랑공파,侍郞公派)로 삼아

1804년(순조 4) 수곡면 사곡리에 사당을 지었는데 고종 때 서원철폐령으로

향사를 중지했다가, 1869년 부조묘(不祧廟)로 바꾸어 자손 봉사하여 오던 중,

1992년 진주성 복원사업과 함께 진주성내에 하공진의 사당인 경절사를

옮겨 세우고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여 향례를 받들고 있다.

 

대들보의 상량문 ~ "기원 4304년 입주 상량"으로 서기로는 1971년 건립이다

 

진양(=진주)하씨들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문과급제자 45명, 

무과급제자 88명을 배출한 대표적인 문무겸전의 명문가문이다.

종묘배향공신 2명, 영의정을 지낸 하륜(1347~1416)과 하연

(1376~1453) 등 상신 2명, 대제학 1명 등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진양(=진주)하씨의 인구는 23만 여명이다

 

염수당(念修堂) ~ 경모재와 사당 사이에 있다

 

시랑공파는 고려조에는 하탁회, 하정재, 하남수,하소를 비롯하여 하소의 아들인

하호, 하부, 하부심 3형제가 문과급제를 하여 양친이 전곡을 하사받았다.

 조선초 무관으로서 명성을 떨친 하경복, 하한, 하숙보는 3대에 이어

고위 무관관료를 거쳐 중추원의 재상직에 임명되었다.

 

염수당 내부

 

조선 태종 대에 국가의 초석을 다지는데 공헌한 종묘배향공신

영의정 하륜이 대표적인 인물이며, 고려말 최고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목은 이색의 손녀인 한산 이씨(장남 이종덕의 딸)가 하륜의 며느리가 된다. 

 

내삼문(사당 출입문인 신문)인 사경문(思敬門)

 

사직공파 시조 하진(河珍)고려 정종과 문종조에 사직(司直)을 지냈으며,

후손들로는고려말 하즙, 하윤원, 하유종은 3대에 걸쳐 봉군 작위를 부여받았다.

조선조의 하연은 영의정을 지냈으며, 하위지는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 하담이 문과급제 하고 아들 하강지, 하위지, 하기지 3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여 찬사를 받았으나 단종복위 계획이 탄로나 아버지와 아들,

형제들까지 모두 처형된다.

 

계원사(啓源祠, 사당) ~ 시조 하공진의 위패를 봉안

 

사당에서 내려오며 뒤에서 보는 세덕사묘정비

 

세덕사묘정비 좌우 측면과 세덕사앞의 하경완 인선 기적비(河京完 仁善 紀蹟碑)

 

후손 하경완(河京完)은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한 재일교포로

1976년 세덕사를 건립하고 묘정비를 세웠으며, 세덕사 건너편에

재실인 청우재를 건립하였고,1967년 대곡고등학교를 건립했으며,

진양호의 우약정 정자, 중앙로타리 칼라분수대, 양수장 등을 건립하여

진주시에 기부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의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상하였다.

 

세덕사 앞에 세워진 세덕사묘정비(오른쪽)와 하경완 기적비(왼쪽)

 

진양(=진주)하씨 재실인 청우재 전경

 

청우재 정문

 

진양(=진주)하씨 재실 청우재(聽雨齋)

 

우람한 청우재 마루와 궁전을 방불케 하는 조각들

 

 

 

청우재의 6개 석조기둥

 

청우재에서 보는 앞마당 석조물과 전경

 

궁전을 연상케하는 석등과 청우재

 

청우재(聽雨齋)와 매헌(每軒) 편액, 하경완 부친 하길식 상 석비, 하경완 불망비

 

담장 밖에서 보는 청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