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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한국 성씨의 뿌리

전의.예안이씨 시조 이도(李棹)

by 안천 조각환 2025. 10. 18.

전의 이씨(全義李氏)는 고려 개국공신 성절공 이도(李棹)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유서깊은 성씨로, 전의는 세종시 전의면, 전동면, 소정면 일대이다.

전의이씨 시조 이도(李棹)의 묘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자랑할

정도로 명당이라하며, 즉 호랑이가 노려볼 개바위가 있고 기운이 옹골차다.

 

고려 태사 전의 이도공(高麗 太師 全義 李棹公) 신도비~ 전의면 묘소입구

 

시조 이도의 초명은 치(齒)이며 본래 공주에 세거하였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고자 남하하여 금강을 건너는 중,

홍수로 인해 강물이 범람하여 군대가 발이 묶였을 때, 이도가 태조를 도와

험류를 무사히 건너는데 도움을 주자태조는 "너는 마치 도(배의 노)처럼

나를 건너게 하였구나" 라며 도(棹)자를 이름으로 하사하였다.

 

이도(李棹)의 신도비 좌.우 

 

그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고려통합 삼한개국 익찬2등공신

(高麗統合 三韓開國 翊贊二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벼슬이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태조는 군사적 요충지인 

청주목인 전의, 전동지역 토지와 수천호의 식읍을 하사하고 전산후

(全山侯)에 봉작하였으며, 사후에 시호는 성절공(聖節公)을 내렸다.

 

이도(李棹)의 신도비 뒷면(건너 맞은편에 재실 숭의당과 사당인 경원사가 있다)

 

이 후 그는 전의 이성산(李城山) 아래로 이거(移居)하여 정착했고,

후손들은 전의(全義)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있다.

또한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이라는 가훈을 바탕으로 

충절과 효행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 가문의 대표적인 청백리인

이정간(李貞幹,1360~1439)의 효행은 세종대왕의 어필 가훈으로도 유명하다.

 

전의이씨 시조묘역 입구 ~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이도(棹)의 7세손인 이천(李仟)은 고려 고종 때 대몽항쟁의 명장으로

당시 해전에서 몽골 수군을 격파한 전공으로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올라,

전의이씨의 중시조 반열에 올랐으며, 이후 이천(李仟)의 세 아들을

중심으로 전의이씨 삼대분파가 갈리게 된다.

 

 

첫째아들 이자원(李自元)은 문신집안의 계보를 이어 대사성의 관직에 올라

대사성공파(大司成公波)의 파조로, 둘째 아들 이혼(李渾)은 고려 예안백,

첨의정승까지 올라 문장공(文莊公)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이후 후손들은

안동 예안지역으로 분적되면서 예안이씨(禮安李氏)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의 이씨 시조 이도(李棹)의 묘 ~ 2025년 여름 홍수피해로 묘소 보수공사 중 

 

셋째 아들 이자화(李自華)는 무신집안의 계보를 이어 지밀직자사를 역임하여

그의 후손들은 전서공파(典書公波)로  무관계열의 전통을 계승하는 등 

 삼분파가 형성되었다가 현재는 전의.예안이씨(화수회)로 통합되어 있다.

 

묘소 후룡(뒤편)

 

전의.예안이씨는 조선시대에만  문과급제자 188명을 배출하였으며,

특히 청백리 9명을 포함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상신 5명,

 판서급 이상 25명, 삼군수군통제사 14명을 배출한 명문 성씨 가문이다.

인구는 16만 4천여명으로 전의이씨 14만6천여명, 예안이씨 18천여명이다.

 

이도(李棹) 묘소 안산

 

또한 전의이씨 종중이 세운 이태사선산(李太師先山, 이도의 상계)

사적비(事蹟碑)에 의하면 "이석재(이도의 상계로 추정)의 묘지가 

있는 곳은 공주 신관동 석방산 아래이고 갈룡음수형이다.

~ 영조 갑술 족보수정시 이덕용(李德容)이 쓴 글 ~

 

옆 골짜기에 보관중인 이도(李棹) 묘소 석물

 

전설에 의하면 전의(全義) 이태사의 선대가 살면서 행려인(行旅人)

접대구제(接待救濟)하여 크게 은혜를 베풀었더니 어느 날 괴이한 중이

적덕한 사람을 알아보고 좋은 묘자리를 잡아주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장사를 지내면 자손이 매우 번성하여 금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이씨는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도 묘소 아래의 "벡송 2주(二株) 헌수(1993년)비와

전나무 1,000그루 헌수 기념비(1990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년에 가까운데도 그 고장 사람들은

이 묘를 가르켜 이태사 선산(李太師 先山)이라 칭하고 있다.

다만 이 묘에 관한 상고 할만 한 문헌이 없으며, 태사공 이도의

위로 몇 대 인지도 알 수 없는 관계로 이론의 여지가 많은것 같다.

 

전의이씨 시조 이도의 묘(수해 전, 수해 당시, 보수중인 현재)

 

전의이씨 재실 ~ 영모재와 숭의당

 

철도를 낀 건너편에는 사당이 있고, 향사일은 음력 3월 3일과 10월 2일이다.

 

전의이씨 영모재 경원사(景遠祠, 사당) ~ 자료(추후 보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