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裵門)의 비조(鼻祖,원조)는 신라의 육부촌장 중 한 사람인
지타(祗沱,只他)인데, 그는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현 경주 명활산
(明活山) 아래 분황사 일원의 촌장으로서 기원전 57년 6촌이 연합한 후
박혁거세를 군주로 추대하여 신라(서라벌)를 건국한 6촌장 중 한사람이다.

경주 육화문(六和門) ~ 배(裵)씨 문중 비조 지타(祗沱)의 사당인 경덕전 정문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타 촌장은 기원전 69년(임자,壬子) 3월 어느날,
다른 5부 촌장과 함께 자제들을 거느리고 경주 알천가 양산 기슭에서 6부가
한데 뭉쳐 나라 세울 일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멀리 나정(裸井) 숲 사이에서
한 줄기 서광이 하늘을 뻗는지라 달려가 보니, 큰 박 같은 알이 있어
쪼개 보았더니 해와 같이 환한 미소년이 나왔다.

경덕전 ~ 왼쪽 육화문, 멀리 한존재(閑存齋), 오른쪽 유허비, 경덕전은 안쪽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 여겨 "밝은 누리"(박혁거세,朴赫巨世)라 이름짓고
거두어 기르기 13년(서기전 57년, 갑자년,甲子年)에 박혁거세를 임금으로
삼아 6부가 한 나라로 우뚝서니 국호가 서라벌이요, 천년왕국의 출발이었다.

경덕전(景德殿) ~ 경덕사(景德祠)를 경덕전으로 변경(2025년)
경덕전(景德殿)은 신라개국의 원훈(元勳,나라를 위해 세운 가장 큰공)인
배지타(裵祗沱)와 고려개국 원훈 배현경(裵玄慶)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음력 1월 5일과 양력 4월 18일에 향사를 올린다고 한다.

금산가리부장 배지타 유허비각
신라 태조 3년(서기전 55, 병인년) 6부공신의 위치를 정할 때, 지타공은
개국좌명1등원훈총재태사에 이르렀으며,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는
신라 개국의 공을 참작하여 건국의 아버지격인 6부 촌장들에게 마을 이름과
신라 6성(姓)인 배(裵), 이(李), 최(崔), 정(鄭), 손(孫), 설(薛) 성이 내려졌다.

금산가리부장 배지타 유허(金山加利部長 裵祗沱 遺墟)비와 이전연혁 기문비
~ 명활산 아래에서 1984년 이곳으로 이전
즉 지타(祗沱)의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은 한지부(漢祗部)로, 성은 배(裵)씨,
알천양산촌장 이알평(李謁平), 돌산고허촌장 최소벌도리(崔蘇伐都利),
취산진지촌장 정지백호(鄭智伯虎), 무산대수촌장 손구례마(孫俱禮馬),
명활산고야촌장 설호진(薛虎珍) 등을 하사 받았다.

경덕전 담장
법흥왕 3년(서기 516)에는 지타공에게 문양(文讓)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무열왕 3년(서기 656)에는 장열왕(壯烈王)으로 추봉되었다.
그 후 후손들은 배씨 문중의 득성조(得姓祖)로 삼았다.

바로 인근의 돌산고허촌장 최소벌도리공 기적비(비각)
그 이후 신라말과 고려초를 거치면서 지타로 이어지는 가계(家系)는
실전(잃어버림)되고 대(代)를 밝힐 수 있는 문헌이 없어, 경주배씨는
고려 개국공신인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삼고, 한지부(漢祗部)가
경주에 속해 있음으로 경주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된다.

돌산고허촌장 최소벌도리공 기적비(崔蘇伐都利公 紀跡碑)
배현경(裵玄慶,874~936년)은 신라 말 경문왕 때 사람으로
초명은 백옥삼(白玉衫)이며, 이는 흰구슬과 같이 훤출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인,용(智,仁,勇) 삼덕(三德)을 높이 받들어
구국제민(救國濟民)의 선봉이었다 할 수 있으며, 담력과 지략이
남보다 빼어났고, 문장과 무예가 출중하여 태봉국의 국왕 궁예(弓裔)
휘하의 행오(사병)에서 몸을 일으켜 계급이 군장에 이르렀다.

배씨 중시조 배현경 단소(묘역)입구의 숭모문(崇慕門) ~ 칠곡 지천면 낙산리
그러나 태봉국 궁예의 폭정이 심해지고 민심을 잃게되자
배현경은 918년 신숭겸, 복지겸, 홍유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고려 개국일등공신으로 책록되고 정승인 대광(大匡)에 오른다.

무열각(武烈閣) ~ 2017년 건립
또한 고려의 건국과 함께 삼한 재통합의 대업을 완수 하였으며,
919년(고려 태조 2)에 도읍지를 송악으로 옮길 때 개주도찰사로서
새 도읍을 건설하는데 앞장 섰으며, 궁예를 지지했던
태봉국 잔당을 소탕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배현경 단소(壇所, 묘역) ~ 1998년 설단(設壇)
왕건은 그 공을 높이 평가하여 백옥삼에게 배(裵) 성을 사성(賜姓)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사하였으며 이름도 현경으로 사명(賜名)하였다.
고려사에서도 배현경은 왕건의 최측근이자 군사전략가였으며, 후삼국
통일과정에서도 수차례 전쟁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운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태조 왕건은 배현경 사후 무열(武烈)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994년(성종 13)에는 다른 공신들과 함께 태사(太師)로 증직되었으며,
특별히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유금필 4태사는 철상(鐵像)을 만들어
평산에 안치하게 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평산 태백산성에
태사사(太師祠)를 세워 태조 묘정(廟廷)에 수향(首享)되었으며,
후손들은 그를 실질적인 시조로 삼았다.

배현경은 마전(麻田: 지금의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崇義殿),
평산 태사사(太師祠), 나주 초동사(草洞祠), 산청 평천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배현경 단소
우리나라 배씨는 문헌상 136개의 본관이 전하고 있으나, 모두
비조와 중시조가 동계혈족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으며,
크게는 경주,김해,성주,대구(大邱),흥해(興海),협계(俠溪),곤양(昆陽),
화순(和順) 등 10여 본은 후손들이 번창함에 따라 조상 대대로 살던
고장 이름과 조상의 작호(爵號)를 연유로 여러 본으로 분관된 것이라 한다.

배현경 신도비(앞,뒤,우측면) ~ 1998년 설단(設壇)시 신도비도 같이 세움
그러나 각 본관별로 시조에 대한 다소의 차이는 있는데 살펴보면
경주 배씨(慶州裵氏)는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시(중)조로,
중시조는 조선 중종 때 의서습독관을 지낸 배충과(裵忠果)로 한다.

안산
그리고 배현경의 현손인 가락군(駕洛君) 배사혁(裵斯革)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배원룡(裵元龍)은 분성배씨(盆城 裵氏),
둘째 배천룡(裵天龍)은 성산배씨(星山 裵氏), 셋째 배운룡(裵雲龍)은
달성배씨(達城 裵氏), 넷째 배오룡(裵五龍)은 흥해배씨(興海 裵氏)로
각각 분적하였고, 달성 배씨에서 곤산배씨(昆山 裵氏)가, 흥해 배씨에서
혐계배씨(俠溪 裵氏)가 각각 분적하였다고 한다.

측면(청룡쪽)
대부분 배씨의 계보는 고려 개국공신인 배현경을 중시조로 삼아서
계보를 잇고 있으며, 모든 관향이 배현경의 후손을 자처하고 있고
족보도 통합해서 간행하고 있는 등 배씨의 실질적인 시조이다.
우리나라 배씨인구는 40만여 명으로 인구 순위 26위인 대성이다.

묘정에서 보는 충열각과 안산
분성 배씨(盆城裵氏)의 시조는 배현경의 6세손인 배원룡(裵元龍)으로,
그는 도병마사(都兵馬使) 및 평장사(平章事) 등을 역임하고, 고려 우왕 때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는데 그 분성(김해의 옛 지명)을 본관으로 삼았다.

묘역입구의 충열각과 숭모문
그러나 성주 배씨(星州裵氏)는고려 삼중대광(三重大匡)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오른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그의 5세손 배인경(裵仁敬)이 고려 충선왕 때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역임하고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해지고,
11세손 배극렴(裵克廉)이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어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는데, 성산백 작호를 따라 성주(성산)를 관향으로 삼았다.

흥안부원군 배인경의 사당, 신도비, 흥안재, 대문 ~ 성주배씨 성주 흥안재(興安齋)
달성 배씨(達城裵氏)의 시조는 배현경의 6세손인 배운룡(裵雲龍)으로
그는 고려 중엽 달성군(達城軍)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8세손 배정지(裵廷芝)는
고려조에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으며, 배정지의 둘째 아들
배천경(裵天慶)이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와
동경윤(東京尹)을 역임하였는데, 작호를 따라 달성(대구)을 본관으로 삼았다.

달성배씨 시조 배운룡(裵雲龍) 제단 ~ 칠곡 낙산동
또 흥해 배씨(興海裵氏)는 배현경을 도시조로,
검교장군(檢校將軍) 배경분(裵景分)을 시조로 하며, 그의
후손인 배전(裵詮)이 고려 충혜왕조(忠惠王朝)에 삼중대광도첨의평리
(三重大匡都僉議評理)에 올랐고 충숙왕 8년에 흥해군(興海君)에
봉 해짐으로 흥해(興海)를 관향으로 삼는 등 본관별로 다소의 차이가 있다.

배현경을 배향한 산청 평천서원(平川書院) ~ 서원 강당, 사당, 대문, 서원전경
평천서원(平川書院)은 배현경(裵玄慶),배신침(裵愼甚),배세겸(裵世謙) 등
3위(位)를 배향한 서원으로 산청군 생초면에 위치하고 있다.
1694년(숙종 20)에 창건, 1868년(고종 5) 서원철폐평으로 훼철되었다가
1990년대 대진 고속도로 건설로 생지봉 아래 현 위치로 이건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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