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계산성당은 1902년에 건립된 100년이 훨씬넘은 고딕식 건물로
서울의 명동성당, 전주 전동성당과 쌍벽을 이루는 유서깊은 건물이며,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특히 1950.12.12 고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하다.
또한 동산병원 안쪽 3.1독립만세를 처음외치던 청라언덕위에 있는 구 선교사주택은
1910년 전후에 건립되어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건물로 현재는 선교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대구가 고향인 동무생각의 작곡가 박태준의 청라언덕 기념비가 있다.
계산성당
성당내부
1950.12.12 오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계산성당안 바로 이곳에서
당시 허억 대구시장의 주례로 혼례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이날 주례는 "육영수군과 박정희양의 결혼식을 올린다" 고 말해
하객들이 웃음꽃을 피었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의료선교박물관으로 1910년 전후의 선교사주택 3채가 보존되어 있는곳이다.
1)선교서 스윗즈 주택
종탑
2)선교사 챔니스 주택
3)선교사 블레어 주택으로 1910년에 지은 주택
블레어주택 뒷쪽
청라언덕 기념비가 있는곳
청라언덕 기념비
동무생각 가사의 내력
작곡가 박태준(朴泰俊) 선생은, 1901년 1월 11일 대구 동산동72번지에서 태어나 1986년 10월 20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상업을 하는 아버지 박순조는 일찍이 세례를 받은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그는 역시 기독교계통의 학교인 대구계성학교에 1911년 9월 20일 입학하여 1916년 3월 3일 졸업하였다.
계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졸업 후 대구제일교회의 오르간연주자가 되었다.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해 음악을 전공하고 1921~1923년 마산의 창신학교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했다. 이때 시조 시인 노산 이은상은 같은 학교에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 교분이 두터워 후에 사돈관계로 이어진다. 창신학교는 원래 이은상의 아버지인 이승규가 세운학교이다.
박태준 선생은 계성학교에 다닐 무렵 역시 동산동에 소재한 같은 개신교계통의 학교인 신명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을 무척 사모했으며 등교길에 지나치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짝사랑을 하였다. 그 여학생은 마치 백옥과도 같은 흰 피부를 지닌 절세미인으로 한 송이 흰 백합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태준 선생은 내성적인 성품 탓에 말 한마디 못했으며 졸업 후 그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만다.
노산이 이 얘기를 듣고 “잊지 못할 그 소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그 곡 안에 담아 두면 박 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며 “가사를 써 줄 테니 곡을 붙여보겠나?” 하고 즉석에서 시를 써서 건넨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곡이 바로 우리가곡 ‘동무생각’이며 ‘청라언덕’이란 이 가곡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박태준 선생이 살던 대구 중구‘동산동’은 동산이 하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동산엔 미국에서 온 선교사의 사택이 자리하고 있고, 또 그들이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최초로 심은 사과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사과나무의 자손목이 남아 있지만 대구가 사과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곳은 선교사들이 살기 위해 지은 집은 모두 미국 켈리포니아 방갈로 풍의 2층 반양옥으로 지금은 지방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으며, 이 집의 담벼락엔 하나같이 푸른 담쟁이넝쿨이 휘감아 오르는 고풍스런 멋을 자랑한다.
곡의 가사에 보이는 ‘청라언덕’이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써서 박태준이 살던 동네언덕을 지칭한 말이다. 한 가지 더 기가 막히는 표현은 그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마치 백합과도 같이 흰 피부를 지닌 소녀이기 때문에 가사에 등장하는 백합화는 바로 그 여학생을 두고 한말이다. 그러면서도 ‘짝사랑’이니, ‘연인생각’이니 하는 통속적인 말을 삼가고 그저 ‘동무생각’(처음엔 ‘사우(思友)’라고 함)으로 명명한 것을 보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 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가곡‘동무생각’은 모두 4절로 되어있는데 1절은 봄을 노래한 청라언덕의 이야기이고, 2절은 노산이 사는 마산의 가포해변을 배경으로 해서 여름을 노래했으며, 3절은 다시 가을을 노래한 이곳 동산의 이야기이고, 4절은 겨울의 노래로 그 배경은 수도 서울로 짐작된다.
3절에 보이는 ‘서리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 금 새 뛸 적에~’의 동산의 연못은 1899년에 설립되어 1903년에 이곳 동산으로 옮겨 지은 동산병원의 건립 때 1923년까지 있었던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의 천황당 못에서 물을 끌어다 경내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풍차를 돌려 동산 내에 여러 집과 병원의 물을 공급하는 수원으로 삼은 운치를 더한 정원으로 꾸몄던 곳을 말하며, 이 노래가 만들어 질 무렵까지 있었던 이 연못은 서문시장이 확장 건립되면서 큰 연못(천황당 못)이 메워지던 1923년에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
참고로 3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서리바람 부는 낙엽 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 금 새 뛸 적에
나는 깊이 물속 굽어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꽃 진 연당과 같은 내 맘에 금 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뛰놀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렇듯 한 예술가의 꿈과 추억이 서린 이곳에 노래비를 세우고 기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문화와 예술이 꽃피던 우리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함이며, 이 언덕을 찾는 이들의 마음속에 끝없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의 노랫소리와 더불어 이 청라언덕이 언덕의 도시 대구(大邱)의 명소, 대구의 몽마르트로 자리매김하게 되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제일교회
계산성당과 매일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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