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파란 같은시조 아래의 한 종파만을 일컫는 말이다.
공파에 앞서 성씨(姓氏)를 알아야 하는데, 성씨란 출생의 혈통을 나타내거나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를 가리키는 가족용어 또는 칭호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성씨의 역사가 가장 오랜 민족은 중국인데 그와 이웃한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를 모방한 한자성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고비마다 새로운 성이 생겨나기도 하고, 기존의 성이 분열하여
분관· 분파작용을 하였는가 하면 소멸되기도 하는 등 많은 변천을 거듭해 왔다.

창녕조씨 족보(병오보,丙午譜)
처음은 삼국시대의 왕실·귀족순으로 수용되어 왔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적 성씨체계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는 시기는 고려 초기로 본다.
이러한 성씨체계가 정착된 후에도, 자손들이 점점 번창하여지면서,
자손들 중에서도 역사적인 특출한 인물이 나타나게 되면 그분의 벼슬 직위나
시호(諡號,사망후 왕이 내린 호)를 따서 또 새로운 분파를 이루게 된다.

창녕조씨 찬성공파(贊成公派) 파보
이렇게 벼슬직위에 따라서 파를 형성한 경우는, 한 직위를 거쳐간 인물이
많으므로 같은 성씨는 물론이고 다른 성씨에도 똑 같은 이름의 파가 생기게된다.
시호를 따른 경우는 중복되는 시호가 드물기 때문에 다소 적다.
성씨(姓氏) 다음에 공(公)자를 넣는것은 공평하다는 의미와 함께
높여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할것이다.
파(派)는 물갈래 파자로 말 그대로 갈라진다는 뜻이다.

창녕조씨 찬성공파(贊成公派)란 고려말 좌찬성(贊成公) 벼슬에 이른
조경수(曺敬修)를 파조(派祖)로 하는 그 아래 후손들을 말하는 것이다.
조경수(曺敬修)는 고려말(高麗末)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위화도 회군을 단행해
창왕을 옹립한 공으로 좌시중에 오른 조민수(曺敏修)장군의 동생이다.
1389년(고려 창왕)에 조민수(曺敏修)가 이성계와 뜻이 맞지않아
창녕(昌寧)으로 유배(流配)되면서 정권(政權)으로부터 소외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개경에 살면서 명문가(名文家)를 형성하고 있던 동생 조경수(曺敬修)의 3남인
조심(曺深)이 벼슬을 버리고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로 낙향하게된다.

시조 조계룡(曺繼龍) 묘소(경주 안강)
다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시조(始祖)는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의 사위인 조계룡(曺繼龍)이며,
중시조(中始祖)는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사위인 조겸(曺謙)이시다.
이후 혼돈의 시기를 거쳐 갱기(更起)로 다시 정리하여,
조겸의 16세(世)인 송무(松茂), 송군(松君), 송학(松鶴) 삼형제를 1세로 하였는데,
우리 찬성공파는 첮째인 조송무(曺松茂)를 갱기 1세로 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파조인 좌찬성(贊成公) 조경수(曺敬修)는 송무의 6세(世),
입향조 조심(曺深)은 7세(世), 조석문(曺錫文)은 8세(世), 매계 조위(曺偉)는 9세(世),
조시영(曺始永)은 15세, 환자(煥字) 항렬인 조봉암(曺奉岩)은 24세,
규자(圭字)는 25세, 현자(鉉字)는 26세, 영자(永字)는 27세로 계속 이어진다.

조상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면
좌찬성 조경수(6세)를 중심으로 큰형은 민수, 둘째형이 익수 이렇게 3형제이고
위로 조경수의 부친은 조우희(曺遇禧,5세), 조부는 조원계(曺元桂,4세)이시며
조부모와 부모, 형들인 민수, 익수 묘소는 모두 창녕에 모셔져 있다.
막내인 찬성공 조경수 묘소는 민통선 안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에 있어
성묘도 못하고 있는바, 적정한 장소를 물색하여 묘단설치라도 검토해봄직 하다.
조경수 후손으로는 아들이 김천 입향조이신 참의공 조심(曺深,7세)으로
김천 대문중인 참의공파가 되며, 그 아래 자손별로 선무랑등 각각 분파가 있다.
참고로 조위(曺偉,9세) 문장공파, 조유(曺逾,14세) 우졸당, 조술(曺述) 경매당
또 그아래로 15세의 지사공파, 인재공파, 삼석재파, 시직공파 등등,
세월이 흐르고 후손들이 번창할 수록 분파도 점점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창녕 조원계(曺元桂,송무 4세)와 부인 김씨(아래) 묘소
조원계(曺元桂) 선조는 갱기(更起) 1세인 송무(松茂)의 4세손이고,
환(煥)자 항렬의 20대 선조되시며, 고려말 중무지후(中門祗侯)를 역임하였고,
찬성사(贊成事)로 추봉되었다. 약 600여년이 넘은 산소아다.

조우희(曺遇禧,송무 5세) 선조 묘소
조우희(曺遇禧) 선조는 원계(元桂) 선조의 아들(子)로써
송무(松茂)의 4세손이고 환(煥)자 항렬의 19대조가 되신다.
슬하에 민수(敏修), 익수(益修), 경수(敬修,찬성공) 삼형제를 두셨는데
셋째인 경수(敬修)는 벼슬이 좌찬성에 올랐으며, 창녕조씨 찬성공파 파조이시다.

조익수(曺益修,송무 6세)의 묘소
조익수는 조선초기 경상 병마절제사, 초토안무사 등을 역임하였다.

조우희(曺遇禧) 묘소(뒤편)와 조익수(曺益修) 묘소(앞)
조우희(曺遇禧)와 조익수(曺益修) 부자의 묘소는
창녕 남지에 모셔져 있으며, 고려말 조선조 초기에 세워진 묘소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조민수(曺敏修,송무 6세)의 묘소
조민수(曺敏修)는 조우희 선조의 맏 아들이며,
고려의 무신으로 요동정벌군 좌군도통사로 출정한 뒤 위화도에서
이성계와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공으로 충근양절선위동덕안사공신(忠勤亮節宣威同德安社功臣)에 책록되고,
양광·전라·경상·서해·교주도도통사(楊廣全羅慶尙西海交州道都統使)를 지냈다.

조민수의 묘소 아래 재실
~조민수의 후손들은 주로 전남 보성등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음력 2월에 묘제를 지낸다~
조민수(曺敏修) 장군은 1389년(창왕 1)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을 반대하여
조준(趙浚) 등의 탄핵으로 창녕(昌寧)에 유배된 뒤 창왕의 생일에 특사로 풀려났으나,
우왕의 혈통을 에워싼 논쟁으로 이성계 일파에 대항하다가 서인(庶人)으로 강등되고,
이듬해 다시 창녕으로 유배되어, 이곳 창녕 배소에서 사망하였다.
충근보리공신(忠勤輔理功臣)에 녹훈되고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묘소는 창녕 대합면 신당리에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282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천 입향조 조심(曺深,송무 7세)의 묘소
김천에 입향한 조심(曺深)은 이후 후손(後孫)들이 집성촌(集姓村)을 이루며 살았다.
창녕 조씨(昌寧 曺氏)가 김천(金泉) 지역(봉계,선돌)에 입향한 이후(以後) 두드러진
인물로는 울진현령 조계문(曺繼門)의 아들 조위(曺偉,송무 9세) , 조전(曺佺),
조신(曺伸)이며, 이들 3형제를 조문 삼문장(曺門 三文章)으로 불렀다.
조시영(曺始永,송무 15세)은 한말(韓末)에 경상도 관찰사(觀察使)를 역임(歷任)했고
조응방(曺應邦)은 순조(純祖) 때 효행(孝行)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좌의정과 영의정을 역임한 조석문(曺錫文,1423~1477,송무 8세)은
찬성공 조경수(曺敬修)의 둘째 아들인 관찰사 조항(曺沆)의 아들(조경수의 손자)로
김천 입향조 조심(曺深)의 바로 조카가 되며, 은퇴 후에도 한양에 주로 거주하였다.
문장공 조위(曺偉)선생도 11세때인 1464년 당숙인 충간공 조석문(忠簡公,曺錫文)에게
가서 집안에 머물며 소학을 배우고, 독서를 하며 학문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조석문의 묘소는 파주 장단면 민통선 안에 있다.

조위(曺偉)선생의 묘
조위(曺偉,1454~1503)는 성종조(成宗朝)의 대 문장가(大文章家)이다.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이며,
자형(姉兄)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에게 수학(受學)하였는데,
점필재가 "태허(太虛)야 말로 나의 스승이다." 할 정도로 학문이 대성하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성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아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에 이르렀다.
홍문관(弘文館)의 관료들과 두시언해(杜詩諺解)를 완성하고
그 서문(序文)을 섰으며, 유배가사의 효시인 "만분가"를 비롯한
379수의 시(詩)와 서(書),기(記) 등이 수록된 매계집(梅溪集)이 있다.
시호(諡號)는 문장(文莊)이다.

관찰사 조시영(曺始永,1843~1912,송무 15세)의 묘(김천 대항면 마암리)
조시영(曺始永)은 동부승지와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892년(고종 29)에 시조 탄생 설화지인 창녕 화왕산 정상 용지 동편에
창녕조씨득성지지(昌寧曺氏得姓之地) 표석비를 세우고,
시조 탄생지로 추정되는 창녕 고암면 대암리에는 창녕조씨 시조영적비
(昌寧曺氏始祖靈蹟碑)와 비각인 일원각을 건립하였다.
*영적비명은 우부승지 완산 이건창(右副承旨 完山 李建昌)이 지었다(撰)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의 묘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1899~1959)은 송무 24세이며 강화 입향조인
조윤신(曺胤申,고성공.高城公)의 8대손으로,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고
대통령 후보였으며, 1958년 1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체포되어 1959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1월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
저서로 공산주의 모순발견, 우리가 나아갈 길, 우리의 당면과제 등이 있다.
창녕조씨 찬성공파 약보(略譜)
始祖 ①曺繼龍 ― ② 應神 ― ③ 壽享 ― ④ 敦 ― ⑤ 欽 ―
⑥ 謙 中祖(高麗太祖駙馬) ― ⑦ 瑞 ― ⑧ 延祐 ― ⑨ 漢知 ―
⑩ 之賢 ― ⑪ 思詮 ― ⑫ 正鱗 ― ⑬ 仲龍 ― ⑭ 義文 ―
⑮ 自奇 ― ⑯ 允恭 ― ⑰ 碩 ― ⑱ 誼 ― ⑲ 挻文 ―
⑳ 瑀 ― (21) 松茂
更起 ①世 송무(松茂)―②준(俊)―③인취(人取)―④원계(元桂)― ⑤우희(遇禧) ―
⑥경수(敬修,좌찬성.左贊成)―⑦심(深,참의공.參議公)―⑧계문(繼門,울진공.蔚珍公)―
⑨위(偉,문장공.文莊公)―⑩사우(士虞,별제공.別堤公)―⑪윤희(胤禧,영월공.寧越公)―김천,봉계
―윤신(胤申,고성공.高城公)―강화,인천
―윤지(胤祉,양구공.楊口公)―부평,거제
―윤기(胤棋,태봉공.泰奉公)―청주
⑪윤희(胤禧,영월공.寧越公)―⑫익(瀷,黙齊公)―⑬제창(悌昌,參判公)―⑭유(逾,愚拙堂)―김천
⑪윤신(胤申,고성공.高城公) ― ⑫흡(潝) ― ⑬이장(以樟) ― ⑭한걸(漢傑) ― ⑮성의(聖義) ―
⑯진택(震澤) ― ⑰하상(夏尙) ― ⑱근명(謹明) ― ⑲응규(應奎) ― ⑳진관(鎭觀) ―
㉑낙영(洛永) ― ㉒상린(相璘) ― ㉓병창(秉昌) ― ㉔봉암(奉岩) ― 강화(인천)
⑪윤지(胤祉,양구공.楊口公) ― ⑫연(淵) ― ⑬응상(應祥)―⑭경성(慶誠)―⑮준걸(俊傑)―거제
⑪윤기(胤棋,태봉공.泰奉公) ― ⑫엄(淹) ― ⑬이춘(以春)―⑭응길(應吉)―⑮대일(大逸)―청주
'뿌리와 예의범절 > 贊成公派(派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녕,남지 선영 참배(2024년) (0) | 2024.11.24 |
---|---|
창녕조씨 문장공파 갑진년 시제(時祭) (0) | 2024.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