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암(一枝庵)은 해남 대흥사의 암자로 초의선사가 39세 때(1824) 지어서
1866년(고종3)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40여년 간 이곳에서 살면서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하고 차(茶) 문화를 폈던 자리이다.
초의선사는 조선후기 대표적 선승가운데 한 사람이며, 조선시대 유일하게
그 칭호를 하사받은 대각등개보제자초의대종사(大覺登階普濟尊者艸衣大宗師)로
우리나라의 다성(茶聖)으로 추앙 받고 있다.
일지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와 우정을 나누고, 24때에는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 생활 중이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과 사제지간의 인연을 맺어
유학(儒學)을 배웠으며,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8~1893)을 제자로 맞아
시. 서. 화(詩.書.畵)를 가르쳐 남종화(南宗畵)의 대가가 되게 하였다.
선문사변만어(禪文四辯漫語)와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
초의선과(草衣禪課)를 저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