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탄서원(七灘書院)은 밀양 미촌리의 단장천이 내려다 보이는
칠탄산기슭에 있는 조선중기 서원으로, 임진왜란 때 밀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오한(聱漢) 손기양(孫起陽,1559~1617)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칠탄정(칠탄서원) 입구
찻길이 없는 칠탄정(칠탄서원)은 1km를 산길로 걸어서 가야한다

칠탄정 가는 숲길
칠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칠탄정 앞으로 흐르는 단장천에
일곱개의 작고 맑은 여울이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서원일듯

칠탄서원 서쪽입구 계곡

칠탄서원옆 폭포 ~ 지난밤의 폭우로 폭포가 생겨난듯

칠탄서원 서쪽방향 입구(동재 건물)

칠탄서원 강당인 읍청당(挹淸堂)
1725년(영조 1)에 그의 증손(曾孫)들이 건물을 다시지어
진암서당(眞巖書堂)으로 하였다가, 1844년(헌종 10)에는
청절사(淸節祠)를 지어 손기양의 위패를 봉안하고 칠탄서원이라 하였다.

칠탄서원 강당 마루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4년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정면 5칸의 팔작지붕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누각형식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강당 앞에는 칠탄정(七灘亭)이 있다.
강당 뒤에 3칸의 사우(祠宇)인 청절사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오한 손선생
칠탄서원 유허비와 비각이 있고, 동재 뒤에는 관리동인 주사(厨舍)가 있다.

읍청당(挹淸堂) 편액
읍청당 편액은 강당 전면에 걸려있으며,
강당건물은 3칸의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1칸씩의 방이 있다

강당 마루 동편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1983년)되어 있다.
서원 재산은 대지 400평, 논 1,200평, 임야 93정보 등이 있다.
매년 3월과 9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강당 마루 서편
손기양(孫起陽,1559~1617)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징(景徵),
호는 오한(聱漢), 송간(松磵)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충절과 학문적 업적으로 후세에 깊은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강당에서 서재 방향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 1588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592년 성현찰방(省峴察訪)이 되어, 임진왜란 시는
의병을 모아 역마(驛馬)를 적절히 배치하며 전쟁 수행에 만전을 기하였다.

강당에서 동재 방향
밀양부사 박진과 함께 작원, 대암 등지에서 왜군의 진로를 차단했으며,
곽재우, 승장 유정 등과는 팔공산, 화왕산성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웠다.
1600년 성균관 전적으로 중학교수(中學敎授)를 겸했고,
이듬해 경주제독이 되어 무너져 가는 옛 문물을 복구하는 데 힘썼다.

강당건물의 중방 등 우람한 목재
1602년 울주판관에 이어 이덕형(李德馨)의 천거로 영천군수가 되었고,
1610년 창원부사를 지냈으며, 1612년(광해군 4)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그 뒤 다시 사헌부와 사간원의 벼슬에 이어 상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여생을 후학양성과 학문에 전념하였다.

정구(鄭逑)선생과 도의(道義)의 계(契)로 깊은 관계를 맺었던
성리학자이며, 정경세(鄭經世), 조호익(曺好益), 이윤(李潤),
이전(李㙉), 이준(李埈) 등 영남 명유들과도 교유가 있었다.
만년에는 역학에 전심하였으며, 논어(論語)만 읽는 성벽이 있었다.

칠탄정(七灘亭)
칠탄정은 손기양선생이 지은 철조(鐵釣) 시 구절 중
칠리탄두일조간(七里灘頭一釣竿)에서 따와 지었다고 한다.

칠탄정(七灘亭) ~ 이 편액은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의 글씨다.
손기양은 훗날 사헌부 사간원 벼슬을 내렸지만 나아가질 않고
철조란 시를 지었는데, 즉 철조란 철관조어(鐵官釣魚)를 줄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기를 낚는다"는 말로 다시는 공직에 나아가지
않는다는 그의 강직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칠탄정 측면
철조(鐵釣) ~ 손기양(孫起陽,1559~1617)
칠리탄 어귀에서 한 낚싯대 드리우니
푸른 강물 맑고 얕아 부딪쳐 흩어지며 흐르는 물결 차기도 하구나
한나라 그 당시 양털 옷 걸치고 은둔한 엄자룡에게, 끝까지 인간세상의
간의(諫議) 벼슬 내리려고 했던 사실이 도리어 우습기만 하여라.

누각형의 동재 ~ 벽립재(壁立齋)
손기양 선생은 학자이자 충신, 자연 속에서 학문을 실천한
은자로서 조선 중기의 이상적인 선비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동경지(東京誌)에 실린 성묘중건상량문(聖廟重建上樑文)과
저서로는 배민록(排悶錄) 2권과 철조록(輟釣錄) 1권 등이 있다.

누각형의 서재 ~ 연징재(淵澄齋)


서재 누대 위

비에 젖은 누대와 황톳물의 단장천

서재 누대의 편액들 ~ 운강루(運江樓), 연징재(淵澄齋)와 시판

강당 뒤편의 오한 손선생(聱漢 孫先生) 칠탄서원 유허비각


오한 손선생(聱漢 孫先生) 칠탄서원(七灘書院) 유허비명

비각앞에서 보는 칠탄서원

칠탄서원 정문인 서재 아래의 외삼문

칠탄서원 정문 겸 서재

정문 앞의 은행나무

서편 고직사(관리동)로 통하는 협문

고직사(관리동)

관리동 앞에서 보는 칠탄서원

칠탄서원 서편에서 보는 칠탄정(좌)과 동재(우)

숲길에서 보는 단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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