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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한강 정구선생의 마산 관해정

by 안천 조각환 2025. 8. 7.

 

마산 관해정(觀海亭)은 이름 그대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무학산 기슭에 있는데, 한강 정구(寒岡 鄭逑,1543~1620)선생위해

제자 문재(文哉) 장익규(張益奎,1595∼1634)가 처음 지은 정자이다.

 

마산 관해정(觀海亭)

 

한강 정구 선생은 1586년(선조 19) 함안군수로 재직할 때,

인근 선비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창원에도 제자들이 있어 자주

드나들면서 틈나는대로 산책을 나와 제자들과 경관을 즐기기도 했다.

 

관해정 정문(관해음사,館海吟社)

 

1587년 제자들이 초당을 지어 선생의 강학장소로 삼고자 하였으며,

한강 정구선생도 "관해정기(觀海亭記)에서 1587년(선조 20,정해) 가을에

비로소 이 땅을 얻었는데,  그곳이 조식의 산해정과 같이 "산과 바다의 정취를

겸하고 있어 즐겼고 그윽하고 곧은 예법에 합당하여 은근히 연모하였다.

 또한 최고운(崔孤雲)의 옛 행적이 절친하여 더욱 아꼈다." 라고 하였다.

 

관해정 옆문(관리동 출입문)

 

한강 정구선생은 어느날 우연히 벗들과 제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술이 반이나 된 뒤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어 여러 군자에게 보인다.

 

나는야 바닷가에 정자 하나 지으련다 / 아욕위정근매만(我欲爲亭近梅灣)

이 좌중에 그 누가 채서산이 되려는가. /  좌중수작채서산(座中誰作蔡西山)

치자, 유자, 매화, 대 일찌감치 심어 두고, / 치귤매균수조식(梔橘梅筠須早植)

여섯 해를 비바람에 시달리지 않게 하소. / 막교풍우륙년간(莫敎風雨六年間)

 

마산 관해정(觀海亭)

 

이후 임진왜란을 격으면서 16~17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1604년(계묘)이 되었을 때 우방(于房) 장익규(張益奎)가 주도하고

함주(咸州, 지금의 함안)의 선비들과 더불어 초가집을 몇 칸 엮었으며, 

당호를 취백당(聚白堂)이라 하였는데, 이는 한강 선생이 직접 지은 것이다.

 

관해정(觀海亭,중앙)과 취백당(聚白堂, 오른쪽 방문 위) 편액

 

이때 한강 정구선생은 성주 고향에 머물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도

건강이 좋지않아 가지 못하다가, 3년 후인 1607년 배를 타고 함안

도흥나루까지 왔다가, 여러곳을 둘러보고 도흥촌(함안 부촌리)에서

낙동강의 뱃놀이를 즐긴 후, 안동부사 부임이 임박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육로여행을 할 형편이 아니라 창원부 관해정까지는 오지 못하고 말았다.

 

관해정 마루 왼편

 

이때 도흥촌 뱃놀이 즉 “낙강선유(洛江船遊)” 모임에는

망우당 곽재우, 함안군수 박충후, 여헌 장현광, 의병장 신초, 조방,

성경침, 박진영, 조식과 조임도 부자 등 함안(14명), 영산(10명), 창녕,

성주 등지에서 정구의 문인 등 35명의 인사들이 참여 성회를 이루었다.

 

관해정 마루 오른편

 

관해정은 10년 후 초당이 허물어지자, 장익규와 창원의 선비들,

그리고 창원부사 오봉 신지재(梧峰 申之悌,1562~1624)가 협력하여

 1617년 3월 기와집으로 중수하였으며, 그 뒤 1885년(고종 23)에 중수,

1886년(고종 24) 중건하였고, 2004년 대 보수와 정비를 하였다.

 

대들보 상량문은 2004년 4월 11일이다.

 

한강 정구(寒岡 鄭逑,1543~1620)선생은 성주 사람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퇴계 이황(李滉), 남명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영남 사류의 거목이다.

 

관해정,취백당 편액과 중수기, 시판, 넘어져 있는 석비 등

 

창녕현감, 함안군수를 지내며 지방 역사를 정리한 창산지와 함주지를

편찬, 그곳의 풍속과 자연을 수집 조사 편찬하여 향토 사료로 전했으며

강원도관찰사, 형조, 공조 참판, 우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625년 문목(文穆)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성주 회연서원, 천곡서원, 칠곡의 사양서원, 창녕의 관산서원, 충주 운곡서원,

현풍의 도동서원 등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 한강집(寒岡集) 등이 있다. 

 

 

한강 정구는 심학(心學), 예학(禮學)에 정통하였으며 문학, 의학, 서예,

풍수지리, 점술, 지지(地誌) 등 다방면에 걸쳐 박학다식한데다 매우 실용적이었다.

주자에 정통하면서도 주자학만을 강요하지는 않는 독특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관해정은 대지 140평, 건평 26평으로, 앞면 4칸과 옆면 2칸이다.

여덟 팔(八)자 팔작지붕이며, 인근 사림에서 해마다 3월과 9월에

한강 정구와 그의 제자 미수 허목(許穆)의 향사를 지낸다.

 

수령 500여년에 가까운 은행나무로 나무둘레 4.5m의 보호수

 

창원부사를 지낸  오봉 신지재(梧峰 申之悌,1562~1624)의 관해정 시

 

해정에서 한자진, 장문재와 함께 유람하고 광문의 시에 차운하다

(海亭 同 韓子眞 張文哉 遊 次廣文韻)

 

인간 세상에서 이곳이 신선의 땅이니 / 인간시처유선구(人間是處有仙區)

천상에 열두 루 있다는 것은 헛소문이네 / 천상허문십이루(天上虛聞十二樓)

바람은 물소리와 섞여 휙휙 불고 / 풍잡수성래삽삽(風雜水聲來颯颯)

안개는 푸른 산과 얽혀 둥둥 뜨네  / 무화산취락부부(霧和山翠落浮浮)

 

한가한 틈에 반나절이나 속된 생각 끊고 / 투한반일휴진상(偸閒半日休塵想) 

교분 맺은 현인들과 멋진 유람을 즐기네 / 탁계군현접승유(託契群賢接勝遊)

그 속에 기이한 절경 더욱이 있으니 / 경유개중기절처(更有箇中奇絶處)

돌 웅덩이 차가운 물 달 밝은 가을 / 석홍한수월명추(石泓寒水月明秋)  

 

관해정과 보호수 은행나무

개울상류와 무학산

 

개울하류와 마산시내(아파트로 인해 바다는 가려졌다)

 

신라 고운 최치원의 월영대(月影臺) 

 

이곳은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해인사로 들어가기 전에 말년을

보내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마산시 해운동 바다주변에 있다.

 

월영대 전경

 

옛날에는 모래사장이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한강 정구선생이 즐겨

찾았으며, 관해정과도 가까운 곳이었는데, 현재는 바닷가를 매립하여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그 정취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월영대 건물

 

월영대 비각 편액

 

담너머로 본 월영대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