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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충의공 정문부의 진주 가호서원과 충의사

by 안천 조각환 2025. 8. 23.

임진왜란 때의 명장 농포 정문부(1565~1624)장군을 모시기

위해 세운 가호서원과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의사를 찾는다.

농포 정문부(鄭文孚,1565~1624)는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북관대첩을 주도한 의병장이자 비운의 영웅이다.

 

진주 이반성면 가호서원과 충의사 전경

  

정문부(鄭文孚,1565~1624)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허(子虛), 호는 농포(農圃),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이다.

1585년(선조 18) 생원이 되고, 1588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한성부참군이 되었으며, 1590년 사헌부 지평으로 지제교를 겸했다.

 

진주 충의사 정문 입구

 

함경북도 병마평사가 되어 북변의 여러 진을 순찰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조직하여, 장덕산 전투, 쌍포 전투,

백탑교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러 관북 지방을 완전히 수복하였다.

 

가호서원 강당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죽임을 당했으나, 후에 복권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함경북도에 있는 네 개의 사우에 향사되었다.

1970년에 진주 향교 유림들의 공의와 후손들의 협찬에 의해 현 위치에

가호서원(佳湖書院)과 후에 충의사(忠毅祠)를 건립하였다.

 

가호서원(佳湖書院) 편액

 

이곳에는 가호서원과 충의사, 유물전시관, 보조묘, 장판각,

북관대첩비, 농포 정문부사적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농포집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명장인 정문부가 이끌었던 북관대첩이

지금까지 사극이나 미디어로 등장한 적이 없는 이유는

북한지역에서 있었던 전투여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영향이 있다.

 

가호서원 사당

 

사잇문으로 나와 충의사에서 보는 가호서원

 

충의사 정문인 경의문(景義門) ~ 출입은 가호서원 옆문으로

 

가호서원과 충의사간의 사잇문

 

충의사 입구의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북평사직을 맡고 있던

정문부장군이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왜군을 크게 격퇴하였으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전승 기념비이다. 

 

충의사 입구에 있는 북관대첩비(복제, 앞.뒤)

 

이 비는 후에 함경북도 북평사인 최창대(崔昌大,1669~1720)가

1708년 정문부의 공적을 기리고자 대첩비를 함경남도 성진시에 세웠다.

그 후 러일전쟁(1904~1905) 때 일본군 이케다 마다스케 소장이

일본의 패전 기록임을 알고 비석을 뽑아 일본으로 보냈으며, 비석은

일본 왕실에서 보관하다 다시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 보관하였다.

 

북관대첩비 국어 번역문(석비)

 

북관대첩비 번역문

 

북관대첩비 유명조선국 함경도 임진의병 대첩비

옛날 임진란에 힘써싸워 적을 깨뜨려 일세를 크게 울린이로 해전에서는

이충무의 한산대첩이 있고 육전에서는 권원수의 행주대첩이 있으며 

이월천의 연안대첩이 있어 역사가 그것을 기록하였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칭송하여 마지 않았다. ~ 중략 ~

 

남쪽에서 도적이 와 명나라를 치려드니 우리는 이웃이 되어

온 나라가 화 입었네. 높고 놉다 북방이여 오랑캐 소굴되니 ~중략~

선비 기풍 열렬하니 백성들도 용감하고 임명 바닷가에

우뚝한 돌이 있어 찬송을 거기 새겨 영원토록 보이노라.

숭정 갑신 뒤 65년 십월 일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 삼가 지음, 이봉화(李奉化) 명필(明弼) 씀

 

* 숭정 갑신 뒤 65년은 서기 1704년 이므로, 비문은 1704년에 지어

그 뒤 비문을 돌에 새기는 등 비를 완성하여 1708년에 세운것으로 보인다.

최창대(崔昌大)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곤륜(昆侖),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증손으로,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아들이다.

 

 

충의사 전경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으로 인하여 반환요구할 시기를

놓쳤으나, 1978년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대첩비를 발견하고 박정희 정부는 이에 반환 작업을 시작하여

일본정부에 공식적인 반환 요청을 하였으나 거절되었다.

 

농포 정문부선생 사적비

 

그 뒤 한일 불교복지협의회가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과 합심 노력하여

2005년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왔으며, 2006년 원래 자리인 북한

김책시 임명리로 돌아갔으며, 북한에서는 국보 제193호로 지정하였다.

북관대첩비의 복제비는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독립기념관,

의정부시 용현동 정문부장군 묘역, 진주 충의사 등에 세워져 있다.

 

장판각 ~ 정문부 농포집 목판 보관

 

이 목판은 정문부의 문집인 "농포집"을 인쇄하기 위하여  만든 목판이다.

1708년(숙종 34)에 증손인 정구선생이 처음 목판본을 간행한 후

1785년(정조 9)과 1890년, 1897년, 1910년 총 4회에 걸쳐 결실, 훼손,

증보 등의 사유로 추가로 만들었으며, 현재 191장 372면이 남아있다.

 

충의사 정문인 탱천문(撐天門)

 

충의사 ~ 정문부 장군 위패 봉안

 

충의사 전경

 

유물전시관

 

가호서원 충의사 묘정비(佳湖書院 忠義祠 廟庭碑)

 

곱게핀 무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