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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

창녕조씨 영천문중 유물기획전

by 안천 조각환 2025. 11. 30.

창녕조씨 영천문중 유물 특별기획전은 영천역사박물관에서 

2025년 11월 29일 개막식 후 2026년 2월 28일까지 3개월간 열린다.

창녕조씨 영천문중은 시조 조계룡의 26세손이며, 갱기 1세인

송무(松茂) 6세손인 희천공(熙川公) 조신충(曺信忠)을 입향조로 한다.

 

창녕조씨 영천문중 유물 특별전시 안내서

 

창녕조씨 영천문중 유물기획전 개막장면(2025.11.29.14:00)

 

영천 역사박물관

 

역사박물관앞 개막식장

 

영천 역사박물관 유물기획전 안내

 

전시에 들어가며

 

전략 ... 수없이 오랜시간과 계절들을 거치며 수백 년간 쌓인

조상의 숨결을 고이 간직해 온 우리지역의 한 문중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전을 마련하였습니다. ... 후략

 

창녕조씨 희천공파(熙川公派) 세계도

 

세계도 상세

 

전시장 내부

 

전시장의 창주서원 편액

 

영천 금호읍에 있는 창주서원은 1727년(영조 3) 창수사를 창건하고

조상치(曺尙治)의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1741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763년 조한보, 조한영(曺漢英), 조선장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34년에 복원되었다.

 

유물기획전 안내서 ~ 창주서당 편액과 충정공 정재 조선생신도비,정재실기

 

조상치(曺尙治)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景).

호는 정재(靜齋), 단고(丹皐), 태사(太師) 조계룡(曺繼龍)의 후손이며,

조부는 좌정승 조익청(曺益淸), 아버지는 강계병마사 조신충(曺信忠)이다.

길재(吉再)의 문인으로,.1455년(단종 3) 집현전부제학을 역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예조참판에 임명하였으나 사직하고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791년(정조 15) 단종의 장릉(莊陵)에 배향되고,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조희익(曺希益)의 공신교첩(功臣敎牒)

 

조희익(曺希益,1542~1593)은 조윤신의 다섯 아들 중 셋째로

위로 계익, 광익 두 형이, 아래로는 지산 조호익과 겸익 두 동생이 있다.

 

전시자료

 

어사 청백리 조치우(曺致虞) 옥비(玉碑) 1531년(중종 26년) 하사와

숙인 창원박씨지묘 옥비 1531년(중종 26년), 두좌를 왕으로 부터 하사 (탁본)

 

어사 청백리 조치우(曺致虞) 청옥비(靑玉碑) ~ 영천 대창 대재리

숙인 창원박씨지묘 백옥비(白玉碑) ~ 창원 북면 지개동 모선재

 

관서부자(關西夫子)

 

이글은 지산 조호익 선생이 평안도 강동땅에 유배되어 있을 때인

1589년(선조 22년)에 그 지역의 관서 유생 황경화(黃慶華) 등이

억울함을 상소하였으나 선조임금이 윤허하지 않고 오히려

관서부자(關西夫子) 네 글자를 크게 써서 하사하고 장려하였다.

 

유적지 묘소 등 사진

 

창녕조씨 족보 25권 12책

 

문집, 일기 등

 

문충공 영의정 이항복(李恒福) 초상화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조선 중기의 문관, 학자이며

이덕형과 함께  오성과 한음으로 더 잘 알려진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이다.

 

사명당 유정 진영(眞影, 조선 후기)

 

사명당 유정(四溟堂 惟政, 1544~1610)은 조선중기의 승려로

13세에 김천 직지사에서 출가하여 묘향산에서 청허 휴정의 법을 이었다.

임진왜란의 승병으로 공을 세웠으며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김육(金堉, 조호익의 문인) 초상, 귀애정 약안(조극승,조규승)

조학신(曺學臣)의 춘장대와 어전친막 제명첩(御前親幕 題名帖)

 

삼존재(三尊齋)와 효사문(孝思門) 현판 등

 

전시장 관람모습(1)

 

전시장 관람모습(2)

 

영천 역사박물관앞 조양공원의 조양각(朝陽閣)

 

영천시 금호강변에 있는 조양각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고려말 충신이던 포은 정몽주선생이 당시 부사이던 이용(李容)과 함께

 향내 유림들이 합심하여 지은 건물로 명원루(明遠樓)라 하였고,

영남루,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의 하나였다

 

금호강변 조양각

 

1484년 4월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선생은  

조정의 치전관(致奠官)자격으로 양동마을의 양민공 손소(孫昭)의

빈소를 찾아 조문가는길에 영천 조양각에 들러 한 수의 시를 남긴다.

 

제영천청량당(題永川淸凉堂) / 영천 청량당에서 짓다

 

신구화당압수미(新構華堂壓水湄) / 새로 엮은 화당이 물가에 우뚝 솟아있어

아래등조입다시(我來登眺立多時) / 올라가서 오랜 시간을 조망하였네.

훈풍방초청천원(薰風芳草晴川遠) / 훈풍에 풀들은 피어나고 맑은 시내는 아득히 흐르고

낙일고운독조지(落日孤雲獨鳥遲) / 석양의 구름 속으로 한 마리 새가 뒤 늦게 돌아온다.

 

남기공몽염외적(嵐氣空濛簾外滴) /  파란 안개가 피어올라 주렴 밖에 맺히고

양화요란모변취(楊花撓亂帽邊吹) / 버들가지는 어지럽게 모자 곁으로 날아온다.

야심월상란간곡(夜深月上瀾干曲) / 밤이 깊어 난간 모퉁이로 달 떠 오르니

일미청량독자지(一味淸凉獨自知) / 이곳의 청량한 맛은 나 혼자만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