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전씨(全氏)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한시대 부터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온전 전(全)자의 전씨(全氏)는 모두
전섭(全聶)을 도시조(都始祖)로 하고 있으며 본관은 78본(本)이다.

옥천전씨 옥천 목담영당
전섭(全聶)은 기원전 18년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인
온조(溫祚)가 백제를 건국할 때 마려(馬藜), 오간(烏干), 을음(乙音),
해루(解婁),흘우(紇于),한세기(韓世奇),곽충(郭忠),범창(笵昌),조성(趙成) 등
9인과 함께 백제 개국의 공을 세우고, 백제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는데 이를 한반도 전씨(全氏) 역사의 시초로 본다.

목담영당(목담서원) 통의문(通義門)
이후 후손들은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본관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16개의 분관이 생겨났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많은 분파가 형성되어 현재는 총 78본관으로 분관 되었으며,
정선전씨, 전주(완산)전씨, 천안전씨, 옥천전씨, 경산전씨 등이 있다.

옥천 목담영당 ~ 옥천전씨 판서공파
옥천 전씨(沃川全氏)는 전섭을 도시조로, 전학준을 시조로 하며,
전유(全侑)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는데, 전유는 도시조 전섭(全聶)의
27세손으로 고려 충숙왕 때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부사(密直府使),
판도판서(版圖判書), 상호군(上護軍) 등을 지냈고, 관성군(管城君)에
봉해졌는데, 이를 계기로 관성(管城, 옥천의 옛 이름)을 본관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옥천 전씨(沃川 全氏), 또는 관산(管山) 전씨라고도 부른다.

목담영당 측면
옥천전씨(沃川全氏)는 관성군(管城君) 전유(全侑)의 아들
삼형제의 관직을 따라 전광운(全光韻)의 전서공파(典書公派),
전인숙(全仁淑)의 봉상대부공파(奉常大夫公派), 전숙(全淑)의
판서공파(判書公派) 등 크게 3개파로 분파되어 있다.
오늘은 판서공파와 전서공파를 중심으로 유적지를 찾아본다.

목담영당 전경
옥천 목담서원(鶩潭書院)은 1765년(영조 41) 조선 중기의 문신
송정(松亭) 전팽령(全彭齡,1480~1560)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세워졌다가 서원철폐령으르 훼철되었으며, 1936년 복원하여 전팽령,
전식, 전유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전식선생의 영정을 보관하였는데
현재 원본은 충주박물관에 위탁보관하고 모사본을 보관하고 있다.

옥천 양신정(沃川 養神亭)
양신정(養神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전팽령(全彭齡)이
1545년(인종 1) 밀양부사(密陽府使)로 있을 때 지은 정자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20년(광해군 12) 중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828년(순조 28)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서쪽 한칸은 온돌로 되어 있고, 주위에는 흙돌담이 둘러쳐져 있다.
정자 서편 낮은 곳에 늪이 있는데 전에 따오기가 살았다고 해서
목담(鶩潭)이라 하며, 남쪽에는 목담영당(鶩潭影堂)이 있다.

양신정 측면
양신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형태의 건물이다.
일명 전송정(全松亭)이라고도 하며, 옥천군 동이면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1978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양신정 옆면

목담영당옆에 새로지은 현대식 건물의 목담영당

상주 사서 전식 신도비(尙州 沙西 全湜 神道碑)각 ~ 판서공파
상주 외답리에 있는 전식(全湜,1563~1642)선생의 신도비는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1700년에 그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이다.
전식은 상주지역에서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과 더불어
류성룡의 대표적인 문인이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기도 했다.

전식(全湜)선생 신도비 ~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전식의 신도비는 비신(碑身), 이수(螭首), 귀부(龜趺)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수는 운룡문(雲龍紋)의 새김이 뚜렷하고 귀부도
귀갑문(龜甲紋)을 포함한 전신의 새김이 섬세하게 조식(彫飾)되어있다.
비신 전면과 후면의 하단 일부가 손상되어 떨어져 나갔다. 신도비의
전체 높이는 333㎝, 비신은 178㎝, 정면 폭은 80㎝, 두께는 16㎝이다.

신도비 거북 받침대인 귀부(龜趺)
비신의 전면 상단에 “증 좌의정 행지중추 충간공 사서 전선생 신도비명
(贈左議政 行知中樞 忠簡公 沙西 全先生 神道碑銘)”이라고 쓴 전액(篆額)이
새겨져있으며, 비신은 전, 후면에 걸쳐 작은 글씨의 해서(楷書)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1659년(효종 10)에 조경(趙絅)이 지었고, 1700년(숙종 26)에
신도비를 건립하면서 이봉징(李鳳徵)이 지은 비문 음기(陰記) 7줄을
후면에 추가로 새겨 넣었다. 글씨와 전액(篆額)은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신도비각 뒤에서
신도비의 내용은 광해군 즉위년(1608)에 대북(大北)의 영수였던
정인홍(鄭仁弘)에 대한 논박, 1625년(인조 3) 후금(後金)이 요동을
함락하고 있을 당시 해로(海路)를 통해 연행(燕行)한 일화를 포함하여
가계, 관력, 임란시의 의병 활동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전식(全湜)선생의 묘역
전식(全湜,1563~1642)선생의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정원(淨遠),
호는 사서(沙西)이며,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광해군 실정시
벼슬을 단념하고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과 산수를 유람해
세칭 상사삼로(商社三老) 또는 상산삼로(商山三老)라 일컬어졌다.

전식선생 묘소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적을 토벌해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김응남(金應南)의 추천으로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이 되었다.
1603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1607년 전적, 예조좌랑과
정랑을 거쳐, 1611년 울산판관이 되어 고을 백성들의 교화에 힘썼다.

묘소와 묘비
다음해 전라도도사가 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등과 산수를 유람해 세칭 상사(商社)의
삼로(三老)라 일컬어졌으며,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새 왕이
등위하자 예조정랑에 이어 수찬, 교리가 되어 경연(經筵)에 참석하였다.

묘비 ~ 앞뒤 좌우 사면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행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시(諡) 충간, 호(號) 사서 옥천전공지묘
배 정경부인 남양홍씨 합폄(合窆)

묘소 뒷편에서 ~ 멀리 상주 함창들녘이 보인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태복시정(太僕寺正)이
되어 왕을 호종(扈從), 천안에 이르러 집의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을 방어하였고,
왕이 도성으로 돌아오자 부제학에 임명되었다.

그 뒤 예조참의와 예조참판에 임명되고 1638년 대사간, 대사헌을
거쳐 예조참판, 대사성이 되었다. 1642년 자헌대부(資憲大夫)의
품계에 오르고 지중추부사 겸 동지경연춘추관사(知中樞府事兼
同知經筵春秋館事)에 임명되었다.그 뒤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상주 백옥동서원(白玉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장명둥(중앙)과 좌우 문인석

영주 용상마을 안내도 ~ 옥천전씨 전서공파 방산서원과 방산종택

방산서원과 방산종택 입구의 안내도
옥천전씨 휴계공 망동파 종중 가계도, 불천위 설월당(휘 익희)의
칠성루 창건, 상장군 휴계공(휘 희철) 내력, 망동파 종가 족보도가 있다

방산서원 정문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에 있는 방산서원은 1633년(인조 11)
옥천전씨 가문의 현조인 전희철(1425~1521), 전익희(1598~1659),
전명룡(1606~166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방산서원 정문과 경절사
방산서원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8년에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경절사(景節祠)가 있다

경절사(景節祠)
경절사에는 휴계 전희철을 주벽으로 좌우에
설월당 전익희와 영서 전명룡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칠성루와 휴계재사
서원 아래에 있는 칠성루(七星樓)와 휴계재사(休溪齋舍)는
조선 전기 무신 전희철(全希哲,1425~1521)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누각과 재사로, 칠성루는 1631년(인조 9),
휴계재사는 1696~1697년경에 각각 건립되었다.

칠성루 등
칠성루는 1631년 전희철의 5대손 전익희(全益禧,1598~1659)가,
휴계재사는 전희철의 3대손인 전개(全漑)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1696~1697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이 퇴락해지자 1971년 칠성루와 휴계재사를 중수하였다.

방산서원과 방산종택 등 전경
칠성루와 휴계재사는 연접해 있는데 칠성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마루를 두고 오른쪽과 왼쪽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휴계재사는 정면 5카느 측면 5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휴계 전희철선생을 비롯한 옥천전씨 전서공파 선대묘역
전희철(全希哲,1425~1521)의 본관은 옥천, 자는 원명(原名),
호는 휴계(休溪)이며, 1425년 옥천 시랑리에서 태어났다.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세종 20년에 무과에 급제한 그는
사포서별제와 어모사직을 지냈으며, 문종 때는 상장군에 이르렀다,

설월당 전익희(전희철의 3세손, 불천위) 선생신도비
문종이 왕위에 오른지 2년 만에 승하하고, 단종이 열두 살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3년만에 수양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바분강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옥천으로 낙향한 그의 나이는 30세 때였다.

불천위(설월당 전익희) 제단
그 후 조정에서 여러번 불렀으나 병을 칭탁하여 끝내 나아가지
않았으며, 1457년(세조 3) 가솔을 거느리고 영주로 옮겨와서
휴천(休川)에 자리잡아 자취를 숨기고 은거하였다.
영주로 옮긴데는 단종이 귀양된 영월과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휴계 전희철(全希哲)은 맏아들 전호(全琥)를 본향인 옥천으로 보내
선영을 받들게 하고, 둘째 아들 전박(全珀)은 이곳 영천(榮川,
영주 옛 지명)에 정착하게 하였으며, 자손들에게 화가 미칠것을
염려하여 그가 지은 시문을 임종에 앞서 모두 불살라 버렸다.

휴계 전희철(영주 입향조)의 묘소
임종 때에는 아들에게 1년에 한번씩 영월에 찾아가 단종능에
참배하도록 당부했으며, 사후 영주 방산서원(方山書院)과
공주 동학사 숙모전(肅募殿)에 제향되었다.

방산서원 주변에는 영주 입향조 휴계 전희철을 비롯해
옥천전씨 선조들의 묘소 및 가문과 관련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휴계 전희철 부부 묘비
통정대부 옥천전공 희철지묘(通政大夫 沃川全公 希哲 之墓)
숙부인 감천문씨(淑夫人 甘泉文氏)

휴계 전희철의 묘소
옥천전씨의 전서공파(典書公派)와 판서공파(判書公派)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았는데, 전인숙이 봉상대부(奉常大夫)벼슬에 오른
봉상대부공파는 전인숙의 손자 전동(全棟)이 본래 진사였으나
조선 국초에 회유에 굴하지 않아 옥천의 호장(戶長)으로 강등되고
노비는 관노비로 삼았으며, 자손들은 관향인 옥천에 주로 분포한다.

묘소 뒷편에서
참고로 전씨(全氏) 중 인구가 많은 몇 본관을 살펴보면
정선 전씨(旌善全氏)는 전씨의 대종으로, 전섭의 후손인 전선(全渲)이
신라 때 정선군(旌善君)으로 봉해진 것을 계기로 정선을 관향을 삼았다
전선의 후예인 전이갑(全以甲) 왕건를 도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전해진다.

방산서원 주변 묘역
완산전씨(完山 全氏) 또는 전주 전씨(全州 全氏)는 전섭(全聶)의
28대손인 전집(全潗)으로 고려 공민왕 때 중랑장으로서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난공신(推忠靖扈亂聖功臣)이 되어 완산백에
봉해지고 삼중대광 첨의 문하시중 평장사에 추증되어 완산을
본관으로 삼았으며, 대한민국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배출하였다.

설월당 전익희 신도비와 불천위 제단
천안 전씨(天安全氏)는 전섭(全聶)의 29세손인 전락(全樂)이고려
개국공신으로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대구 공산전투에서 싸울 때
신숭겸과 함께 순절하였는데, 그 후 삼사(三司) 좌복야(左僕射)에
추증되어 천안(天安)부원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천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산위에서 보는 방산서원과 종택
용궁전씨(龍宮全氏)는 전섭(全聶)의 28세손인
전방숙(全邦淑)을 시조로 삼고 있으며, 그는 고려 충렬왕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문하시중 평장사에 오르고,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해져 용궁을 본관으로 삼았다

방산서원앞 풍경
경산전씨(慶山全氏) 또는 옥산전씨는 전섭(全聶)의 27세손으로
고려 신종조(高麗神宗祖)에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으로
공(功)을 세워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전영령(全永齡)을
시조로하고 옥산(현 경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방산서원 앞 소나무
우리나라 전씨(全氏)는 약 44만여명으로 정선전씨가 14만 2천여명,
천안전씨가 13만 3천여명, 옥천전씨는 4만 4천여명, 경산전씨는
3만여명, 용궁전씨는 2만 8천여명, 완산전씨가 2만 6천여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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