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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광주.전라권

양녕대군 증손 이서의 담양 몽한각

by 안천 조각환 2026. 4. 16.

담양 몽한각(夢漢閣)은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李緖)가

1507년(중종 2) 이과(李顆)의 옥사에 연루되어 담양 창평에

유배되었다가 1520년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귀경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던 곳이다.

 

담양 몽한각 전경

 

1803년(순조 3) 그의 후손인 담양부사 이동야(李東野), 창평현령

이훈휘(李薰徽) 등이 이 지방에서 관직을 지내면서 이서를 추모하고자

건립하였으며, "몽한각"이라는 이름은 이서(李緖)가 유배 시절 지은

시 구절 “두현운산장 한창세월다 분명금야몽 비도한강파"에서

"몽(夢)"자와 "한(漢)"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몽한각

 

몽한각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건물이며.

중앙에는 3칸통의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1칸통의 방을 두어

정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몽한각(夢漢閣) 편액

 

경내에는 이훈휘의 몽한각 상량문과

기우만(奇宇萬)의 글이 있는 신도비가 있으며,

이서의 유서(遺書)가 윤용구(尹用求)의 친필로 조각되어 있다.

 

몽한각 측면

 

 

대문채 앞

 

대문채 안쪽

 

몽한각과 정원

 

 

담장 안팍의 풍경과 소나무

 

이서(李緖,1484~?)는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증손자로,

  1484년에 태어나 15세에 추성수(秋城守)로 봉작되었으며,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해 진도군수, 장단부사를 역임하고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호조판서에 승진하였으며

정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완풍군에 봉해졌다.

 

추성수 이서(李緖)가 남긴 낙지가(樂志歌) 가사비

 

낙지가는 14년 동안이나 담양 창평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지은 유배가사로 "뜻을 즐기는 노래"란 제목인데, 귀양살이를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서 기쁨을 찾으려 했다.

 

낙지가 시비 4면

 

낙지가는 전체 152구, 4·4조로 되어 있으며, 곤륜산 일지맥에서

시작하여 팔도를 돌아 자신이 살고 있는 담양의 초가삼간까지 그렸다.

즉 담양(潭陽) 순후(淳厚) 미풍양속과 빼어난 경치를 ,

 후배를 양성하면서 유유히 세월을 보내겠다는 결의를 노래하였다.

 

신도비

 

몽한각 둘레 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