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청도 자계서원

by 안천 조각환 2019. 11. 7.

-자계서원(紫溪書院)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1518년(중종13)에 조선 초 문신이며 학자인 김일손(金馹孫)을 배향하기 위해

자계사(紫溪祠)를 창건하고 1576년(선조 9)에는 운계서원(雲溪書院)이라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15년(광해군 7)에 중건하고

김극일(金克一)과 김대유(金大有)를 추배하였다.

1661년(현종2) 자계서원으로 사액(賜額)되었으며,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동.서재만 남아 있다가

1924년 탁영선생 14세손 참봉 김용희(金容禧)가 중건하였다


자계서원 강당인 보인당


서원정문인 유직문(惟直門)


영귀루(詠㱕樓)


서원강당과 동재(왼쪽).서재(오른쪽)

-1871년 서원철페령에 따라 훼철될 당시 좌우의 동.서재만 남았었다-


강당에서 본 영귀루와 동.서재


강학당인 보인당(輔仁堂)


원목을 그대로 사용한 보인당의 중방



서재


동재



운계정사(雲溪精舍)

-동재건물이기도한 운계정사는 탁영 김일손선생이  25세때인

1488년 출생지인 이곳에 운계정사를 건립하여 강학하던 곳으로,

앞뜰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를 손수 심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무성하다,

이 건물은 1924년 중수를 하였다


사당 출입문인 유현문(幽賢門)


존덕사(尊德祠)

-존덕사에는 절효 김극일(祖父), 탁영 김일손, 삼족당 김대유(長姪)선생등 세분을 배향하고 있다-

김일손(1464~1498)은 본관이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17세까지는 할아버지 극일(克一)에게서 소학, 통감강목,·사서(四書) 등을 배웠으며,

뒤에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갔다.

 1486년(성종 17) 진사가 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합격하여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에 올랐다.

1491년 사가독서를 하고 주서(注書)·부수찬·장령·정언·이조좌랑·헌납·이조정랑 등을 두루 지냈다.

그는 주로 언관(言官)으로 있으면서 유자광(柳子光)·이극돈(李克墩) 등

훈구파(勳舊派) 학자들의 부패와 비행을 앞장서서 비판했고,

춘추관 기사관으로 있을때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으며,

이 일로 1498년(연산군 4)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무오사화 때 

권오복 ·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 등 사림파 여러 인물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중종반정 후에 신원되어 중종 때 홍문관직제학, 현종 때 도승지, 순조 때 이조판서가 추증되었으며,

목천 도동서원, 청도 자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탁영집과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유록(續頭流錄) 등 26편이

 수록된 속동문선(續東文選)이 있으며. 시호는 문민이다

 

영귀루에 올라 보는 청도(화양)남산


절효선생 정려비각


정려비

-절효선생은 김일손의 조부로 모암 김극일(慕庵 金克一, 1382~1456)의 시호이다

자는 용협, 호는 모암이며, 시호가 절효이다-


530여년된 은행나무(2019.10.30)


-2019.11.10-


은행잎과 열매가 수북이 쌓여있다


김일손선생 문학비와 보호수 표석


김일손선생 문학비

창파만경로성유(滄波萬頃櫓聲柔)   푸른 물결 넘실넘실 노 젓는 소리 부드러운데
만수청풍각사추(滿袖淸風却似秋)   소매에 찬 맑은 바람 가을인양 서늘하다
회수경간진면호(回首更看眞面好)  머리 돌려 다시 보니 참으로 아름다워
한운무적과두류(閒雲無跡過頭流)  흰 구르 자취 없이 두류산을 넘어가네


탁영선생 순절500주년 추모비


 김일손선생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