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각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후기의 건물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이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의 문신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1494~1558)선생이
사헌부 집의(執義)로 있으면서
명종의 외삼촌인 영의정 윤원형(尹元衡)과 이기(李芑)를 탄핵하다가
전라도 고산으로 귀양을 가서 5년만에 돌아와 1561년(명종 16년)에 지은 제택(第宅)이다.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얽었으며,
대패질을 하지 않고 짜귀만으로 깎아 다듬어 만든 건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목조 건물 중 성주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1919년 3ㆍ1운동 당시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을 위시한 그 문인들이
성주읍 장날에 배포한 독립청원장서 3,000장을 복사했다고 전하며,
또한 경북 유림단 파리장서 사건의 모의 장소로 사용되어
3ㆍ1독립운동과도 관련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백세각
가옥 전체가 ㅁ자 형태인데 정면에 보이는 이 건물은 사랑채로,
왼쪽이 백세각(사랑)이고 오른쪽은 출입문과 문간채에 속한다
오른쪽이 대문이고 마당 왼쪽이 본체이다
오른쪽 편액이 백세각(百世閣), 왼쪽은 야계고택(倻溪古宅)이다.
백세각이라는 당호는 봉암산 아래 종기(宗其)를 정한 송희규 선생이
앞으로 자손들이 무궁토록 번성하도록 지었다.한다.
.백세각을 사용할 당시 수탉이 들어가면 울지못하고,
독수리가 날으다가 집위로 지나면 떨어져 날지 못하므로
근년까지도 독수리 날개가 집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또한 비가 오는날 자정이 되면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이집은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안채
완전 ㅁ자형태 구조이다
안채 대청
앞에 보이는 다락방에서
봉강서원의 감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빼서 태극기 인쇄판을 만들었고 ,
그것으로 1919년 3월 29일 성주시장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위해 태극기를 인쇄하였다.
다락방 오르는 계단
출입문이 있는 사랑채(오른쪽)이면서 문간채(왼쪽)
문간채
사당 건물
사당출입문 앞에서 보는 백세각과 대문(오른쪽)
대문
정려각(旌閭閣)
백세각 인근에 있는 이 정려각은 야계 송희규선생의
효행이 지극함을 당시 경상도 관찰사 이언적(李彦迪)이 조정에 올려
중종 38년(1543년) 9월 28일 정려가 내려져 세운 비각이다.
비와 비각을 다시 세우면서 편액을 충효각이라 변경한것 같다
다시 만든 비
-효자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행 사헌부집의 시 충숙공 송희규 지각
(孝子 贈 資憲大夫 吏曹判書 行 司憲府執義 諡 忠肅公 宋希奎 之閣)
정려각 옆에 있는 원래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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