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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천연기념물,노거수

영월 청령포 관음송(천기349호)

by 안천 조각환 2020. 5. 27.

청령포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의 남한강 상류에 있는 곳으로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송림에는 천연기념물 제349호인 관음송이 있다.

 

청령포 가는길

남쪽은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ㆍ북ㆍ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지형이며,

현재도 도선을 이용해야만 방문이 가능하다.

또한 이곳은 1457년(세조 3) 세조(世祖)에 의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청령포 송림

 

관음송은 영월의 청령포 안 송림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349호이다.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의 크기로

1.6m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청령포는 세조 2년(1456)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변고를 알려 주었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 나무는 단종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관음송
두가지로 갈라진 관음송
단종이 걸터앉아 쉬었다는 갈라진 줄기
단종 유배지

적암 조신(曺伸)의 소문쇄록에는 단종이 폐위될 당시의

생생한 모습들이 담겨있어 옮겨본다.

 

노산군(단종)이 수강궁에서 왕위를 물려주었다.

어두운 밤에 횃불이라고는 없고 단지 오십여 인이 종루거리를 돌아갔다.

주위 행랑에 사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모두 곡을 했으나

그치게 하거나 금하지 않았다.

 

*경회루를 조성한 후 43년 뒤인 1455년(을해년) 윤6월 11일

단종이 삼촌인 수양대군의 압박 속에 왕위를 양보했던 곳이 바로 경회루였다

 

마침 윤훈(尹壎)이 사금(司禁)이 되어 나에게 들려주기를

"뒷날 영월에서 왕위를 물러나서 스스로 슬픈 노래를 지었는데,

 

달빛 낮게 드리우고 두견새가 울 제에

누각 끝에 기대노니 님은 더욱 그리워

네 울음, 나에게 슬프게 들리지 않음도 괴롭지만

너의 울음, 내 슬픔을 알릴 수 없음이 더욱 애달퍼

슬픔에 쌓인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노니

춘삼월 자규루엘랑 오르지 마소, 하니

 

나라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고 했다.

변고가 생기던 날, 아침 뇌성이 크게 일어 지척에서도 사람을 분간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 종 석지(石智)란 자가 나에게 "애비가 행상을 하며 영월에 갔는데

마침 변고를 보게 되었으니, 향년 19세였습니다. 고 한다. 

 

단묘재본부시유지 비

영조가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고 써서 내렸고, 

이것을 화강석 비좌 위에 올려진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에 새겼다. 

비(碑)의 뒷면에는 1763년(癸未,영조29)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담장 밖에서 보는 유베지
금표비

유배 당시 세운 것으로 알려진 금표비(禁標碑)

 

청령포 안에서 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