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보현산 남쪽 횡계천 벼랑에 세워져 있는 모고헌(慕古軒)은
1701년 지수 정규양(篪叟 鄭葵陽,1667∼1732) 선생이 세웠으며,
옥간정(玉磵亭)은 성리학자인 훈수 정만양(塤叟 鄭萬陽,1664~1730)과
지수 정규양(篪叟 鄭葵陽) 선생 형제가 1717년(숙종 43) 세운 정자이다.

옥간정(玉磵亭)
이따금씩 부슬부슬 내리는 부슬비가 가을을 더욱 재촉하는날
푸르른 벗(청우,靑友)들과 조선 선비들의 누정안으로 들어가 본다.

옥간정 전경


횡계천 벼랑끝의 누각

옥간정 누대

옥간정(玉磵亭) 편액
글자 그대로 읽노라면 구슬같이 맑은 산골물간의 정자이다.
보현산에서 흘러내리는 구슬같이 맑은 물이 횡계마을 앞 벼랑에서
소(沼)를 이루며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하는 그곳에 옥간정이 세워져있다.

옥간정 만영(玉磵亭 謾詠)
옥간정에서 부질없이 읊는다 ~ 훈수.지수(塤叟. 篪叟)
계곡의 물이 네 구비 만에 웅덩이를 채워서 소가 되고,
소의 위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어서 편액을 달아 옥간정이라 하니
그 이름은 물에서 취했다. ~ 이하 하략
☆ 지수는 정규양(鄭葵陽), 훈수는 정만양(鄭萬陽)선생이다

십경운(十景韵) ~ 열 가지 경치
1.양 언덕 복숭아꽃 성하게 피어 울긋불긋 하도다.
2.녹음이 바다 같은데 꾀꼬리가 오르 내리네.
3.곳곳이 단풍 숲으로 겹겹이 비단 수 놓았네.
4.시냇가의 시원한 소나무 빽빽이 푸르럼을 머금었네.
5.해는 떴으나 늦은 안개 걷히지 않네.
6.손님 적고 사람 한가하니 낚싯대 잡고 거문고 끌고 뗏목에 오르네.
7.꽃산에 해가 지니 어둠 침침 하도다.
8.달빛 비친 연못앞에는 금빛 물결 반짝이네.
9.산에 비가 처음 지나가니 계곡 물소리 요란하네.
10.옥 숲에 구슬나무 영롱하여 사랑스럽네.

근차(謹次)
삼가 차운함 ~ 이밀암(李密菴,1657~1730) 재(栽,심다)
꿈속에서 선구에 들어와 티끌을 멀리하니
물이 빈 근원에는 길이 따로 없도다.
사계절의 광경과 같이 함을 기뻐하고
한 집에서 소영하니 뒤의 때를 분개하내.

근차 문인 정중기(鄭重器) 시판

근차 계제(季第, 막내) 몽양(夢陽) 시판

옥간정에서 보는 아래 계곡

모고헌(慕古軒)으로

모고헌(慕古軒)
모고헌은 1701년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1667∼1732) 선생이
영천 대전동에서 이거하면서 건립하여,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1730년에 문인들이 개축하면서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모고헌(慕古軒)이라 개명 하였으며, 1998년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계곡에서 보는 모고헌
횡계계곡 단애(斷崖,벼랑)위에 세워져 있는 모고헌은
앞에서 보면 단층건물이나 계류에서 보면 층층누각 형태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모고헌 중앙의 방
모고헌은 별도의 기단 없이,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평면은 중앙에 1칸의 온돌방을 넣고, 방의 4면에는 두 짝 세살문을 달았다.
방을 중심으로 사면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모고헌 왼쪽 측면
문 하부에는 머름을 구성하고, 문 상방 위는 심벽을 꾸몄으며,
3면은 판벽을 꾸미고 판문 또는 판창을 달았는데, 상부는 살대를 꾸며
창호를 모두 닫아도 위로 환기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면 마루 아래에는 난방을 위한 아궁이를 두었다.

모고헌 오른쪽 측면

중앙의 온돌방

모고헌앞 누대위에서 선조들의 발자취를 드듬어 보는 후손

태고와(太古窩) 편액

모고헌(慕古軒) 편액
태고와를 1730년 문인들이 개축하면서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모고헌(慕古軒)이라 개명 하였다.

태고와기(太古窩記)
집을 태고로 일컬음은 무엇 때문인가?
질박하고 누추함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세상의 사람이지만 마음은 태고이다.
뿔로서 건을 만들고 가죽으로 띠를 만들고 성긴 베로 옷을 만드니
입은 것이 모두 태고이다. ~중략 ~
날마다 반드시 홀로 단정하게 앉아 침잠하며 지금 사람이
맛보지 못한 것을 맛보니 무회씨의 백성인가? 갈천씨의 백성인가?
그러므로 이름을 지었노라. ~ 1701년 9월 태고자는 기록한다,

횡계서당(橫溪書堂)
모고헌 안쪽에 있는 횡계서당(橫溪書堂)은
형제가 세상을 떠난 뒤인 1737년 경 서원으로 변모한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흥선대원군 때 훼철된 후 서당으로 복원하였다.

모고헌과 향나무

향나무 오른쪽이 모고헌, 왼쪽은 횡계서당이다

수령 300년이 넘은 보호수 향나무

덤너머의 횡계서당(왼쪽)과 모고헌(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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