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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사람과 땅 지리지에 담다

by 안천 조각환 2026. 1. 31.

지리지는 조선시대 땅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으로

산천, 풍속, 인구 등 국가운영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담고있다.

땅과 그 위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그속에 담겨있는 옛 기록속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만나본다. 

 

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

 

땅은 우리삶의 터전이자 선조들의 삶이 기록된 역사 그 자체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산천의 위치, 인구와 토지, 풍속과 특산물 등 

국가운영에 필수적인 모든 정보를 지리지에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지리지에 담긴마음

 

지리지는 단순한 행정 문헌을 넘어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담아낸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경상도지리지 편찬 600주년을 기념하여 지리지를 중심에 두고

지도, 문헌, 회화 자료를 통합적으로 조명하는 최초의 시도이다.

 

세종실록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혹은 세종장헌대왕실록지리지

(世宗莊憲大王實地理志)는 조선 초기의 지리지이자 한국 역사상

세 번째로 만들어진 전국지리지로 세종실록 제148권부터 제155권까지

총 8권에 걸쳐 부록으로 실려 있으며, 독자적인 완성도를 갖춘 지리서이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 경상도지도~ 600년된 문헌

 

세종 6년(1424년) 세종이 변계량(卞季良) 등에게 조선 팔도의

지리지를 편찬할 것을 명한 것이 시초로 이에 따라 1425년(세종 7년)에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가 가장 먼저 완성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7도의 지리지 편찬을 계속하여 1432년(세종 14년)에

마침내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가 완성되었다.

 

영상물속의 경상도지리지

 

한성부를 시작으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함길도 순으로 전국 8도의 지리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각 고을마다 파견된 지방관의 등급과 인원, 건치연혁, 별호, 숙현, 향, 소,

부곡의 연혁, 진산(鎭山)과 명산대천, 사방 경계와 인접 고을까지의 거리,

 

산도(山圖) 등

 

호구(戶口)와 군정(軍丁) 수, 성씨(姓氏), 토질의 비옥도와 전결(田結) 수,

토의(土宜, 적합한 작물), 토공(土貢, 공물), 약재, 토산물, 누대(樓臺), 역, 봉수,

산성, 제언(堤堰, 저수지), 사찰 등의 순서로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풍속 삶을 담다 ~ 호패,  도포, 신발 등

 

국가는 세금과 군사의 기반인 인구를 정확히 파악해야했다.

3년마다 작성된 호구 문서는 바로 그 결과로 호구 등에 담긴

한 가족의 소박한 삶 등이 모여 국가통치의 근간이 되었다.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은 곧 백성을 헤아리는 일이었다.

몇 명의 백성이 어디에 살고 얼마만큼의 땅을 일구며

그중 몇명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지?

 

교통 ~ 길을 잇다

 

길을 통해 사람과 물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문화가 

퍼져 나갔는데, 영남대로의 중심에 대구가 있었으며. 마패와

노문(奴文)같은 증표들은 왕의 명령이 전국으로 나갔음을 보여준다.

 

수선전도(首善全圖)

 

수선전도(首善全圖)는 1840년대에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판본 서울지도이며, 세로 83cm, 가로 65cm,

상·중·하로 이루어진 지도의 판목이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수선(首善)이란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에 "으뜸 가는 선을 세움은

서울에서 비롯한다"는 뜻의 낱말로서, 서울을 지칭하는 별호로 쓰였다.

 

지리지 속의 지도 ~ 함경도 길주(영상자료)

 

농업국가 조선에서 땅은 생명의 원천이자 국가재정의 기반이었다.

 한뼘의 땅이라도 기록하여 세금을 거두려했고, 백성은 땅을 일구어 

생계를 꾸렸으며, 국가의 공식 토지대장은 양안으로, 땅은 생존의

터전이자 한 가문의 정체성 이었으며 땅의 기록은 한 시대 역사였다.

 

산도(山圖) 등

 

군사, 나라를 지키는 힘

 

땅은 풍요로운 결실을 주지만 때로는 꼭 지켜야하는 터전이기도 하다.

국가는 백성을 보호하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길렀다.

지리지는 어느 고을에 몇명의 군인이 있고, 어느 곳에 성을 쌓아야

하는지를 꼼꼼히 기록하였는데, 대구는 영남지역의 군사 중심지였다.

 

묏자리를 표시한 선산도(先山圖)

 

산도는 조상의 무덤위치를 표현한 지도로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가문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 후손들이 산도를 그려 족보에 올리기도 했다.

 

산도

 

평안도 변성지도

 

지리지로 살펴보는 통계(대구)

 

대구 인구

1454년 ~ 1,329명(세종실록지리지), 1768년 ~ 60,508명(대구읍지)

1,899년 ~ 66,962명(대구부읍지),

 

1899년 대구지리지 통계

의 총 면적 7,818결 38부 3속. 의 총 면적 4,976결 54부 4속,

1년 세금(전세) ~ 1,791섬 27말 4되(20kg짜리 쌀 포대 13,500개정도)

 

동람도(팔도총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있는 동람도(팔도총도)는 지리지에

수록된 최초의 전국지도로, 목판으로 인쇄되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또 해좌일통전도는 지도상 모든 거리의 기준점을 대구로 삼아

전국을 향해 나아가는길이 대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타냈다.

 

 

지리지가 품은 방대한 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도였으며, 글과 그림은 서로를 완성하며 함깨 발전했다.

그 정점에 김정호가 있었으며, 그는 청구도, 동여도와 같은 과학적인

지도를 제작하는 동시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동여도지, 대동지지

등을 편찬 했고, 대동여지도와 같은 정밀한 지도 위에서

국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수있게 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영남도지도

 

영남도지도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경상도전도 지도책의 일부로

지도의 한 가운데인 대구 중심부에 경상감영이 표시되어 있고, 

거리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지도 면에 네모난 격자를 넣어 제작했다.

 

영남도지도(嶺南道地圖) 등

 

순천부전도(順天府全圖)

 

사람과 삶의 흔적 ~ 지리지에 담은 시대의 얼굴

 

오헌(吾軒) 박제연(朴齊淵)의 현판

 

 오헌(吾軒) 현판은 영주 무섬마을에 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박제연(朴齊淵, 1807~1890)이 내건 나의집이라는 뜻의 당호 편액으로,

1875년(고종 12)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1807~1877)가 썼다.

 

충효당(忠孝堂) 편액

 

충효당(忠孝堂) 편액은 서애 류성룡선생의 종택인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에 걸려있는 편액으로, 17세기 명필인 미수 허목의 전서체이다.

 

청구람승도(靑丘覽勝圖)

 

대구달성도와 부읍지

 

팔마비(八馬碑)

 

순천 팔마비(順天 八馬碑)는 1281년(고려 충령왕 7년) 이후에

승평(현 순천)부사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순천시

옛 승주군청앞에 건립한 양각으로된 비석으로 보물 제2122호이다.

이번 전시는 2025년 11월 25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