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초정은 김천 구성면 상원리에 있으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46호였다가
2019년 12월 30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47호로 승격되었다.
문화재청은 이날 방초정을 비롯하여 강릉 경포대와 봉화 한수정,
청송 찬경루, 안동 청원루, 안동 체화정, 경주 귀래정, 달성 하목정, 영암 영보정,
진안 수선루 등 누정(樓亭) 문화재 열 곳을 보물로 지정했다.
방초정 정중앙에 온돌방이 있다(2011.5.)
방초정은 조선후기인 1625년에 이정복이 건립한 정자로
처음 건립했을 때는 현재의 위치보다 앞쪽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1689년 훼손된 것을 그의 손자 이해가 중건하고, 1727년에 다시 보수하였고,
1736년의 큰 홍수로 유실된 것을 1788년에 이의조가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방초정은 2층 누각 한가운데 온돌방을 두고서 사방으로 여닫이문을 달고
마루를 놓았는데 이러한 형태는 주로 호남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자 중앙의 온돌방은 사면이 벽체가 없이 문을 들어 여닫을 수 있는 들문을 달았으며
모두 창호를 바른 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창호에 한지를 바른 것은
자연 채광과 더불어 환기를 위한 것이며 또한 사방으로 조망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화강암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로 초석을 놓고 온돌방을
구성하고 있는 누 상부의 네 기둥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주를 세웠다.
추울때에는 1층에서 불을 넣어 다뜻하게 할수 있고, 더울때는
방의 문을 모두 들어올려 걸어놓아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하게 할수있다
정자위에서 내다본 연못과 들녁
정자앞 연못의 버드나무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왕버들
배롱나무꽃이 곱게핀 여름날(2013.7.29)
방초정 오른쪽에는 이정복 처 화순최씨 정려비각과 풍기진씨열행비가 있다
방초정 바로 옆에 있는 이정복 처 화순최씨 정려비 .
비의 주인공인 화순최씨는 17세에 연안이씨인 방초정 이정복에게 시집을 가서 신행길에
임진왜란을 맞았는데 죽더라도 시집에가서 죽겠다고 시가인 이곳 원터마을로 오다가
왜병을 만나 정절을 지키고자 못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이같은 열행을 지역 유림이 조정에 상소하자 인조임금이 어필 정려문을 내렸다.
정려각 상단 편액
정려각앞의 석비
정려각 앞의 이 비는 화순최씨 몸종인 석이의 비로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라는 비문이 적혀있는데, 사연인즉
상전이었던 화순최씨가 왜병을 피해 못에 빠져죽게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웅덩이에 뛰어들어 같이 목숨을 잃었다는
몸종 석이의 이야기로 전설로만 전해왔었는데 1975년 방초정 준설시에
방초정앞 연못에서 비를 발견되어 주민들이 이곳에 세워놓았는데
이는 주인을 구하려다 목숨까지 잃은 노비의 충성심에 감복한 연안이씨 문중에서
비석까지 만들었으나 반상의 신분으로 차마 세우지 못하고 연못에 던져 놓았던것이
380여년이 지나 마을사람들에 의해 정려각앞에 세워지게 되었다는 애닲은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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