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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쉬어 가는곳/이야기 마당

세상은 물결이요, 인심은 바람이다.

by 안천 조각환 2012. 12. 27.

 

 

세상은 물결이요 인심은 바람이다

  대선이 끝났다. 또 거친 풍랑이 한 차례 지나가고 세상은 잠시

평온을 되찾았다. 이처럼 세상은 늘 수면 아래 흐르는 물살처럼

움직이다가 이따금 큰 풍랑으로 일렁이곤 한다. 사람들은 세상이란 물결을 스스로 헤쳐가기도 하지만 큰 흐름은 필경 거역할 수 없다. 이 이치를 모르면 세상을 우습게보아 스스로 오만해지기 쉽다.

게다가 국가의 권력은 거대한 물결 위에 뜬 큰 배와 같아서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더 큰 위험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권력이란 배의 사공은 더욱 정신을 차려서 키를 잡고 노를 저어야지, 잠시도 방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주옹(舟翁)에게 물었다. “그대는 배에서 사는데, 고기를 잡는다고 하자니 낚시가 없고, 장사를 한다고 하자니 재물이 없고, 나루의 관리(官吏) 노릇을 한다고 하자니 강물 가운데만 떠 있고 물가로 오가지 않습니다. 깊고 깊은 물 위에 일엽편주를 띄우고서 가없이 드넓은 만경창파(萬頃蒼波)를 건너갈 제 세찬 광풍(狂風)이 불고 거친 파도가 일어나 돛대가 기울고 노가 부러지면, 정신은 두려워 달아나고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을 터이니, 위험을 무릅쓴 몹시 무모한 짓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도리어 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아주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주옹이 말하였다. “아아! 그대는 생각하지 못합니까. 사람의 마음은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져 변화무쌍합니다. 그래서 평탄한 땅을 밟을 때는 편안하여 방자해지고, 위험한 곳에 있을 때는 떨면서 두려워합니다. 떨면서 두려워하면 조심하여 튼튼히 지킬 수 있고, 편안하여 방자하면 반드시 방탕하여 위망(危亡)해지게 마련이니, 나는 차라리 위험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조심할지언정, 편안한 곳에 살면서 스스로 방종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내 배는 고정되지 않은 채 물 위를 떠다니니 한쪽으로 편중되면 반드시 배가 기울어집니다. 따라서 좌로도 쏠리지 않고 우로도 쏠리지 않으며, 어느 쪽이 무겁지도 않고 어느 쪽이 가볍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가 그 중심을 잡고 평형(平衡)을 지켜야만 내 배를 기울어지지 않고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풍랑이 일어나도, 홀로 평안한 내 마음을 어찌 흔들어 어지럽힐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人心)은 하나의 거대한 바람인데,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신이 그 속에서 가물가물 흘러가는 것이 마치 작은 일엽편주가 드넓은 물결 위에 떠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배에서 산 뒤로부터 세상 사람을 보면 그저 편안한 것을 믿고 환란을 생각하지 않으며, 욕심을 맘껏 부리고 종말을 걱정하지 않다가 서로 풍랑 속에 빠지고 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이하여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태하다 합니까.”
  말을 마친 주옹은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아득히 펼쳐진 강과 바다, 그 물 위에 빈 배를 띄우노라. 밝은 달빛을 싣고 나 홀로 가노니, 한가로이 노닐며 평생을 마치리라.” 하고는 그 사람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떠났다.

[客有問舟翁曰: “子之居舟也, 以爲漁也則無鉤, 以爲商也則無貨, 以爲津之吏也則中流而無所往來, 泛一葉於不測, 凌萬頃之無涯, 風狂浪駭, 檣傾楫摧, 神魂飄慄, 命在咫尺之間, 蹈至險而冒至危. 子乃樂是, 長往而不回, 何說歟?” 翁曰: “噫噫! 客不之思耶? 夫人之心, 操舍無常, 履平陸則泰以肆, 處險境則慄以惶; 慄以惶, 可儆而固存也, 泰以肆, 必蕩而危亡也. 吾寧蹈險而常儆, 不欲居泰以自荒. 况吾舟也, 浮游無定形, 苟有偏重, 其勢必傾; 不左不右, 無重無輕, 吾守其滿, 中持其衡, 然後不欹不側, 以守吾舟之平. 縱風浪之震蕩, 詎能撩吾心之獨寧者乎? 且夫人世一巨浸也, 人心一大風也; 而吾一身之微, 渺然漂溺於其中, 猶一葉之扁舟, 泛萬里之空濛. 盖自吾之居于舟也, 祗見一世之人恃其安而不思其患, 肆其欲而不圖其終, 以至胥淪而覆沒者多矣. 客何不是之爲懼, 而反以危吾也耶?”翁扣舷而歌之曰: “渺江海兮悠悠, 泛虛舟兮中流. 載明月兮獨往, 聊卒歲以優游.” 謝客而去, 不復與言.]
 
- 권근(權近 1352~1409),〈주옹설(舟翁說)〉,《양촌집(陽村集)》

                                    ▶심사정(沈師正)의 선유도 중 부분

  이 글의 체제는 유명한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자인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가설하였다.
  주옹(舟翁)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늘 배 위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는 풍랑이 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배 위에 살지언정 사람들이 모여 사는 뭍에는 오르지 않는다. 그는 그 까닭을 ‘편안해 보이는 세상에선 방종하기 쉬워 더 위험하고, 물 위에서는 조심하여 더 안전하다.’고 하고, 또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은 하나의 거대한 바람인데, 미미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신이 그 속에서 가물가물 흘러가는 것이 마치 작은 일엽편주가 드넓은 물결 위에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세상은 물결이요 인심은 바람이라 한 말은, 모르거니와 이같이 적절히 인간 세상을 비유한 명구(名句)가 또 있을까. 권근이 살았던 여말선초(麗末鮮初)는 왕조가 바뀐 격변기였으니, 세상ㆍ인심의 변화와 권력의 무상함을 얼마나 여실히 겪었겠는가. 지금도 그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작금의 우리 사회야말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아니던가.
  《순자(荀子)》에는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조선의 숙종(肅宗)은 14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이 물과 배의 관계를 〈주수도(舟水圖)〉란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자신의 경계로 삼았다. 오늘날에서 보면 국민은 물이요 권력은 물 위에 뜬 배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장자(莊子)》에는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다가 사람이 타지 않은 빈 배[虛舟]가 와서 부딪치면 아무리 마음이 좁은 사람일지라도 성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삶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허주(虛舟)라는 호(號)를 쓴 사람이 많다. 주옹이 노래로 읊은 것이 바로 이 허주의 삶이다. 이 두 비유와 연관하여 윗글을 읽어보면 한층 맛이 있을 것이다.
  또 주희(朱熹)는 물이 불어나면 큰 배도 자연히 뜬다고 하였다. 성어로 수도선부(水到船浮)라 하는 이 말은 본래 진리를 탐구하는, 참된 학문의 힘이 쌓이면 애쓰지 않아도 하는 일이 절로 이치에 맞음을 비유한 것인데, 세상사 이치도 이와 같다. 욕심을 부려 억지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일이 잘 되지 않고, 공력을 쌓으며 때를 기다리면 뜻밖에 큰일도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다. 위 글과 직접 관계는 없지만, 물과 배의 좋은 비유라 음미해봄직하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물결로 쉬지 않고 움직인다. 잔잔한 물결은 세상을 맑히고 생명을 살리지만 사나운 물결은 세상을 뒤엎고 생명을 해친다. 걸핏하면 세상을 아수라의 싸움판으로 몰아가는 좌ㆍ우, 진보ㆍ보수의 대결, 내지 지역 갈등은 우리 사회라는 큰 배를 기울게 하고 뒤엎을 수 있는 거친 풍랑이요 무거운 짐이다.
  매서운 한파 속에 또 한 해가 저문다. 우리는 세상의 물결 위에 떠가고 있거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나를 보라고 오만을 부리지는 않는가. 쓸데없는 대립과 공격으로 우리의 배를 기울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속에 도둑처럼 숨어들어서 마음을 옭죄고 있는, 자신에게 물어도 스스로 대답할 수 없을 이 편견과 증오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의 배를 짓누르고 있는 이 무거운 짐들을 꼼꼼히 찾아서 내려놓아 우리의 배를 비우자. 그리하여 새해에는 좌로도 우로도 기울지 않고 앞으로도 뒤로도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서, 우리의 빈 배를 드넓은 세상 물결 위에 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