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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梅溪 曺偉 先生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6)함양 학사루(學士樓)

by 안천 조각환 2019. 9. 8.

학사루(咸陽 學士樓)는 함양 운림리 군청 바로 앞에 있는 누각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다.

신라 시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며, 원래 관아의 객사로,

동쪽에는 제운루, 서쪽에는 청상루, 남쪽에는 망악루가 있었다고 전한다.

조선 숙종 18년(1692)에 다시 지었다고 전하며,

1979년에 지금의 위치인 함양군청 정문 앞에 옮겨 지었다.

 

 

학사루 전경

 

학사루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때와 

조선시대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김종직이 이곳 군수로 있을 때 학사루에 걸린 유자광의 시를 내리도록 하였는데

후일 유자광이 이에 원한을 품고 조의제문을 빌미로 무오사화(1498)를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한편 매계 조위(梅溪 曺偉)선생은 김종직의 뒤를 이어

1484년 8월에 걸군하여 함양군수에 임명되었으며

1489년 2월 부친의 상을 당할 때까지 6년여간을 근무하였다. 

그가 함양을 다스림에 어짊과 너그러움, 간결하고 검소한것으로 근본을 삼았으며

학교를 일으키고 인재를 기르는 것을 의무로 여겼다.

 

 

학사루 내부

 

매계선생이 함양군수로 재임(1484~1489)시 남긴

 

 

1.군재우서(郡齊偶書)  군청에서 우연히 쓰다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빠르게 흐르는 세월 하루도 저물어 /  물물세화만(忽忽歲華晩)

 끝없이 부는 바람에 날이 차구나 /  수수풍일한(修修風日寒)  

 황당에는 꽃 화분을 두고 /  황당각화화(黃堂閣花華)   

 검은 안석에 기대어 차를 마신다 /  조궤연룡단(鳥几嚥龍團

 

 버들의 눈은 봄인데도 아직 옅고 /  유안춘유천(柳眼春猶淺) 

 매화가지에는 눈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  매초설미건(梅梢雪未乾)  

내일 아침이면 관양주가 익으리니 /  명조관양숙(明朝官釀熟)  

손님이 와도 환대할 수 있겠구나. /  객지족위환(客至足爲歡) 

 

 

 

2.군제구무화훼(君齊舊無花卉) 수종매사조(手種梅四條)

 일년개착화(一年皆着花) 부시영지(賦詩詠之)

 

군청에는 옛날에 꽃나무가 없었는데 손수 매화 네 그루를 심었다.

일 년이 지나자 모두 꽃이 피어 시를 지어서 읊었다.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坐對軒窓喚作兄(좌대헌청환작형) 동헌의 창가에 앉아 형으로 삼아 불러보는데

盡輸春色到山城(진수춘색도산성) 봄빛이 죄다 산성으로 옮겨온 듯

花先百種寧論品(화선백종녕논품) 매화는 꽃 가운데 가장먼저 피는데, 어찌 등급을 논하랴

氣壓群芳合擅聲(기압군방합천성) 기상이 뭇 꽃들을 압도하여 성가를 떨치는구나.

但得瑤琴思醉月(단득요금사취월) 다만 거문고를 타며 달빛아래 취할 곳을 생각하여

非關金鼎要調羹(비관금정요조갱) 쇠솥의 국에 맛을 맞추는 것에 상관하지 않는다.

東君幷借栽培力(동군병차재배역) 봄의 신에게 기르는 힘을 빌려서

開盡幽香滿院生(개진유향만원생) 그윽한 향기가 정원에 가득하게 하리라.

 

淸興依然戀物華(천흥의연연물화) 맑은 흥취는 예전같이 아름다운 형상을 연모하여

君庭人靜放朝衙(군정인정방조아) 군청의 뜰에 인적도 없으니, 공무도 놓아둔다.

春前倫種玲瓏玉(춘전윤종영롱옥) 봄이 오기 전에 영롱한 옥을 훔쳐 심으니

雪裏先開的皪花(설이선개적역화) 희고 고운 꽃을 피운다.

何遜風情元不老(하손풍정원불노) 하손의 풍취는 원래 노숙하지가 않고

廣平詞賦最堪誇(광평사부최감과) 광평의 사부는 매우 자랑할 만하다.

天香國色眞爲惜(천향국색진위석) 천향과 국색이 진실로 아까우니

莫遺紛紛委亂沙(막유분분위난사) 어지럽고 지저분한 모래밭에 내버려두진 마오.

 

 

 

3.목민관 조위는 "어질고, 용서하고, 간편하고, 검소하게"를 행정의

원칙으로 세우고 백성을 다스렸다. 즉 민본사상에 의한 위민정치의 실천이었다.

 

함양군수 시절 읊은 시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남쪽으로 내려와 세 번째 만나는 함양의 가을 / 남래삼견속함추(南來三見速含秋)

해가 저물도록 일하지만 절반은 근심이네 /  졸세진로반시수(卒歲塵勞半是愁)

너그럽고 대범한 생애는 도연명과 같고 /  탄솔생애류팽택(坦率生涯類彭澤)

드높은 기개는 엄주를 떠올리게 하는데 /  헌앙기개상엄주(軒昂氣槩想嚴州)

 

가두고 때리는 일 없으니 마음 흐뭇하고 /  영무하교료감희(囹無荷校聊堪喜)

가을걷이 끝나면 편히 쉴 수 있겠네 /  가이등장폄가휴(稼已登場便可休)

머리 돌려 지난 춘궁기의 그 날을 떠올리며 / 회수춘풍진궁처(回首春風賑窮處)

집집마다 모여 앉아 북피리의 여유를 즐기겠지 /  가가고죽사중유(家家鼓笛社中遊)

 

만안의 황금빛 구름처럼 벼가 영그는 가을 /  만안황운파아추(滿眼黃雲䆉亞秋)

백성들은 배부를 수 있어 근심이 없구나 /  민금득포가무수(民今得飽可無愁)

정녕 그대들은 모시풀을 잊지 않았겠지 /  정녕여배무망거(丁寧汝輩無忘莒)

다른 해를 생각해야 상수이지 않겠나 /  상략타년막(商略他年莫)

 

책상에 쌓인 문서가 지겨워서 보기 싫어도 /  염견안두공부극(厭見案頭公簿劇)

들로 나가는 수레가 없을 때를 미리 대비해야지 /  요지야외역차휴(遙知野外役車休)

관직이란 세망처럼 얽히고설킨 업무에 시달리는 것 /  진맹세강상제부(塵纓世網相牽縛)

나막신 신고 산행할 여유도 없네 /  미의등산랍극유(未擬登山蠟屐遊)

 

*속함(速含)은 함양의 조선시대 옛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