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金庾信,595~673)장군은 신라의 통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의 무신으로. 본관은 김해이며 가야국 김수로왕의 12대손이다.
15세 되던 해 화랑이 되어 낭도를 이끌고 수련하다가 신라군이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 때
적진에 돌입해 유린함으로써 고구려군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압량주 군주로서 백제군을 격퇴하고 삼국일통을 하는데
뚜렷한 공적을 세우는 등 신라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했다.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신라까지 침략해 삼국을 지배하려는 양상을 보이자
군사를 지휘하며 지도적 역할을 했으며 사망 후 신라는 당의 군대를 대동강 이북으로 몰아냈다.
김유신 묘 입구인 흥무문(興武門)
김유신의 묘는 경주 충효동의 송화산(松花山)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전망이 좋은 구릉 위의 울창한 소나무숲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적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둘레돌은 대체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둘레돌과 같은 양식으로서
벽석(壁石)·연헌석(緣軒石), 연대석(緣臺石)으로 짜여 있다.
신상석은 모두 12개로 자상(子像: 쥐)·축상(丑像: 소)·인상(寅像: 호랑이)·묘상(卯像: 토끼)·
진상(辰像: 용)·사상(巳像: 뱀)·오상(午像: 말)·미상(未像: 양)·신상(申像: 원숭이)·
유상(酉像: 닭)·술상(戌像: 개)·해상(亥像: 돼지) 등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이 십이지신상은 다른 왕릉이 갑주무장상(甲胄武裝像)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으며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고 몸〔身部〕은 ‘을(乙)’자형으로 틀었다.
. 이 묘의 봉분표식 구조와 양식은 흥덕왕릉의 봉분표식과 비슷해 김유신이 흥덕왕 때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追封)됨과 동시에 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묘소 가는 솔숲 길
김유신 장군묘
경주 김유신 묘 (사적 제21호)
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릉(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 석비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 비
오상(午像: 말)·
신상석은 모두 12개로 전면에서 시계방향으로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미상(未像: 양)·
신상(申像: 원숭이)·
유상(酉像: 닭)·
술상(戌像: 개)·
해상(亥像: 돼지)
자상(子像: 쥐)·
축상(丑像: 소)·
인상(寅像: 호랑이)·
묘상(卯像: 토끼)·
진상(辰像: 용)·
사상(巳像: 뱀)·
신도비 입구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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