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사젓 제96호)은 경주 북부동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읍성으로 추정되는 성곽이다.
경주읍성은 1012년(고려 현종 3)에 축성되었으며, 1378년(고려 우왕 4)에 개축되었다.
지금의 경주읍성은 조선시대 전기에 다시 지은 것이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읍성의 규모가 둘레 4,075척(약 1.222㎞),
높이 12척이며, 우물이 80여 곳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지고 민가 뒤에 동쪽 성벽 약 40∼50m 가량만 남아 있다
동쪽에는 향일문(向日門), 서쪽에는 망미문(望美門), 남쪽에는 징례문,
북쪽에는 공진문(拱辰門)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집경전(集慶殿)이 있던 자리 뒤쪽의 석축 구조물을 고려시대 북문터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시에서는 2002년부터 경주읍성 복원사업을 펼쳐
2019년까지 동문이었던 향일문(向日門)과 동쪽 성곽 484m를 복원하였다.
2030년까지 전체 성곽 2.4㎞ 가운데 동·북쪽 성곽 1025m를 잇고
그 사이에 동·북문, 치성 11개소를 복원하기로 했다.
또 성 안에 남아 있던 동경관과 집경전등의 유적도 정비할 계획이라한다.
발굴된 석물들과 일부 복원된 성곽
남아있던 성곽
동쪽부분
복원된 동쪽 성곽
동문인 향일문과 성곽
동문인 향일문
향일문 안쪽
집경전구기(집경전이 있던 자리)
*조선시대에는 국조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향하는 진전을 서울에는 문소전(文昭殿) 한 곳,
외방에는 전주의 경기전(慶基殿), 영흥의 준원전(濬源殿), 경주의 집경전,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개성의 목청전(穆淸殿) 등 다섯 곳에 두고 유지하였다.
경주 집경전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세워지고,
국가에서 추인하여 태조 진전으로 기능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태조 어진만 강릉으로 옮겨져 강릉 집경전으로 유지되다가
1631년 화재로 인해 전각과 초상화가 모두 불타 버렸고 이후 복구되지 못하였다.
1796년(정조 20)에는 경주 집경전 터에 ‘집경전구기(集慶殿舊基)’
다섯 글자를 세운 비를 세워 태조 진전이 있던 옛 터임을 알리게 하였다.
"집경전구기" 북쪽에 남아있는 태조 어진 봉안석실
집경전이 있던 자리와 석물들
집경전구기(터)
-2030년까지 복원계획을 세워둔 집경전 옛터-
전주 경기전에 있는 조선 태조(이성계) 어진
경주읍성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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