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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광주.전라권

청렴함의 상징 순천 팔마비

by 안천 조각환 2021. 5. 7.

순천 팔마비(順天 八馬碑)는 1281년(고려 충령왕 7년) 이후에 승평부사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전라남도 승평부(현 순천시 구 승주군천앞)에 건립한 비석이다

 2021년 3월 25일에 보물 제2122호로 승격지정되었다

비의 전면에는 팔마비八馬碑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팔마비의 건립내역을 적은 내용이 음각되어 있으나 마모되어 내용 판독이 힘들다.

이 비의 건립 배경에 대해서는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려사》 권34의 열전 최석에 기록된 관계 사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수광이 중건한 팔마비의 ‘팔마비(八馬碑)’ 세 글자는 진사 원진해元振海의 글씨이고,

뒷면에 기록된 음기는 주해 이수광이 짓고 동지사(同知事)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썼다.

 

순천 팔마비
순천 팔마비 표지석
팔마비 음기 표지석

팔마비 음기

승평부에서는 태수가 바뀌어 돌아가면 태수에게는 말 8필을 주고,

부사(副使)에게는 7필을, 그리고 법조에게는 6필을 주되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석(碩)이 갈려감에 미쳐서도 읍인들이 말을 바치고 좋은 것 고르기를 청하니

석이 웃으며 말하기를 “능히 서울에만 이르면 족할 것이어늘 말을 골라서

무엇하겠는가.”라고 하며 집에 돌아간 뒤 그 말들을 되돌려 보내니,

고을사람들이 받지 않으므로 석이 말하기를“ 내가 그대들 고을에 수령으로 가서

말이 망아지를 낳은 것을 데리고 온 것도 이는 나의 탐욕이 된다.

그대들이 지금 받지 않는 것은 아마 내가 탐을 내서 겉으로만 사양하는 줄로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그 망아지까지(모두 9필) 아울러 돌려주니

이로부터 증마贈馬의 폐단이 마침내 끊어졌으므로 고을사람들이 그 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이름하였다.

 

崔碩, 忠烈朝人. 登第累遷昇平府使, 秩滿入爲秘書郞. 昇平故事, 每太守替還, 必贈馬八匹, 

倅七匹, 法曹六匹, 惟所擇. 及碩替還, 邑人進馬, 請擇良, 碩笑曰, “馬能到京足矣. 何擇爲?” 

至家歸其馬, 邑人不受. 碩曰, “吾守汝邑, 有馬生駒帶來, 是我之貪也. 汝今不受, 

豈知我之貪而爲貌辭耶?” 幷其駒授之. 自是其弊遂絶. 邑人頌德立石, 號八馬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