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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낙단보와 낙동강역사이야기관 그리고 관수루

by 안천 조각환 2021. 10. 15.

낙단보는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와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를 연결하는 낙동강보이다.

이 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2008.12.29~2012.4.22에 건설된 보이며

  낙동강의 1)함안보, 2)합천보, 3)달성보, 4)강정 고령보, 5)칠곡보,

6)구미보, 7)낙단보, 8)상주보 등 8개보중 낙동강상류에서 2번째 보이다.

 

낙단보(의성쪽에서)

 

낙단보 주변에는 건설당시 하천변 모래더미에 묻혀있다 발견된 마애보살좌상과

관수루(觀水樓), 낙동강역사이야기관등이 있어 볼거리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낙단보(상주쪽에서)

 

낙단보 상류

 

물고기 통로(어로)

 

낙단보관리사무소와 마애사

 

낙동강 역사이야기관(상주 낙동리)

 

건물앞 야외에 전시된 수많은 화석

 

 *이 화석유물들은 박종부관장 소장품으로 3년간 무상임대하여 전시중인데

나무화석이 600여t, 기타 화석류등이 1만여점이나 된다.

참고로 박종부관장은 김천 대항면 대성리에 인동화석박물관을 운영하고있다.

 

낙동강 역사이야기관을 들어서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기기묘묘한 온갖 화석유물들

 

화석유물을 돌아보며 2층으로 올라서면 낙동강 나루터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1)퇴계 이황의 뱃놀이 이야기가 있는 의촌나루,

2)낙동강에서 제일 큰 낙동나루, 3)팔만대장경의 숨결이 어린 개경포나루

4)처녀 뱃사공의 악양나루, 5)오광대놀이가 시작된 율지나루,

6)낙동강 뱃길의 끝인 구포나루 이야기가 담겨있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펼쳐지는 낙동강 시 영상물

 

역사이야기관을 둘러보고 낙단보로 향한다

  낙단보를 건너 의성쪽으로 가면

 

생송리 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2호)

 

낙단보 건설당시 모래속에서 발견된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213cm,

불상높이가 164cm로 머리에 닭벼슬 모양의 왕관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이 보관을 일광관(日光冠), 또는 삼산형(三山形)이라고 부른다.

산(山)자 모양이기도 한 이것은 닭벼슬을 닮았는데, 이는 계림(鷄林)을 국호로 했던

닭(天鷄)의 나라 신라의 계룡(鷄龍)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불상옆에 새로 지어진 마애사

 

강 상류의 영천 상주간고속도로

 

관수루(觀水樓)

 

고려중엽에 창건된것으로 알려진 관수루는 처음에는 강의 서안인 상주쪽에 있었는데

조선초기에 수해를 입어 동안인 의성으로 이건한 후, 여러번의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였으나

1874년 수해로 유실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90년에 복원하였다.

 

관수루는 지금의 낙단교 바로 옆 의성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낙단교는 옛 낙동나루가 있던곳으로 예로부터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낙동강 하류에서 배로 실어온 물자를 여기에서 수레에 옮겨싣고 문경새재를 넘어

중부 내륙으로 운송했으며, 서울로 왕래하는 영남지방 사람들의 길목이었다.

그런 만큼 낙동나루는 1300리 낙동강 물길 가운데 규모가 제일 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나룻배의 왕래가 빈번했으나

1986년 길이 434m의 낙단교가 놓이면서 나루의 기능을 잃었다. 

 

관수루에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거쳐가며 발자취를 남겼다.

그 중 조선 전기의 대문장가이자 학자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1476~79년사이 노모 봉양을 위해 낙동나루와 가까운 선산부사로 재임하였다.

 선산은 점필재 부친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때 "낙동요(洛東謠)"라는 시를 남겼다.

황지의 원천은 겨우 잔에 넘칠 정도인데  (黃池之源纔濫觴.황지지원재남상)

여기까지 흘러와선 어찌 이리 넓어졌나  (奔流倒此何湯湯·분류도차하탕탕)

한 물이 예순 고을 한가운데를 가르니  (一水中分六十州·일수중분육십주)

나루마다 돛대가 줄을 이었네  (津渡幾處聯帆檣·진도기처연범장)

 

바다까지 내리 사백리  (海門直下四百里·해문직하사백리)

바람 따라 오가는 장사꾼들  (便風分送往來商·편풍분송왕래상)

아침에 월파정을 떠나면  (朝發月波亭·조발월파정)

저녁에 관수루에서 묵네  (暮宿觀水樓·모숙관수루)

 

누각 아래 나루에 천만 꿰미 돈 실은 배 매였으니  (樓下綱船千萬緡·누하강선천만민)

남쪽 백성들 가렴주구 어이 견디랴  (南民何以堪誅求·남민하이감주구)

쌀독은 비고 도토리마저 떨어졌는데  (缾甖已罄橡栗空·병앵이경상률공)

강가에선 풍악 울리며 살찐 소를 잡네  (江干歌吹椎肥牛·강간가취추비우)

 

조정의 사자는 유성같이 지나치니  (皇華使者如流星·황화사자여유성)

길가 해골에게야 누가 이름이나 묻겠는가  (道傍觸髏誰問名·도방촉루수문명)

 

관수루에서 보는 풍경으로, 강 건너는 상주 낙동리이고 왼쪽다리가 낙단교이다

 

화려했던 시절을 보낸 코스모스와 낙단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