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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부산.울산.경남권

소서(小暑)에 함양,거창으로 역사문화 탐방

by 안천 조각환 2022. 7. 8.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소서(小暑)날에 붕우들과 피서를 떠난다.

남덕유산의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계곡과 숲을 찾아 함양땅으로 향한다.

우선 상림숲을 찾아 천년수림의 시원하고 맑은 공기속에 오솔 숲길을 산책한 후

진흙 속에 자라면서도 청결하고 고귀한 꽃을 피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상징한다하여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왔던 연꽃을 감상한다.

습도는 높고 햇빛은 따가워 잠시만 빛과 마주쳐도 후끈후끈 뜨겁게 달아오른다.

 

상림공원 고고한 자태의 연꽃

 

그리고 함양박씨 시조묘가 있는 영명재를 거쳐 남계서원에서 전통차 체험을 하고

청계서원, 일두 정여창고택의 개평마을을  둘러보니 어느듯 문화탐방 여행이 되었다.

후덥지근함을 잊으려고 용추폭포를 찾아 시원한 폭포수에 땀을 식힌 후

금원산 임도길을 넘어 거창 월성계곡 사선대에서 하루의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 버린다.

 

상림숲

 

함양박씨 시조 재실 영명재(永明齋)

 

영명재 전경

 

남계서원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남계서원은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고,

2019.7.6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에

창건된 서원으로 숙종 때 강익과 정온을 더하여 현재는 3위(三位)를 제향하고 있다

명종 21년(1566) "남계"라는 사액을 하사받아 소수서원에 이어 2번째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1612년에 중건되었으며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 때도 일부만 훼철되고 유지되었다.

명성당(강당) 좌우로 생활공간인 보인재와 양정재가 마주보고 있고,

뒤로는 사당이 있으며, 앞에는 연못과 애련헌,영매헌이 있다.

 

남계서원 강당인 명성당

 

전통차 체험교실 모습

 

전통차 체험

 

이옥희 강사의 전통 차체험과 시 낭송 동영상

 

강당 왼쪽방에 걸려있는 시 액자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선생은 고려조의 안향→이제현→이색→정몽주→길재

→김숙자→김종직→정여창으로 이어지는 유학의 적통(適統)으로 숭상받게 되며, 

또한 퇴계 이황과 함께 동방18현 중의 한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일두 정여창선생이 두류산(頭流山) 즉 지리산에 터를 골라 집을 지을 때 지은 시

 

악양(岳陽)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시 (왼쪽 액자)


바람에 부들이 휘날리어 가볍고 부드럽게 희롱하는데 
사월에 화개에는 보리가 벌써 가을일세 
두류산 천만 골짜기 다 구경하고서  
조각배로 또다시 큰 강 흐름에 내려가네  

 

 風蒲獵獵弄輕柔  /  풍포엽엽농경유
四月花開麥已秋  /  사월화개맥이추
觀盡頭流千萬疊  /  관진두류천만첩
扁舟又下大江流  /  편주우하대강류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일두 정여창 선생

 

퇴계 이황 선생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과 일두 정여창 선생이 돌아가신

1504년 갑자년에 겨우 네 살이었는데, 퇴계는 어른이 되고 나서 시절 인연이 맞지 않아

두 분을 스승으로 모시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는 시를 지었다.(오른쪽 액자)

 

남계서원 우측에 있는 청계서원

 

청계서원은 조선 연산군 때 학자인 탁영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스승을 비롯한 영남학파 학자들과 함께

조의제문사건에 연루되어 무오사화로 희생되었다.

글에 뛰어났으며, 연산군 1년(1495)에는 "청계정사"를 세워 유생을 가르쳤다.

1905년(광무10)에 유림들이 청계정사터에 유허비를 세웠으며,

그 뒤 1915년에는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고쳐지어 청계서원이라 하였다.

 강당앞으로 구경재와 동재, 서재, 홍남문, 솟을삼문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청계서원 강당(애락당)과 노송

 

일두 정여창과 탁영 김일손과의 인연은 탁영 김일손이 두류산(지리산)을 유람하면서

보고 들은 것, 일두와 나눈 이야기 등을 적어 "속두류록"이란 기행문을 남긴다.

두 사람은 이듬해 관직을 임무 교대하는 인연으로 이어지는데

1490년(성종 21) 일두가 41세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자

당시 예문관 검열로 있던 탁영 김일손은 자신의 후임으로 일두를 추천한다.

이는 결국 “탁영이 사초(史草)를 정리하는 사관(史官) 자리를 일두에게 물려준것이 되고

1498년(연산군 4) 사초에 연루되어 같이 비극적인 무오사화를 당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개평마을의 일두 정여창 고택 솟을 대문

 

일두 정여창 선생 종택 솟을대문 상단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5개의 충신, 효자정려패가 걸려있다.

이곳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은 조선조 5현으로 추앙받은

일두 정여창( 一蠹 鄭女昌, 1450-1504)선생 종택을 비롯하여

풍천노씨 종가등 100여채의 고가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한옥 마을이다.  

 

일두 정여창선생 종택 사랑채

 

퇴계 이황과 함께 동방18현 중의 한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일두(一蠹)정여창은 자신의 호를 나무를 파먹는 한 마리의

하찮은 좀벌레라는 뜻으로 "좀 두(蠹)"자를 써서 일두(一蠹)라 하였다. 

 

함양 용추폭포

 

함양 용추폭포는 명승 제85호로 지정(2012.2.8)되어 있는 곳이다.

기백산군립공원에서 발원하여 용추계곡을 흘러 내려온 물이 만들어낸 폭포로

높이는 약 15m, 호소의 직경은 약 25m, 깊이는 약 10m나 된다.

 

거창 월성계곡 사선대(四仙臺)

 

남덕유산의 동쪽 첫 마을인 거창 북상면 황점마을 바로 아래쪽에 있는 사선대는

층을 이룬 네 덩어리의 바위 위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고 해 "사선대"라고 한다.

 

사선대앞의 월성계곡

 

사선대에서 신선과 함께 마음의 바둑을 두어보고 소서일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