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장군(1554-1592)은 1578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시했고,
1591년 진주판관이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을 맞았는데, 이 무렵 진주목사
이경이 병사하자 김성일은 김시민으로 하여금 진주목사직을 대행토록 명했다.
김시민은 의병장 김면의 요청에 따라 거창으로 가 사랑암 부근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고 이 공로로 1592년 7월 26일 진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김시민장군 충민사 전경
목사 김시민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그해 8월에 정식으로 진주목사에 취임하여
병기를 정비하는 등 진주성을 지키는 방책을 강구했으며, 9월에는 진해로 출정하여
적을 크게 물리치는 전공을 세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외삼문
10월 6일 일본군은 경상우도의 요충지인 진주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성 안에 있던 부녀자와 노약자까지 모두 나서 일본군과 대치하게 되었는데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친 10월 9일 전투지역을 순시하던 김시민은
죽은체하고 사체 속에 숨어 있던 일본군의 저격으로 이마에 총탄을 맞고 쓰러진 후
치료를 받다가 그해 10월 18일 39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사당 앞마당
김시민은 1554년 8월 27일 지금의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잣밭마을에서 출생했으며
자는 면오(勉吾), 본관은 안동으로, 그는 1604년에 선무공신 2등에 추록되었으며,
1702년에는 영의정의 직위와 충무공의 시호가 내려졌다.
신도비
김시민장군의 사당인 충민사는 괴산군 괴산읍 괴강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1976년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충민사를 세웠다.
진주성에는 김시민 장군의 전공비가 있으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이다.
김시민장군 유적정화 기념비
내삼문
충민사(忠愍祠)
김시민장군 영정
김시민장군 묘(사당뒤)
김시민장군 묘와 사당인 충민사
충민사 측면
바로옆에 있는 옛 사당
출입문
구 충민사
달천옆 충민사
홍살문을 지나 달천 다리를 건너면 충민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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