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석현리 일원은 정감록의 십승지 중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
즉 전쟁,흉년,전염병 등이 발생하지 않는곳 중의 하나로
이곳에 있는 각화산(覺華山)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를 건립한 후
각화사(覺華寺)에 800여명의 승려가 수도하며 왕조실록을 수호하게 했던곳이다.
봉화 춘양 메밀밭
조선은 여러 난리를 겪으며 역사기록서가 불에 타 없어지게 되자,
외적이 침입할 수 없는 험준한 산지를 선택해서 기록을 보존했다.
서울의 춘추관 사고 외에 전국의 오지 중의 오지 4곳에 고루 안배했다.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사고,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사고, 강화도 마니산 사고,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이 바로 봉화 각화산에 있는 태백산 사고였다.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오로지 산과 물, 자연만 있었던 곳이다.
춘양은 본래 가야향(加也鄕)이었으나 1284년(고려 충렬왕 10) 이곳 출신인 김인궤(金仁軌)의
공으로 향을 현으로 승격할 때 춘양으로 고쳐 안동부(安東府)의 관할 내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지속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봉화군으로 편입 춘양면이 되었다.
춘양이라는 이름은 만석봉(萬石峯) 아래 들판이 넓으면서도
양지바르고 항상 봄볕처럼 따뜻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곳은 춘양창(春陽倉)이 있었고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가 있던 각화사(覺華寺)의
입구라는 점에서 중요시되었던 곳이며, 최근에 들어선 백두대간수목원도 이곳에 있다.
각화산 계곡
태백산 각화사 월영루(太白山 覺華寺 月影樓)
각화사는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각화사 귀부 등에는 686년(신문왕 6)에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예종 때 국사 무애계응(無礙戒膺)이 중건하였고,
그 뒤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쳤으며,
1606년(선조 39)에는 이곳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를 건립하여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며 왕조실록을 수호하게 한 대찰 이었다.
각화사 대웅전
각화사 삼층석탑
각화사 월영루
담장맡의 가을 코스모스
서동리 일원
봉화 한수정(奉化 寒水亭)
춘양 의량리에 있는 한수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충재(冲齋) 권벌(權橃)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손자 석천공(石泉公)이 1608년(선조 41)에 건립하였으며,
1741년(영조 17)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보물 제2048호로 지정(2019년)되어 있다.
삼면이 연못처럼 둘러싸인 한수정
한수정은 삼면을 와룡연(臥龍淵)이라 이르는 연못이 둘러져 있으며,
연못과 정자 사이에는 초연대(超然臺)라는 이름의 바위,
그리고 수목이 잘 어울려 조화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나무와 바위, 연못과 정자가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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