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여왕은 1926년 4월 21일 출생하여
2022년 9월 8일 향년 96세로 스코틀랜드 벨모럴성에서 사망하였으며,
11일 후인 9월 19일에 장례식이 있었다.
가족으로는 지난해 사망한 배우자 필립공, 아들 찰스 윈저 국왕과 카밀라 콘월 왕비
딸인 앤 공주(미혼), 그리고 왕세손 윌리엄과 손부 게이트 미들턴, 왕손 해리와 손부 메건 마클
그리고 증손자로는 왕세손에서 조지(왕자), 살럿(공주), 루이스(왕자)가 있고
해리 왕손에서 아치(왕자)가 있디.
이 외에도 여왕의 둘째아들인 앤드류 왕자에서 배아트리스와 유지니의 두 공주가 있고,
막내아들인 에드워드 왕자에게서도 레이디루이즈와 제임스 두 왕자가 있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젊은 모습
거의 한세기 동안 세계역사의 중심에 서있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세기적인 장례식을
영국 BBC방송이 생중계하는 역사의 현장 등을 사진에 담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이날 장례식은 일반인들이 5일간 조문하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여왕의 관(棺)을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옮겨 장례식을 치른 후, 웰링턴 아치까지 2시간여 운구 행렬을 하고,
다시 전용 영구차를 이용하여 약 40㎞ 떨어진 윈저성 내 성조지 교회에 도착하여
여왕의 통치 종식을 알리는 의식행사까지 총 7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노년의 여왕
통치 종식 행사는 왕권의 상징인 홀과 보주가 관위에서 내려지고
왕실 살림을 책임지는 체임벌린 경이 지팡이를 부러뜨려 관 위에 올리며
여왕을 위한 복무가 끝났음을 알림으로 종료된다.
이후는 비공개로 진행되며 여왕은 지난해 4월 99세로 먼저 세상을 떠나
이곳에 영면하고 있는 남편 필립공(1921년생) 곁에서 영원히 잠들게 된다.
여왕의 관(棺)이 장례식장인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진다
여왕의 관 위에는 꽃과 왕관, 왕권을 상징하는 홀(笏·scepter)과 보주(Orb)가 있고
왕위를 물려 받은 찰스 3세 국왕이 어머니의 마지막길에 남긴 친필 편지(카드)인
“애정 어리고 헌신적인 기억을 담아, 찰스 R.” 이라는 글이 함께 놓여 졌다.
R’은 라틴어로 왕(Rex)을 뜻하는 의미다.
웨스터 민스터 사원
운구되는 관을 바라보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찰스 3세 영국왕
여왕의 관(棺)이 놓인 재단
관을 중심으로 좌우로 앉은 조문인사들
여왕의 관(棺)이 놓인 제단을 사이에 두고 남쪽 익랑(왼쪽)의 처음 몇 줄은
찰스 3세 왕을 비롯한 영국 왕실의 가족, 귀족, 영국 전현직 총리들이 앉았고,
또 영(英) 연방에서도 영국 왕을 국가 원수로 인정하는 나라들의 영국 총독과 총리들이 앉았다.
그 뒤쪽으로는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윤석열 대통령 부부,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원수들 자리가 배정됐다.
한편 찰스 3세 왕을 마주 보고 관(棺)이 놓인 북쪽 익랑에는 현존하는 유럽의 최장수
여왕인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82)와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 부부를 비롯한
유럽의 왕실 대표들이, 그 뒤에는 중동 왕족들이 자리했다.
나루히토 일왕(日王) 부부는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부부의 뒷줄인 6열에 앉았다.
장례식(미사)은 웨스트민스트 사원의 데이비드 호일 영국국교회 주임사제가 집전
영국국교회(Church of England , 英國國敎會)란
영국왕 헨리8세(1509~47)는 로마 교황과 대립하여 독립된 영국국교회를 세웠다
교황 클레멘스 8세는 헨리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승인하지 않자
영국의회는 헨리 8세를 돕기 위해 영국국교회를 로마 교황청에서 분리시키는 법령을 통과시켰으며,
1534년에는 영국의 왕을 영국국교회의 수장(首長)으로 만들었다(수장령).
헨리 8세는 비록 영국국교회를 로마 교황청에서 분리시켰지만, 여전히 가톨릭교회로 남아 있기를 원했었다.
사원 내부
관을 중심으로 관 오른쪽이 왕족, 그 뒤로 각국 대통령(미국, 한국 등)과 원수들
찰스3세 국왕(1948년생), 카밀라 콘월 왕비(1947년생), 앤 공주(1950년생)
앞측의 왕족들, 왕족 뒤로 각국 정상,원수들
웬스트민스터 사원 합창단과 왕립소년 합창단
관 앞의 왕족들
장례식 마지막에 전국적으로 2분간 묵념을 알리는 나팔
사원밖에서 묵념하는 시민들
1952년 여왕 즉위(즉위식은 1953년)
이 사원은 여왕의 부친 조지6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엘리자베스2세가 25세에 여왕으로 즉위한
바로 그곳이며, 찰스3세 국왕도 내년(2023년) 봄에 이 사원에서 즉위식을 할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장례식을 마친 후 여왕의 관은 사원을 나와 다시 포차로 옮겨진다.
관위에 있는 꽃과 왕관, 왕권을 상징하는 홀(笏·scepter)과 보주(Orb)
포차로 운구되는 관
포차 관 앞뒤의 수병들
이곳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여왕의 관(棺)은 대포를 싣는 수레인
포차(砲車ㆍgun carriage)에 올린 후, 걸어서 웰링턴 아치까지 운구하게 된다.
이 운구행렬은 영국 해군의 수병 98명이 앞에서 로프를 잡아 포차를 끌고,
뒤에 로프를 잡은 40명의 수병은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행렬이다.
걸음 속도는 장례 행렬용(用)인 1분 당 75걸음으로 약 1시간 반 이상 이어졌다.
이날 찰스 3세 국왕과 앤공주, 그리고 두 왕자는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운구행렬 뒤를 따라 걸었으며, 다른 가족은 차량에 탑승 후 여왕의 마지막 길을 따라 배웅했다.
웰링턴 아치로 가는 운구행렬
영국 현지시간은 12시 25분을 가르키고 있다
포차 운구행렬과 시민들
수군 138명이 이끄는 운구행렬의 이 포차는
1901년 2월 빅토리아 여왕(1837년~1901년)의 장례식 때 처음 쓰인 2.5톤짜리 포차로,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장례 행렬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생전에 군대식(式)을 선호했다고 한다.
원래는 말이 포차를 끌었는데, 빅토리아 여왕의 운구 행렬이 거행된 2월 2일은 매우 추웠다.
관이 안치될 윈저 성까지 포차를 끌 영국 왕립 기마포병대 소속 말들은
앞다리를 드는 등 동요했고, 왕실은 관이 포차에서 떨어질까봐 우려했으며,
와중에 포차와 말을 연결하는 봇줄을 고정하는 지지대(bar)까지 망가졌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 제1해경(海卿ㆍFirst Sea Lord)이 된 왕실의 독일계 친척 마운트배튼 경은
새로 왕이 된 에드워드 7세에게 해군 의장대가 포차를 끌도록 하자고 제의했고
왕은 이를 받아들였으며, 9년 뒤 에드워드 7세가 숨졌을 때,
영국 해군이 왕의 운구 수레를 끄는 것은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웰링턴 아치로 들어서는 운구행렬
웰링턴 아치
웰링턴 아치 문을 들어서는 운구행렬
운구행렬 뒤를 따라 1시긴 반이상 계속 걸어온 74세의 찰스3세 영국왕
웰링턴 아치에서 여왕의 관은 다시 전용 영구차로 옮겨져
약 40㎞ 떨어진 윈저성 내 성조지 교회로 운구된다.
전용 영구차로 운구되는 여왕의 관
운구차 차량행렬
성조지 교회로 가는 운구행렬과 거리의 시민들
운구 전용차량
성조지 교회가 보이는 거리에 운집한 시민들
여왕의 운구행렬 중간 중간 종이 울리고 조포도 쏜다
성조지 교회 앞길의 운구행렬
성조지 교회 앞
조포 발사 장면
성조지 교회 문으로 들어서는 운구행렬
여왕의 애완견들
성조지 교회
이곳 성조지 교회에서 여왕의 통치 종식을 알리는 행사가 치러지며
여왕은 지난해 4월 먼저 세상을 떠나 이곳에 있는 남편 필립공 곁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성조지 교회
교회 안으로 운구되는 여왕의 관
성조지 교회 내부
왕권의 상징물들
여왕의 통치 종식행사 집전
행사 마지막으로 관위에서 여왕의 왕관 등을 모두 내린다.
왕관과 왕권을 상징하는 홀(笏·scepter), 보주(Orb)를 모두 내려 목회자에게 건넨다.
이로써 여왕의 통치행위는 공식적으로 모두 끝나게 된다.
이어서 왕실 살림을 책임지는 체임벌린 경이
지팡이를 부러뜨려 관 위에 올리며 여왕을 위한 복무가 끝났음을 알린다.
통치 종식행사까지 모두 마무리되고 난 후 눈시울이 붉어진 찰스3세 영국왕
이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영원히 잠들어 역사속의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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