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역사속으로

국립대구박물관 조선 현판 전시

by 안천 조각환 2023. 11. 16.

"나무에 새긴 마음 조선 현판"

이것은 국립대구박물관이 조선시대 현판을 전시하면서 내건 첫글이다.

2022년(5.19~8.15)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하였던 특별전

"조선의 이상을 걷다. 궁중 현판" 에 출품되었던 주요 현판을 전시한다.

그리고 영남지역을 중심으로하는 민간의 현판 등도 함께 전시되었다.

 

동경관(東京館)

 

동경관(東京館)은 경주에 있는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다.

원래는 신라왕실에서 사용하던 집기 등을 보관하는 곳인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외국손님이나 중앙관리들이 경주지방을

방문하였을때 머물거나 대기하던 객사로 이용되었다.

정청에는 조선 태조의 위패를 모셨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최석신이 쓴 동경관(東京館)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조선시대 현판(1)

 

위 오른쪽 : 경운궁(慶雲弓,현 덕수궁)의 임시 정전으로 쓰였던 즉조당(卽阼堂)에

걸었던 현판으로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한 궁"이라는 뜻이다.

아래 왼쪽 : 경복궁 흥복전(興福殿) 북쪽에 위치한 영훈당(永薫堂)의 현판으로

"향기가 영원히 이어지는 집"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현판(2)

 

왼쪽 : 종정부(宗正府)는 조선 말기 종실의 업무를 관장하던 기관에

걸었던 현판으로 종친부가 폐지되는 1894년(고종 31) 7월에 설치되었고,

의빈부(儀賓府)와 돈령부(敦寧府)를 흡수하였다.

왼쪽 중간 : 일심재(一心齋)는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景祐宮)내 일심재에

걸었던 현판으로 순조가 1825년(순조 25년)에 쓴 어필이다.

왼쪽 아래 : 현사궁(顯思宮)은 순조(재위 1800~1834)의 생모인

수빈 박씨(1770~1822)의 신주를 창경궁 밖 경우궁에 모시기 전까지

봉안했던 현판으로 순조가 1823년(순조 23)에 쓴 어제어필이다.

 

 

조선시대 현판(3)

 

왼쪽 아래 : 선원록아문(璿源錄衙門)

왕족 예우를 담당한 종친부의 내삼문에 걸었던 현판으로,

왕실족보인 "선원록(璿源錄)을 관리하는 관청" 이라는 뜻이다. 

선원록은 왕실족보로 왕의 친인척에 관한 인적사항을 기록한 것으로,

태종 이전에는 이성계의 이복형제들도 수록되어 있었으나,

태종이 자신의 사후에 일어날지도 모를 왕위계승 분쟁을 우려하여,

1412년 왕실족보를 세가지로 구분 분할하여 작성하도록 하였다.

1)선원록(璿源錄)에는 시조인 이한부터 태종 자신까지의 직계만을 수록하고

2)종친록(宗親錄)에는 왕의 아들중에서도 적자를 대상으로 하여

태조 이성계와 자신의 아들만을, 3)유부록(類附錄)에는 딸과 서얼을 수록하였다.

 

조선시대 현판(4)

 

조선시대 현판(5)

 

왼쪽 맨 아래 : 오헌(吾軒)은 영주 무섬마을에 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박제연(朴齊淵, 1807~1890)이 내건 당호 편액으로,

1875년(고종 12)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7)가 썼다.

 

 

조선시대 현판(6)

 

조선시대 현판(7)

 

조선시대 현판(8)

 

조선시대 현판(9)

 

오른쪽 맨 아래 : 반계정(盤溪亭)은 밀양 단장면에 위치한 정자로

반계 이숙(李潚,1720-1807)이 1775년(영조51)에 건립한 건물이며,

편액은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글씨다.

 

조선시대 현판(10)

 

 

2.조선 궁중 현판

 

조선 궁중현판(1)

 

(위) 대안문(大安門) : 경운궁(현 덕수궁) 정문에 걸었던 현판이다.

1899년 3월 1일부터 1906년 대한문(大韓門)으로 이름이 바뀔때까지

걸려있던 현판으로, 민병석(閔丙奭,1858~1940)의 글씨다.

(우하) 옥당(玉堂, 가로글씨) : 홍문관 현판, 1699년(숙종25) 김진규(1658~1716) 글씨, 

(우상) 영조 어필 현판 : 홍문관 관원에게 학문에 힘쓸것을 당부한 글, 1760년(영조36) 

(좌) 옥당(玉堂,세로글씨) : 홍문관 현판, 1652년(효중3) 이정영(1616~1686) 글씨, 

조선 궁중현판(2)

 

(상 좌) 경이물훼첩(敬而勿毁帖) 중 : 명종 때 창덕궁 서총대에서 행한 문무과 시험을 그린 그림

(상 우) 시판 : 정조대왕이 창덕궁 후원인 춘당대에 올라 문무과 시험을 실시하고 지은 시 

(하 좌) 시판 : 1783년(정조7) 정조대왕이 신하들과 활을 쏘는 연사례를 행한 후 신하와 화답한 시

(하 우) 시판 : 정조대왕이 신하들과 세심대(洗心臺)에 올라 지은 시를 새긴 현판

 

조선 궁중현판(3)

 

(위) 융무루(隆武樓) :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옆 서행각의 누에 걸었던 현판으로

고종 연간 훈련대장인 신관호(申觀浩,1810~1884)의 글씨다. 

(아래) 현판 : 정조가 명한 규장각 신료들의 근무수칙을 새긴 현판으로

"당번으로 있을 때 공무가 아니면 자리를  비우지말라는 내용" 이다.

 

조선 궁중현판(4)

 

(상 좌) 춘방(春坊) : 영조가 세자 교육기관인 세자시강원(춘방)에 내린 현판

(상 우) 계인문 : 근정전 동행각 문에 걸었던 현판으로 "어짊을 여는문" 이라는 뜻

(하 좌) 현판 : 춘방에 내린 윤음을 새긴 현판(영조어제)로 조명정 글씨(1747년)

(하 우)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 : 왕세자가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입학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조선 궁중현판(5)

 

(왼쪽) 한반도 전국지도(我國摠圖) : 본래 3권으로 된 여지도이다

(오른쪽 위) 현판 : 왕세자가 한 달에 두 번, 그동안 배웠던 내용을 

시험하는 회강(會講) 때의 규칙을 새긴 현판 

(오른쪽 중간) 양덕당(養德堂) : 세자시강원인 경희궁 양덕당에 걸었던 현판이다.

 

조선 궁중현판(6)

 

(오른쪽 맨 아래) 현판 : 경연청(經筵廳) 관리 명단을 새긴 현판으로

경연관의 관직, 이름, 생년,자(字),본관을 기록하였다

 

조선 궁중현판(7)

 

(오른쪽 위) 수진지만(守眞志滿) :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1897~1970)이

여섯살 때 쓴 글씨로 "진실함을 지킨다면 의지가 가득해질 것이다"

(오른쪽 아래) 영왕서실(英王書室) : 영친왕이 여덟살(1904년)때 쓴 글씨

 

국립대구박물관 조선 현판 전시장 모습

 

나무에 새긴 마음 조선현판,  국립대구박물관 2023.11.7~2024.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