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 있는 장릉은 조선 제6대 단종(1441~1457)의 능으로 사적 제196호이다.
또한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2009.6.30)되어 있다.
이러한 조선 왕릉은 현재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도성인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4~40킬로미터에 조영되어 있는데, 장릉은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땅에 있다.
영월 장릉(사적 제196호)
단종이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상왕 복위계획이
탄로되어 죽음을 당하자 영월호장 엄흥도가 비밀리에 장례를 치렀다.
선조 때 김성일(金誠一), 정철 등의 장계로 묘역을 수축하고 표석을 세웠다.
장릉 가는길(입구)
1610년(광해군 2) 노릉암이라 했으며 1668년(현종 9) 수호하는 참봉 2명을 두었다.
1681년(숙종 7) 대군으로 추봉되었으며 1698년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했으며, 추봉된 정릉의 예에 따라 난간과 무석을 설하지 않았다.
장릉의 석물은 숙종·영조 연간에 만들어진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능석물로 이루어졌다.
능선 따라 솔숲길따라
장릉 앞
장릉
위에서 본 정자각
중간길로 내려와 홍살문앞을 지난다
장판옥(藏版屋)
장판옥은 1791년(정조 15)에 건립한 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86인, 환자군노위(宦者君奴位) 44인,
여인위(女人位) 6인 등 268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이다.
정단에 배식된 충신위(忠臣位) 32명
안평대군(세종의 셋째 아들), 금성대군(세종의 여섯 째 아들),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 이양 등 6종영과 송현수(단종 비 정수왕후의 아버지),
권자신(단종의 외삼촌), 정종(단종의 매형), 권완(단종 후궁 숙의 권씨의
아버지)등 네 외척, 계유정난으로 죽은 황보인,김종서,정분 삼상신(三相臣),
민신 · 조극관 · 김문기 삼중신(三重臣),성승(성삼문의 아버지)·
박쟁 양운검(兩雲劒), 박중림 (박팽년의 아버지), 성삼문 · 박팽년 ·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사육신, 그리고 하백(하위지의 아들),허후,
허조, 박계우, 순흥부사 이보흠, 정효전, 영월부 호장 엄흥도였다.
배식단(配食壇)
배식단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장판옥에 위패가 봉안된 268인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단종제향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왕릉의 건물들은 규모와 위치등이 대부분 거의 같으나
이 단종의 장릉에는 다른 왕릉에 없는 장판옥과 배식단이 마련되어있다.
수복실(守僕室)
이 건물은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곳으로
1600년(숙종 25) 정자각과 함께 세운것이다.
단종비각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 비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은 1733년(영조 9)에 어명으로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朝鮮國 端宗大王 藏陵) 이라 음각되어있고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되어있다.
정자각(丁字閣)
이 건물은 1699년(숙종 25)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 제향 시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정(丁)자 모양이어서 정자각이라 한다.
정자각 안 제향단
정자각과 뒤 능선위의 장릉
수라간(水刺間)
수라는 원래 몽고어로 탕미를 뜻하며 수라를 짓는 주방을 말한다.
맞은편에서 보는 단종 비각과 수복실 등
영천(靈泉)
이 영천은 1791년(정조 `15)에 어명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하여 한식 때 제정으로 사용하였다.
우물속의 맑은 샘물
느릅나무(수령 400여년인 보후수)
엄홍도 정여각
이 비각은 엄홍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1726년(영조 2)에 세운것이다.
충신 엄홍도는 영월 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 유배되어 있다가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1833년(순조 33)에
공조판서로 추증되고, 1876년(고종 13)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재실
단종 역사관
역사관 내부의 전시물 들(단종의 탄생)
박충원 낙촌비각(朴忠元 駱村碑閣)
이 비각은 박충원의 충신됨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73년 세웠다.
충신 박충원은 1541년(중종 36) 영월군수로 부임한 후 그동안
방치되었던 노산(단종)의 묘를 현몽에 의해 찾아 봉축을 하고, 전물을 갖추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으며 사후에 문경공(文景公)인 시호를 받았다.
장릉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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