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鄭炳昱) 형(兄) 앞에, 윤동주(尹東株) 정(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거러(걸어) 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윤동주 시인 육필 원고
동주의 노래소리는 이 땅의 방방곡곡에 메아리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으니 동주는 죽지 않았다고 할것이다. ~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 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정병욱 교수의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중에서" -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
정병욱 가옥은 1925년 망덕포구에 건립된 점포형 주택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한 구조의 건축물로써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19편의 육필 원고가 마루밑의 쌀독에 보존되었던 곳이다.
정병욱 가옥 마루밑 쌀독(재현)
이 가옥은 정병욱 교수의 부친인 남파 정남섭(鄭南燮) 선생이
거제와 하동 등지에서 근무하던 교직을 사직하고,
고향인 남해군을 떠나 이곳 광양 망덕포구에서 양조사업을 하게된다.
광복후 미군정시기에는 바로 이곳 진월면의 면장을 역임하였다.
윤동주 시인(왼쪽) 정병욱 교수(오른쪽)
윤동주(尹東株,1917~1945) 시인과 정병욱(鄭炳昱,1922~1982) 교수의 만남은
1940년 4월, 정병욱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고, 1941년 하숙을 함께하며
정병욱 교수가 나이는 5살 아래이고 학교도 2년 후배이지만
"마음을 주고받는 글벗"으로 시작(詩作)에 조언을 주기도 하며 시작된다.
정병욱 가옥의 마루와 마루밑(오른쪽 아래)
이 때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서시' 등 다수가 씌어지며
이런 우정으로 윤동주는 졸업 즈음 자선 시집을 정병욱에게 증정한다.
이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윤동주는 독립운동 혐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2월 16일 29세의 젊은 나이로 순절하게 된다.
정병욱 가옥의 복원 하기전 옛 건물
연희전문을 졸업한 정병욱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1월 일본군으로 끌려가게 되자 광양 망덕포구에 있던
어머니에게 윤동주의 시집 보존을 부탁하며, 동주나 내가 둘다 죽어
돌아오지 못하고 독립이 되거든 이것을 연희전문학교에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 달라고 유언처럼 남기고 떠났었다.
정병욱 가옥
정병욱은 다행히 목숨을 보전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마루장 밑 쌀단지에 묻어 두었던
현재 유일본이 된 시고(자선 시집)를 내어 주면서 기뻐 하셨다고 한다.
1948년 연희전문 동기 강처중과 함께 유고 31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라는 윤동주 시집을 발간하므로써
어둠에 묻혀 없어질뻔했던 윤동주의 시혼이 세상에 빛을 보게한다.
이 후 정병욱은 서울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
정병욱 가옥 바로 앞의 배알도
흰 그림자 ~ 윤동주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곳에
괴로워 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를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어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왼쪽이 정병욱 가옥이 있는 망덕포구이며 멀리는 섬진강 하구이다
배알도 섬정원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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