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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광주.전라권

정암 조광조의 유배지와 능주객관

by 안천 조각환 2024. 9. 10.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을 도와 유교 정치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급진적인

개혁 정치를 위해 도교 사당인 소격서의 철폐, 향약 실시,

토비와 노비 하사의 특권을 인정받았던 훈구 공신의 명부인

훈적삭제 등 왕도정치의 이상 세계 구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폈다.

 

정암 조광조선생 유배지

 

그러나 훈구파가 일으킨 기묘사화에 의해  결국 역성혁명을

꾀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곳 능주면 남정리로 유배되었다가

1개월만인 1519년 12월 20일 사약을 받아 절명시(絶命詩)가 된

짤막한 시한수를 남기고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조광조 유배지 입구

 

절명시(絶命詩)

 

                                    조광조(趙光祖,1482~1519)

 

임금을 어버이 같이 사랑하고 / 애군여애부(愛君如愛父)

나라를 걱정하거를 내 집 걱정하듯 했도다. / 우국여우가(憂國如憂家)

밝고 밝은 해 빛이 세상을 굽어보니 / 백일임하토(白日臨下土)

거짓없는 내 마음을 훤하게 비춰주리 / 소소조단애(昭昭照丹哀)

 

애우당 측면

 

정암 조광조의 시호는 문정공(文正公)이며

우리나라 18현(賢)으로 성균관을 비롯한 향교에서 배향하고 있다.

 

애우당(愛憂堂)

 

유배지 건물(적려)과 영정각

 

영정각

 

조광조 영정

 

유배지 건물(적려,謫廬)

 

조광조선생 적려유허추모비와 비각

 

정암 조광조선생 적려유허 추모비(靜菴 趙光祖先生 謫廬遺墟 追慕碑, 앞.뒤면)

 

담장밖에서 보는 유배지

 

인근의 능주 동헌

 

능주(綾州)는 엣 마한시대의 주요중심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백제시대에는 이릉부리(爾陵夫里) 또는 죽수부리, 연주부리, 인부리였다.

1632년(인조 10)에는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의 고향이라 하여

능주목(綾州牧)이 되었으며, 1895년(고종32) 나주부 능주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순군에 통합되어 현재의 능주면이 되었다.

 

능주 객사

 

오른쪽 회화나무(수고 12m, 흉고 직경 2m, 흉고 둘레 6.3m)

 

봉서루(鳳棲樓)

 

봉서루는 능주관아의 누각으로 내빈접대, 연회, 휴식공간 등으로 쓰이던 공간이다

 

봉서루 누각에서 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