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손자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로, 일반적으로 안동 김씨로 칭하는데,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후 안동 김씨)와의 구별을 위해
구 안동 김씨(선 안동 김씨, 또는 상락 김씨)라고도 한다.
구(상락) 안동김씨 음수재(飮水齋) 전경
고려 후기 몽골과의 전쟁과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 맹활약한
명장인 문하시중.첨의중찬을 지낸 김방경(金方慶)이 중시조이다.
선(구) 안동 김씨는 조선 중기 이후 몰락에 가까운 위기에 처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김자점(金自點)은 1623년 3월(광해군 15) 이괄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 6품직에 오르고 후에 승정원동부승지가 된다.
음수재(飮水齋) 정문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도원수가 되어 토산 전투에서 대패하자
삭탈관직 당하고 호란이 끝난 뒤 조야의 처벌 요구로 유배당한다.
1639년(인조 17년) 사면되고 1640년(인조 18년) 복직되지만 효종 때
산당 세력에게 탄핵당해 1650년 파직되고 강원도 홍천으로 유배당한다.
음수재(飮水齋)
이후 김자점은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당하지만
그 후에도 손자며느리인 효명옹주 저주사건, 아들과 손자들의
군사반란이 발각되면서 역모죄로 사형당하고 가문은 몰락한다.
주요 인물로는 좌승지 김구만(龜萬), 도승지, 병조참판을 역임한
김광국(光國)을 비롯한 삼도수군통제사가 총 9명이 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선생 등이 있다.
왼쪽 : 상락군 개국공 능동 사적비(上洛郡 開國公 陵洞 事蹟碑)
오른쪽 위 : 충열공 김방경 탄신 800주년 기념비
오른쪽 아래 : 단모부 답부(旦暮賦 答賦) 비
단모부 답부(旦暮賦 答賦)란 상락공 김방경이 1296년 이승휴로부터
단모부를 받고, 이승휴의 삶과 행적에 대한 답부를 보낸 내용이다.
옛 재사(재실) 건물
옛 재실
음수재 측면
음수재 뒤의 사당
안동김씨 중시조 상락공 김방경의 묘
좌 : 새로 세운 묘비, 오른쪽 : 옛 묘비
고려 추충정난정원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 첨의중찬 세자사 상락군
(高麗 推忠靖難定遠功臣 壁上三韓 三重大匡 僉議中贊 世子師 上洛郡)
개국공 익충열 김방경 지묘(開國公 謚忠烈 金方慶 之墓)
김방경 묘역 석물
김방경 묘 바로 위에 있는 묘는
광산김씨 예안 입향조 참판공 김효로(金孝盧,1454~1534) 부부의 묘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 의금부사 성균생원 김공지묘
정부인 양성이씨 지묘
1534년 안동 예안에 살던 광산김씨인 김효로(金孝盧,1454~1534)가
죽게되자 자식들이 선친의 묘를 조성하던 중 땅속에서 묘지석이 발견되었다.
김효로의 집안에서는 급히 구 안동김씨 종중에 알리고 원만히 합의하에
김효로의 묘는 자리를 옮겨 그 윗자리에 다시 땅을 파고 묘를 썼다.
위의 쌍분은 김효로 부부의 묘, 아래는 김방경의 묘
이때 발견된 묘지석은 구 안동김씨 상락공 김방경의 묘지석 이었으며
이 터가 실전되었던 김방경의 묘역임이 우연히 확인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위에는 광산김씨 묘가, 아래에는 구 안동김씨 묘가 있게 되었다.
바로 앞이 광산김씨 김효로의 묘, 아래에는 상락공 김방경의 묘
묘에서 내려오며 뒤에서 보는 음수재 전경
상락공 김방경과 참판공 김효로 묘소 오르는 계단길
'문화유산산책 > 한국 성씨의 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의 묘 (2) | 2024.10.11 |
---|---|
풍산류씨 금계재사(金溪齋舍) (0) | 2024.09.23 |
안동 김씨 시조 김선평의 태장재사 (0) | 2024.09.20 |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능동재사(陵洞齋舍) (0) | 2024.09.20 |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城谷齋舍) (0) | 2024.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