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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한국 성씨의 뿌리

풍산류씨 금계재사(金溪齋舍)

by 안천 조각환 2024. 9. 23.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安東 豊山柳氏 金溪齋舍)

 풍산부원군 류중영(1515∼1573)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서후면 성곡리에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88호(2016.7.1 지정)이다.

 

금계재사 영모루(永慕樓)

 

류중영(柳仲郢,1515~1573)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이다.

영남지방의 사족으로 풍산 류씨 가문의 중흥을 일군 인물이자

류운룡과 명재상인 영의정 류성룡 형제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안동 하회마을에 입향한 류종혜(柳從惠)의 5대손이다.

 

영모루 정문

 

류중영은 1540년 식년시문과에 급제하여 의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승지, 예조참의 등을 지냈다.  사후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풍산 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보수공사 중인 숭실재

 

금계재사는 몸채인 숭실재, 영모루, 부속건물이 연이어져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건축양식이 옛 방식을 지니고 있다.

1987년 보수 때 영조 12년(1736)에 공사의 시작과 끝,

참여자 이름 등을 기록한 글인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안에서 보는 영모루

 

상량문에 의하면 본래 "능효사"의 한 건물인데 풍산 류씨가

16세기 중반 입암 류중영의 묘소를 수호하고 묘제를 지내기 위한

건물로 사들여 사용하다가,  18세기 초부터 누각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지어 튼 口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영모루 누대(공사중 사용하는 집기들)

 

전면에 두 개의 누(영모루와 소루)를 둔 흔치 않은 큰 규모의 재사로

누·재사 건축의 유형과 변천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료일 뿐

아니라 안동지역을 대표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사찰 건물이었던 숭실재의 주심포계 공포와 고식의

영쌍창 및 벽체구성 등은 양식편년의 귀한 자료이다.

 

영모루(永慕樓) 편액

 

위는 현재 걸려있는 편액(모조), 아래는 옛 편액(위탁 보관중인 듯) 

 

영모루 누대

 

기둥,중방,석가래 등 목재규모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영모루 누대에서 보는 공사중인 숭실재

 

공사중인 영모루와 숭실재 등

 

숭실재 측면(전면 보수 중)

 

동재

 

대문간채와 출입문, 그 오른쪽이 동부속채

 

왼쪽이 숭실재와 동부속채, 오른쪽이 영모루와 소루, 바로 보이는 동재

 

대문간채 바낕쪽 

 

영모루(소루)와 대문간재 쪽

 

공사중인 금계재사 앞(숭실재 보수공사는 2022.7.5~2025.2.9 이다)

 

금계재사 입구 거수목

 

류중영선생 묘소 가는길

 

입암 류중영선생 묘

 

입암 류중영선생 묘소는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묘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향만 조금 달리하고 있다.

풍산류씨 금계재사는 안동권씨 능동재사 바로 위쪽에 있다.

 

 

추석을 지난지 며칠되었으나 아직 벌초를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묘제를 앞두고 벌초를 하려는 듯하다.

 

류중영선생 묘비 

 

왼쪽 : 입암 류중영선생 부부 묘비

오른쪽 석비는 묘앞 좌우에 있으며, 내용은 육안으로 판독하기 어렵다

 

문인석 좌.우

 

금계재사 입구의 입암(立巖) 류중영선생 시비

 

청산(靑山)의 한 조각 꿈이 오랫동안 산 기슭에 있도다

그 앞에 큰 소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면 스스로 소리내도다.

매양 홀로 올때마다 슬픔을 머금고 옛일 추억하나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니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

이끼를 깎고 큰 글자새겨 이름하여 풍송석(風松石)이라 하다.

반드시 뒤에 올 사람 있을 것이니 나를 위하여 탄식 하리라.

 

1573년(선조 6) ~ 류중영(柳仲郢,1515~1573) 선생이 졸(卒) 하던해 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