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물안개가 산골짜기로 피어오르며 운치를 더해주는
11월 초하룻날, 단풍이 곱게물든 구담봉과 옥순봉을 찾는다.
남부지방은 비가 내리고 중부지방은 흐리다고 하여 찾았는데
유람선에 오르려니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제법 세차게 뿌린다.
장회나루 선착장앞 호수 풍경
잔뜩 흐린 날씨지만 신비감을 더해주는 운무
선창가에 뿌리는 빗방울
유람선은 선착장을 떠나 호수위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퇴계 이황선생이 1548년 단양군수 시절, 관기이던 18살 두향과 함께
시화(詩畵)와 음률(音律)을 논하기도 하고, 두향이 태어난 옥순봉과
구담봉, 사인암 등 단양팔경을 둘러보기도 하면서 꿈결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는데, 9개월만에 풍기군수로 발령나면서 이별하게된다.
장회나루 맞은편 두향의 묘
이후 두향은 관기의 신분에서 물러나 강선대(降仙臺)가 내려다
보이는 기슭에 작은 초막을 마련한 뒤 이황을 생각하며 홀로 살았다.
이후 1570년 퇴계선생은 두향이 보내와서 애지중지 키우고 있던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앉은 자세로 임종했다.
두향은 초막에서 21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어느날, 이황의 부음을 듣게된다.
그리고 강선대 위 초막에서 빈소를 차리고 3년상을 치렀으며, 상이 끝나던 날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언에 따라 강선대 아래에 있던 무덤은 1984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물에 잠기게 되자, 인근 마을 유지들이 의견을 모아 원래 무덤에서
200m쯤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된것이다.
홍수를 가늠하는 노란색 만수 표시
퇴계와 두향이 이별을 앞둔 마지막날 밤,
퇴계는 두향의 치마폭에 시를 써준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死別己呑聲)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生別常惻惻)
"내일이면 떠난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이에 두향은 말 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제
어느듯 술 다하고 님 마져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 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두향이 세상을 떠난 후 200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조선시대의
시인 이광려(1720~1783)가 두향의 무덤을 찾아 시를 읊었다.
외로운 무덤 길가에 있고(孤墳臨官道)
버려진 모래밭엔 붉은 꽃 피어있네(頹沙暎紅)
두향의 이름 잊혀질 때(杜香名盡時)
강선대 바위도 없어지겠지(仙臺石應落)
구담봉(龜潭峰)
구담봉은 남한강의 풍수설에서 거북의 이미지가 강조된 경승이다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리던 토정 이지함의 형이었던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했으며,
그는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덩굴을 구담봉의
양쪽 봉우리에 매고 비학(飛鶴)을 타고 왕래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퇴계 이황은 구담봉의 장관을 보고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으며, 또 구담의 물이 너무 맑아
“봉우리들이 그림과도 같은데 협문이 마주 보며 열려 있고,
물은 그곳에 쌓였는데 깊고 넓은 것이 몹시 푸르러 마치
새로 산 거울이 하늘에서 비추는 것과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구담봉 봉우리
이이, 김만중, 김정희 등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진경산수로 유명한 정선, 이방운 등이 그린 구담봉 산수화도 남아 있다.
구담봉 정상의 거북을 닮은 바위
권섭(權燮)이 구담봉의 아름다움에 관해 지은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
구곡(九曲)은 어드메요 일각(一閣)이 귀 뉘러니
조대단필(釣臺丹筆)이 고금(古今)의 풍치(風致)로다
저기 저 별유동천(別有洞天)이 천만세(千萬世)인가 하노라
금수산(錦繡山)
금수산은 높이 1,016m로 국망봉·도솔봉과 함께 소백산맥의
기저를 이루며 단대천(丹垈川)이 발원하여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약 5백년 전까지는 백암산(白巖山)이라 불렸는데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그 경치가 비단에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옥순봉(玉荀峰) ~ 명승 제48호
퇴계 이황의 단양산수기(丹陽山水記)에서
구담봉에서 여울을 따라 남쪽 언덕으로 가다 보면 절벽 아래에 이른다.
그 위에 여러 봉우리가 깎은 듯 서 있는데 천 길이나 되는 죽순과도 같은
바위가 높이 솟아 하늘을 버티고 있다. 그 빛은 푸르고 혹은 희며
등나무 같은 고목이 아득하게 침침하여 우러러볼 수는 있어도 만질 수는 없다.
이 바위를 옥순봉이라 한 것은 그 모양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옥순봉은 수많은 봉우리가 온전히
돌로 되어 우뚝 솟아 있어서 마치 거인이 손을 잡고 있는 것 같다”며
이곳의 뛰어난 경치를 기술하고 있다.
정조로부터 연풍현감에 제수되었던 단원 김홍도는
단양의 아름다운 산수를 그리기 위해 옥순봉을 수없이 바라보며
실제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 실경산수의 화법으로 옥순봉을 그려
1796년에 제작된 병진년화첩에 "옥순봉도"를 남긴다.
옥순봉은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비경을 자랑한다.
구담봉 방향으로 올라가면 병풍을 접은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반대로 하류로 내려오면 병풍을 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 명종조의 황준량은 일엽편주가 옥순봉을 지나는 모습을 보고
“조각배에 탄 사람이 병풍 속으로 들어간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김일손(金馹孫)도 이곳을 둘러보고 협곡의 절경을 극찬하였다
옥순봉 출렁다리
청풍호 표지판
충주댐은 충주에서는 충주호요, 제천 청풍에서는 청풍호요,
단양에서는 단양호로 불러 지역마다 각각 자기 지방이름으로 부른다.
유람선은 옥순대교를 조금지나 다시 뱃머리를 돌린다
구담봉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보는 옥순봉
그 옛날 일엽편주가 지나가듯 모터보트 한대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죽순을 닮았다는 옥순봉 바위
대나무의 죽순이 땅에서 힘차게 올라온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옥순봉,
마디가 있는 바위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옥순대교를 뒤로하고 상류로
비단실로 수를 놓은듯이 아름다운 금수산
신선이 나올듯한 비경들
구담봉도 뒤로하고
유람선 탑승을 마치고 나온 선착장 입구의 구절초
다시 땅위에서 보는 옥순봉 출렁다리
위에서 보는 옥순대교
조금전 유람선을 타고 보았던 호수
옥순봉 출렁다리
옥순봉 출렁다리를 건너와서
호수의 절경
옥순대교가 보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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