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악산 남쪽기슭에 자리한 직지사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신라 눌지왕(訥祗王) 2년(418) 아도 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어, 645년 자장율사가
중창하였으니 1600년이 훌쩍 넘은 역사적 고찰이다.
조선시대에 사명대사가 출가하여 득도한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다.
산사의 단풍 숲
선경에 온듯한 고운 단풍들이, 500여 년전인 어느 늦가을날
매계 조위 선생과 김맹성(1437~1487, 자는 선원) 그리고
조위의 동생인 적암 조신(자는 숙도) 이렇게 셋이서 직지사에 들러
주안상을 옆에 놓고 낮부터 밤 늦게까지 두견주를 돌려가며
시를 한 수씩 주고 받는, 그때의 풍류속으로 젖어 들어본다.
안양루
때는 김 선원이 고령에 유배중이던 1478~1482년 중 어느날
김선원(맹성), 숙도와 직지사에 가서 함께 읊다
/ 與金善源(孟性).叔度往直指寺 聯句
매계(태허) 조위(梅溪 曺偉. 1454~1503)
지지당(선원) 김맹성(善源 金孟性, 1437~1487)
적암(숙도) 조신(適庵 曺伸,1454~1529)
고향땅에도 가을이 저무는데
절간을 객들과 함께 찾았다(태허)
읊조림 속에 맑은 냇물은 콸콸 흐르고
바라보니 산안개는 더욱 짙어만 간다.(선원)
해가 비치자 새와 물고기 그림자가 어지럽고
바람결에 꼴 베는 목동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숙도)
안개 짙어지자 마을은 쉬이 어두워지고
잎 떨어진 나무들은 그늘도 없다.(태허)
동서쪽 고개 마루는 풀들도 시들었건만
높고 낮은 위아래로 숲이 무성하다.(선원)
서리 무서워 늦은 수확을 재촉하고
세상살이는 홑옷을 압박한다.(숙도)
황악산 계곡
개울 건너에선 개짓는 소리가 들리고
마을마다 다듬질 소리가 요란하다.(선원)
절름발이 나귀타고 푸른 숲을 지나고
단장을 집고 산꼭대기에 오른다.(태허)
저녁노을에 구름이 떠가는 것을 감탄하며
나그네는 속세의 생각을 떨쳤다.(숙도)
종소리가 들리니 절간은 가까이 있고
외상술은 있는데, 한스럽게도 거문고가 없구나.(태허)
굽어보니 시냇가엔 높다란 망루가 서 있어
사람을 맞아들인 늙은 스님은 좋아한다.(선원)
맑은 놀이가 이를 더럽히지 않으니
이곳의 즐거움은 그만두기가 어렵구나.(숙도)
달밤에 스님들의 염불소리 들리고
솔바람에 학 울음소리가 실려 온다.(태허)
주고받는 고상한 애기소리는 눈가루가 날리는 듯
좋은 시구는 금가루를 뿌린 듯(선원)
황악루(黃嶽樓)
대웅전의 붉은 편액은 반짝이고
금향로엔 푸른 연기가 피어오른다.(태허)
산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인연 따라 얽기여 지금에야 이르렀다.(숙도)
의지하며 함께 세속 먼지를 털어내고
큰 소리로 떠들며 속마음을 이야기 한다.(선원)
오밤중을 알리는 종소리도 이미 지나
촛불 들고 있는 노복도 견디기 어렵구나.(숙도)
황악루 측면
갈증을 풀기위해 배를 꺼내 한입물고
두견주를 마시니 근심은 사라진다.(선원)
마땅히 알리라. 정이란 끈끈하게 이어 진다는 것을
또한 한탄하노라.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을(숙도)
거수목 아래 황악루
산수는 즐길 만 하지만
벼슬살이는 흠모할게 못된다.(선원)
다른 땐 나누어주길 좋아 했으나
다시 또 마음먹고 오른다.(숙도)
*조위(曺偉,1454~150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김맹성(金孟性.1437~148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선원(善原), 호는 지지당(止止堂)
* 조신(曺伸,1454~1529), 조선 전기의 역관, 조위의 동생(弟),
자는 숙분(叔奮) 또는 숙도(叔度), 호는 적암(適庵)
비로전
약사전
직지사에서 잠을 자며 / 숙직지사(宿直指寺)
매계 조위 (梅溪 曺偉, 1454~1503)
젊은 시절 금대에서 사관노릇 했었는데
오늘밤은 절간에서 갈자리를 빌려서 잠을 잔다.
등불 걸어두고 조용히 능엄경을 읽으며
바람 부는 창가에서 싸늘한 눈의 한기를 느낀다.
직지사에서 잠을 자며 김선원과 함께 읊다
/ 숙직지사여김선원동부(宿直指寺與金善源同賦)
매계 조위(梅溪 曺偉, 1454~1503)
동화문에서의 십년 세월 길을 헤메다가
오늘 선방에서 각건(角巾)이 비스듬 하여졌다
서리 내린 뒤라 기장은 모두 잎이 지고
달빛 아래 원앙와는 점점 번득인다.
명부전
향내도 가늘어 지면서 추위를 더욱 재촉하고
불탑의 등불도 가물거리며 부드럽게 참을 말한다.
귀에 가득히 들려오는 돌샘물 소리에 잠 못 이루는데
내일 아침이면 다시 홍진을 밟음을 어이하랴.
*동화문(東華門) : 백관이 입조할 때 출입하는 문으로 벼슬살이를 말함
홍진(紅塵) : 붉은 티끌 즉 산문 밖 속세를 말함
산사의 숲
파초잎이 무성한 응진전
성주를 지나며 지지당을 회고하다
/ 과성주유회지지당(過星州有懷止止堂)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말 위에서 갑자기 망연자실 넋이 나가니
이 같은 생활에 어느 곳에서 함께 문장을 논하랴.
난초와 혜초가 다 시들었으니 봄이 와도 소용이 없고
봉새와 난새도 다 날아갔는데 햇볕만 더욱 따갑구나.
관음전
단양 장우의 집은 잡초만 무성하고
오하 백란의 무덤은 처량하구나.
바람속에 부질없이 눈물을 뿌리나
한 가지 제수로도 그대에게 제를 올리지 못하네.
지지당(止止堂, 김맹성)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자질이 총명하여 스승의 사랑을 받았다.
147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의 헌납과 정언을 지냈으며
1478년 도승지 임사홍과 함께 현석규를 탄핵한 죄로 고령에 유배되었다가
1482년에 풀려난 후, 뒤에 이조정랑·수찬 등을 지낸 뒤 사직하였다.
이 시는 조위선생이 지지당 김맹성이 잠들어 있는
성주를 지나면서 갑자기 지난 날들의 감회에 젖어 읊은 시로
지지당이 사망한 1487년 이후에 묘소를 지나면서 지었다.
사명각(四溟閣)
대웅전 앞뜰
성좌각
심검당
대웅전
대웅전 동.서탑
만세루
범종각
동종과 방티(방퉁이 = 쌀 씻는 그릇)
황토 명상길
황악산의 가을
설법전과 강당
이렇게 황악산의 가을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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