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임란북천전적지(壬亂北川戰跡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과 향군이 왜군의 선봉 주력부대와
최초로 싸운 곳으로 900여명이 순국한 호국의 성지이다.
상주 임진왜란 북천 전적지
1592년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일을 순찰사로 임명하여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과 상주 판관 권길, 박걸이 밤새워 소집한
장정 800여명 등 900여명이 상주 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고시니가
이끄는 왜병 17,000여명과 분전하여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임란북천전적지 출입문
그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부터 사적 정화작업을 실시하여
상주 중앙공원에 있던 옛 상주관아 부속 건물인 상산관, 태평루,
침천정 등과 이를 기록한 석비(사의비)들도 이곳으로 옮기고,
충렬사(사당)를 건립하여 그 당시 순국한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과 무명 열사의 위패를 배향 하였다.
상산관(商山館)
상산관(商山館)은 조정의 사신들이 묵어가던 객사 였다.
상산관 마루
침천정(枕泉亭)
침천정은 1577년(선조 10년)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여 연당이라 이름 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청의 정자였다.
침천정 마루와 천정에 올린 용
마루에 걸린 침천정기, 중수기, 시판 편액 등
침천정 옆에서
임란 북천 전적비
충렬사(사당)
충렬사 계단 아래의 의사 순국비
왼쪽부터 윤섬,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의사(義士) 순국비
경절문(景節門)
충렬사 경내
충렬사 계단입구의 비각
왼쪽은 충신의사단비, 오른쪽은 판관 권길 사의비(死義碑)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이곳 북천전투에서 순국한 3충신인
종사관 윤신, 박호, 이경류와 2의사인 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복제본)와 상주목 판관으로
봉직 중 순국한 권길의 충절을 새겨둔 "판관 권길 사의비(死義碑)"이다.
충의문(忠義門)
삼문삼도(三門三道)
궁궐, 사당, 서원, 향교 등에서 볼수있는 출입구와 사당에 이르는
길은 각각 세개의 문과 길로 되어 있는데 이를 삼문삼도라 하며,
가운데 계단과 문은 사당에 모셔진 신(神)이 다니는 계단과 문이다.
가운데 문은 제례 봉행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열리며,
참배객은 들어갈 때는 오른쪽, 나올 때는 왼쪽을 이용한다.
충렬사(忠烈祠)
충렬사내의 위패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박호, 김준신,김일, 박걸과 무명 열사 위패
매년 양력 6월 4일에 제향 행사를 거행한다.
충렬사 앞에서 보는 경내
임란북천전적비 뒤에서
왼쪽부터 충렬사유허비, 권길, 김종무, 박걸 순국비, 박걸 순절단 비
상산관 뒤를 돌아 태평루쪽으로
태평루(太平樓)
태평루는 상주 동헌에 있던 문루를 이건하였다.
문루 위에서 시내쪽으로
반대편
대들보의 상량문
단기 4324년 10월 20일(서기 1991년), 이건당시 상량문을 새로 쓴듯
태평루 옆 석비 들
아래에서 보는 태평루
태평루 측면
유명 조선국 사호 의사 김준신 사의비 ~ 관리사무소 입구
(有明 朝鮮國 賜號 義士 金俊臣 死義碑)
임란북천전적비 관리사무소
'그곳에 가고싶다 > 대구.경북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년이 밝아오고 있다 (3) | 2024.12.13 |
---|---|
"향의 문화사" 특별전 대구박물관에서 (0) | 2024.12.11 |
봉서리 병암정 소나무와 마의태자 석(席) (0) | 2024.12.07 |
박정희 대통령 동상 경북도청 앞 천년숲에 서다 (0) | 2024.12.07 |
앞산 등산로계곡의 늦가을 풍경 (0) | 2024.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