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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창녕 부용정(芙蓉亭)

by 안천 조각환 2025. 3. 28.

창녕 부용정(芙蓉亭)은 창녕군 성산면 달창저수지 상류

자리하고 있으며, 1580년(선조 13) 창녕 현감이었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지방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창녕 부용정(芙蓉亭)

 

정구선생은 성리학뿐만 아니라 의학, 역사, 천문, 풍수 등

다양한 분야에 박학하였으며,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부용정 정면 중앙에는 부용정(芙蓉亭), 오른쪽에는 광풍헌(光風軒)

왼쪽에는 풍욕루(風浴樓)와 재월료(霽月寮) 편액이 걸려있다.

 

한강 정구선생은 훗날 제자인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으며, 1727년(영조 3)에 불에 타 없어졌다가 

53년 후인 1780년(정조 4)에 다시 지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어 1955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부용정 대청마루

 

성안의(成安義, 1561~1629)는 선조 24년(159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서

의병 1,000여 명을 거병하여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활약했다.

 

마루 측면

 

그 후 예조좌랑, 사헌부지평, 성균관사예, 영남조도사를 거쳐

영해부사, 남원부사를 역임한 후 광주목사(光州牧使)가 되었으나

소송처리를 소홀히 헀다는 사유로 파직되어 13년간 한거하다가

인조반정으로 성균관사성, 상의원, 봉상시의 정(正)이 되었다.

 

성안의의 경현사

 

1624년(인조 2)에 제주목사, 1628년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모두 사양하고 은거하다가 다음해에 사망하였다.
사후에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으로 추증(追贈)되었고,

창녕의 연암서원(燕巖書院)과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 되었다.

 

경현사 계단

 

경현사(景賢祠)에는 부용당 성안의(成安義)의 초상화가 봉안되어있다. 

 

경현사(景賢祠, 사당)

 

문이 잠겨있어 초상화를 직접 볼 수는 없으나

안내판에 의하면 문신으로는 드물게 전신입상으로 그려져 있으며

정면관이 아닌 좌안상으로 발까지 모두 화폭에 담아냈다.

또한 관모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으로 배경없이 그려져 있으며

제작연대는 19세기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부용당 성선생 교사비(芙蓉堂 成先生 敎思碑)

 

부용당앞의 연못

 

은행나무(수령 200~300년 정도)

 

부용정과 앞의 은행나무

 

연못 측면

 

부용정과 사당, 앞의 은행나무

 

부용정앞 백목련

 

담장 밖에서 보는 경현사와 부용정

 

성안의선생 임란창의비(成安義先生 壬亂倡義碑)

 

담장밖의 헌성비와 부용정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