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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함양.거창 안의삼동의 농월정 등 11정자,1대

by 안천 조각환 2015. 11. 11.

남덕유산 동남쪽자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백운산, 금원산,

기백산,황석산등 여러 물줄기와 만나면서 함양 안의계곡과 용추계곡,

그리고 거창 월성계곡과 같은 풍광이 빼어난 산수를 만드는데

이를 옛부터 화림동,심진동,원학동(猿鶴洞)의 안의삼동이라해서 

조선의 선비들이 산수유람하며 자주 즐겨찾던곳이다.

산수가 빼어난 곳곳마다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기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시를 남기기도 한곳으로, 그 발자취를 하나하나 드듬어 보고자 한다.

 

화림동 계곡 ~ 4정자

1.농월정(弄月亭)

 

농월정은 안의면 안의계곡 초입에 있는 정자로써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팔작지붕 2층 누각형태이다.

이 정자는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바 있는

지족당 박명부(1571~1639)가 병자호란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은 건물이다.

시냇가에 달이 비친못을 월연이라 하고, 정자이름을 농월정이라 하였는데 

몇 차례 중건을 거쳐 1899년 완성됐으며,

지난 2003년 5월 화재로 완전 소실된후 12년이 지난 2015.9월

원래 모습대로 복원준공하고 2017년 단청을 하였다.

 

 

"농월정"이라는 이름은 암흑세상을 비추는 명월을 벗하며

대의를 지키고자 한 고결한 정신을 드러낸 것이라 한다.

 

아마도 정자가 반영된 이곳을 "월연(月淵)"이라 하지 않았을까?

 

정자 안에서 바라보면 한폭의 그림같은 산수진경

 

개축후 단청을 한 농월정(2017.11.14)

 

2.동호정

 

동호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제38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건물은 임진왜란당시 선조임금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세운

동호 장만리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으로

그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그의 9대손 가선대부오위장을 지낸

장재헌등이 중심이 되어 1890년 건립한 정자이다.

 

 

 

 

 

 

3.거연정(居然亭, 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

 

거연정(居然亭)은 조선중기 화림재 전시서(全時敍)가 이 곳에

은거하여 지내면서 억새로 만든 정자를 그의 7대손인 전재학 등이

1872년 재건한 것으로,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12수 중에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딴 것으로

물 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봄날의 거연정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이 주변의

기묘한 모양의 화강암 반석, 흐르는 계곡 물 등과 조화를 이루는 등

동천경관을 대표할 만한 명승지이다.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영남의 명승 중에서

안의삼동(安義三洞)이 가장 빼어나고, 그 중에서도 화림동(花林洞)이

최고이고, 화림동의 명승 중에서 거연정(居然亭)이 단연 으뜸”이라고

거연정 기문에 적고 있다.

 

 

단풍이 아름다운 거연정

 

거연정앞 계곡

 

 4.군자정(君子亭)

 

군자정은 거연정에서 하류로 150m 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이 정자는 정선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공의 5대손인 전세설,

전세택이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러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으로 칭하였다.

 

 

군자정이 있는 서하면 봉전마을은 일두 정여창선생의

처가가 있는 마을로 일두선생이 들러 유할 때는

군자정이 있는 영귀대에서 유영하였다고 전한다.

 

군자정옆 바위

 

 

심진동(용추계곡) ~ 1정자, 1폭포

5.심원정(尋源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

 

심원정은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용추계곡 들머리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 유학자이며 1558년 거제현령을 지낸 돈암 정지영(鄭芝榮)이

임천으로 돌아와 노닐던 곳에 후손들이 고종 3년 (1806년)에 세운 정자인데

그 후 풍수해로 손상된것을 1845년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짓고,

다시 1948년에 중수되었다

 

 

 

정자앞의 용추계곡

용추계곡과 용추폭포

 

 

단풍이 살짝 지고난 가을의 용추폭포(2017.11.14)

 

다시 찾은 용추폭포(2018.7.10)

 

 

 

원학동(猿鶴洞,월성계곡) ~ 6정자, 1대

6.요수정(樂水亭,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 

 

요수정은 월성계곡 하류쪽인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정자로
조선 중기 유학자 요수 신권(樂水 愼權, 1501~1573)이

1542년 구연재(龜淵齋, 현 구연서원)와 척수대(滌愁臺) 사이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뒤 다시 수파를 만나

1805년에 후손들이 수승대 맞은편 지금의 자리로 옮겼지었다.

 

 

요수정이 있는 "수승대(명승 53호)"는  네가지 이름이 있는데

신라.백제때는 사신을 전송하던 장소로 수송대(愁送臺)라 불렀으며,

조선시대에는 인근 황산마을에 살던 요수(樂水) 신권(愼權)선생이 암구대(巖龜臺)로,

그뒤 1543년에 퇴계 이황선생이 수승대(搜勝臺)로 개명하여

현재까지 불려지고 있으며,

신권의 후손들은 선조의 호를 따서 요수대(樂水臺)라 부르고 있다.

 

7.용암정(龍巖亭)

 

 거창 월성계곡의 용암정 일원은 국가지정 명승제88호인데

용암정은 임훈의 후손 임석형(1751~1816)이 조부와 선친을 따라

노닐던 월성계곡 용암에 1801년 지은 정자이며 계류(시냇물),

급류, 소(늪) 등 자연경승이 조화를 이룬다. 

용암정은 자연석을 주춧돌로 삼아 지은 정자로 전통경관과

역사문화환경이 복합된 자연유산으로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이  정자는 네방향 모두 각각 다른 이름인

"용암정,반선헌,청원문,환학란"이란 현판이 붙어있다

 

 

용암정의 주인이었던 임석형이 용암정을 노래한 시는다음과 같다

 

태곳적 반석위에 터를 열어 뜰을 삼고

삼대동안 경영하여 이 정자를 지었네.

명승이 빼어난 수석은 조물주가 만든 것

별천지의 산수경치 지형도 신비롭네

 

쌍쌍이 날던 백로는 모래톱에 앉아 졸고

가닥가닥 늘어진 버들 난간 옆에 푸르네.

지금 사람 그 누가 내 마음의 즐거움 알랴

강산에 높이 누워 제일 관문 걸어 두었네

 

 

8.모암정(帽岩亭)

 

모암정은 조선 명종 선조 때의 문신

효자 고사옹 임훈(號 枯査翁 林薰 : 세칭 갈천선생)의 후손으로,

고종 때 절충장군행용위부호군( 折衝將軍行用 衛副護軍) 및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使) 모암 임지예(帽巖 林芝藝)가 공부하며

시를 읊조리던 곳으로, 그는 정려(旌閭)에 배향된 이름난 효자로

후손들이 조상을 추모하여, 일제 강점기인 1921년에 정자를 짓고

이름하여 "모암정(帽巖亭)"이라 하였다.

 

9.가선정(駕仙亭)

 

가선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갈천 임훈 선생이 노닐던 곳으로, 거창 북상면 갈계리 임씨 고가가 있는

갈계리의 바로 옆 갈계숲 안에 가선정이 있다.

 

갈계숲속의 가선정

 

갈계숲은 갈천 임훈 선생이 태어나 자라고 묻힌 곳으로

2~3백년생 소나무, 물오리나무,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갈계숲에는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경모재가, 나란히 있으며

갈천 건너에는 갈천서당이 있다

 주변관광지로는 월성계곡, 송계사, 수승대, 갈계리 임씨고가,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정온선생생가, 금원산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10.도계정(道溪亭)

 

도계정은 가선정 뒤에 있는데 임훈의 동생 도계 임영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1935년 후손들이 선조를 기리기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도계정 측면

 

도계정 바로 뒷편에 있는 경모재

 

 

 

제일 앞이 가선정이고 뒤가 도계정 그 뒤가 경모재이다

 

11.병암정(屛巖亭)

 

병암정은 임훈의 동생 임운을 기리기위해 지은 정자로

제일 뒷편에 있으며 규모도 한 칸으로 작다

 

갈천과 정자가 있는 갈계숲

 

                                             

12.사선대(四仙臺) 

 

사선대는 월성 계곡 상류에 있는 명소로써, 동춘동 송준길 선생이

이곳에 은거 하면서 머물러 송기 또는 송대라고 불렀었다.

1909년 고종의 5남 의친왕 강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전승지 정태균을

찾아와 머울면서 북상 위천지방의 우국청년들과 만나 사선대 일대를 뒷날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훈련장과 병사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하던 중

일제에게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구국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이곳은 왕실의 선원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선대라 부른 것을,

대암 포갬이 4층이고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라고 부른다. 맨 아래 바위면에 전서로 사선대라고 새겨진 곁에

경상 감사 김양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마치 기단위의 3층 탑을 방불케 하는 사선대 맨 위 바위 마치 거북 같기도 하고,

봉황새 모양 같기도 한데, 그 머리 부분이 남덕유 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선대는 그 경치가 기이하고 빼어나 18세기의 화가 김윤겸과 김희성이,

이송대라는 제목으로 그린 담채 수묵도가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다.

참고로 화첩에 남은 원학동 산수는 1770년경 진주 근천의 소촌 찰방을 지낸

진재 김윤겸이 남긴 진경산수화첩 가운데 원학동의 절경인 가섭암, 가설동폭,

순암, 송대 등 4점의 그림이 들어 있고, 지금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