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당(九岡堂)은 동구 지묘동(일명 서원 연경동) 인천채씨 집성촌이 있던 마을의 재실인데,
현재 연경지구 보금자리주택(아파트)을 짖기위해 기존의 건물들은 모두 헐어버리고
단지 구강당만 폐가처럼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기반공사가 한창이다.
기록에는 연경서원이 대구부에서 20리쯤 떨어진 팔공산 기슭에 위치하고 윗마을은 지묘동이며,
아랫마을은 무태였으며,또 아래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위쪽으로 2리쯤 왕산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화암이 있다고 적혀있어 이 구강당 인근에 대구 최초의 연경서원이 있었던것으로 추정한다
이 구강당은 지표조사시 문화재청으로 부터 보존조치가 되어
향후 연경서원과 함께 적정한 장소에 이전 복원될 예정이라 한다.
구강당이 있는 연경지구
중간에 보존 조치중인 구강당 건물
보존중인 구강당
이 구강당은 120여년 전에 건립된 와가(瓦家)로 안채는 이보다 늦은 1920년에 지었다.
이 집은 인천채씨 집안의 개인 주택이었으나 사랑채에 구강당(九岡堂)이라는 현판이 있었다.
기반시설 공사중인 현장 모습
*연경서원
연경서원(1563∼1871년)은 대구 최초의 서원으로
농암 이현보의 아들 숙량이 주관하고 수성현 파잠(파동)에 살던 계동 전경창이 도와 건립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성주의 영봉서원, 영천의 임고서원, 경주의 서악서원 등 서원건립운동이 확산일로에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서원은 지방수령이 주도하고 선현을 제향하는 기능을 우선시한 데 비해
연경서원 건립은 지역유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제향보다 교육과 강학이 위주였다.
퇴계 이황은 서원십영(十詠)에 포함된 9개 서원 가운데 연경서원을 포함시키고 문헌상 직접 편액을 쓴 것으로 확인된다.
연경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나 1602년 태암 이주, 낙재 서사원,
모당 손처눌, 괴헌 곽재겸 등 대구유림 2세대에 의해 중건됐다.
연경서원은 경상감영이 있는 대구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경상도관찰사와 대구부사 등과 같은 고급관리와 많은 유림이 방문했다.
1613년에 사당이 처음 세워졌을 때 이황을 모셨고. 9년 뒤인 1622년(광해군 14) 정구를 배향하였다.
1706년(숙종 32)에는 정경세를 배향했으며. 1635년부터 전경창,
1707년(숙종 33)부터는 이숙량을 제향하기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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