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역은 1925년 영업을 개시한이래
80여년간 수많은 애환과 사연을 실어나르다가 2004년 7월 15일 여객업무를 중단하였다
2006년 11월 1일부터는 화물열차까지 서지 않는 무배치 간이역이 되어 방치되었었는데
지난 2018년 8월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단장을 하여 개방하였다
고모역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이다
동촌방향으로 조금만 올라오면 고모령이고 이 고개를 넘으면 바로 망우당공원이다
이 역사 건물은 1949.11.12 화재로 소실된것을 1957.9.29 새로 지은 건물이다
고모역 전경(바깥쪽에서)
경부선 철길
육교
새로 단장한 역사 내부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관련 자료들
비나리는 고모령 영화관련 자료들
가수 현인의 음반자료
옛 음향기기들
추억의 축음기
라디오
역무원복 착용 체험 가능
어린이들 체험교육을 위한 철도교통관련 표지판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
유 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 인 노래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이 노래는 1948년, 작사 작업 독촉에 시달리던 유호가
대구에 고모(顧母)라는 지명을 발견하고 "비내리는 고모령"을 작사했다고 한다
여기에 박시춘이 곡을 붙이고 현인이 노래했는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행가가 되었다 -
노래비 뒷면
고모령과 고모령에 얽힌 전설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라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그 산은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 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다.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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