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마지막 일정으로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 가족성당과
까사 밀라 그리고 카사 바트요 건물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 가우디성당은 바로셀로나의 엽서 그림에 꼭 등장하는 건물이다
옥수수모양의 이 성당은 바로셀로나의 상징이 되었으며 스페인의 천재건축가 가우디에 의해
1882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1926년 죽기전까지도 매달렸던 대규모의 성당이다
헌금이나 입장료 수입이 생기면 공사가 진행 되기때문에
그의 사후에도 계속되어 2019년 현재까지 137년째 공사를 하고있으며
현재는 수석 건축가 조르디 파울리에 의해 2015년 기준, 약 70%까지 완성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200년을 예상하였다고 하는데 요즘은 최근의 공법을 사용하여
대부분의 교회 건축물은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며
세부적인 요소들은 2032년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추기
성당앞 연못에서 보는 가우디성당 전경
성당 가까이 가며 거리에서 보는 성가족 성당
바로 입구에서
성당앞 연못으로 가는길의 거리악사
성가족성당의 웅장한 자태
이 성가족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였다.
젊은 건축가에게 맡기면 공사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교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그는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전차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원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사서 허가해 준 것이다.
이 가족성당은 모두 동서남북 4개의 건물로 이어져 지어지는데
디자인은 예수의 탄생(Nativity), 고난(Passion), 영광(Glory)을 상징하는
총 3개의 파사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탄생을 상징하는 파사드만이 가우디의 생전에 완공되었으며
이 때문에 이 파사드는 상세한 장식과 자연물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들 상징과
메타포들로 가득한 가우디의 스타일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
탄생 파사드는 4개의 첨탑이 솟아있으며 그 이름대로 예수의 출생에 봉헌된 파사드이다.
두번째 파사드는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예수가 담당한 고난과 십자가형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가우디는 영감으로 가득한 스케치를 남겼으나
후대의 건축가들에게 그들 자신의 영감을 병합시키기를 독려했다.
세 번째 영광을 표현한 파사드는 최대의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성가족 성당에서 가장 놀라운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건물이 완성되면 이 성당의 탑은 총 18개가 되는데
중앙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가장 큰 탑인
구세주의 탑(Torre del Salvador)으로 유럽 전역에서 가장 높은 172.5m나 된다
다음은 성모마리아의 탑으로 160m, 전도자를 위한 4개의 탑,
그리고 3개의 파사드에는 사도를 위한 탑으로 각각 4개씩 12개 등
총 18개의 첨탑을 세워 성서의 내용을 나타낸다
현지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동쪽 건물은 예수의 탄생을, 북쪽 건물은 예수의 33년 전 생애를,
서쪽 건물은 사망을, 남쪽 건물은 부활을 소재로 하여 지어진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는 동쪽 건물조각
성당앞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
동쪽문으로 드디어 입장
-성당폭파 예비음모테러범이 적발되면서 엑스레이 검색등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대부분 자연 채광이며 전등은 일부만 쓴다
천장
바닥의 동방박사 세사람
서쪽문 입구
-동쪽의 반대인 서문이지만 출입은 동문박에 안된다-
성당의 서쪽은 ‘예수 수난’ 파사드다.
이 파사드의 건축은 2002년에 시작되었으며 승천한 예수의 영광과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이 지옥과 최후의 심판과 함께 디자인되어 있다.
예수의 수난 장면을 재현해 낸 사람은 조세프 마리아 수비락스(Josep Maria Subirachs)라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조각가로, 1987년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작업을 맡았다.
예수의 수난, 고통, 죽음, 희생이라는 주제를 다룬 조각은
서쪽 하늘에서 해가 질 때 점점 어두워지는 풍경과 드라마틱하게 어울린다
서문쪽에서 지하 박물관으로 가는곳으로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서문 출입구 안
유리거울로 천장을 보며 내얼굴도 동시에 볼수 있는곳
1층에서 내려다 보는 지하의 관람객
성당 건축역사를 영상화면을 통해 보며 쉴수 있는 곳
가우디 영상
남서쪽 건축상황
남쪽 건물
-서쪽 일부와 남쪽은 현대의 기술인 기중기와 시멘콘크리트를 이용하여
골조공사를 하고 그 위에 돌을 붙인다고 하는데
과거에는 돌에다 구멍을 뚫어 철근을 넣고 돌을 쌓으면서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성당 맞은편 가게에 비치된 완성후의 성당모형조각
기념품 가게
성 가족성당을 보고 다시 가우디 건물로 간다
카사 밀라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는 1852년에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레우스에서 태어났다.
건축가가 되고 난 뒤 처음에는 네오고딕풍의 건축을 지었으나
점차 자연의 요소를 추가해 나가면서 뾰족한 점과 직선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연의 모티프에서만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근대의 새로운 기술이나
재료 등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카사 밀라가 그 대표적인 예다.
엘리베이터를 건물에 넣은 초기 바르셀로나 건물 중 하나이기도 하고,
지붕 아래의 공간을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의 다락으로 만든 최초의 바르셀로나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축을 주문한 사람은 페레 밀라라는 사업가였는데,
자신의 가족이 거주할 공간, 세를 줄 공간 등을 만들기를 원했다.
당시 이곳은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와 그라시아 지구를 연결해 주는 곳이면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건축주의 이름 때문에 이 집을 카사 밀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건물입구
건물 1층 가게
-1층 가게만 무료이고 다른곳은 입장료가 있다-
바닥의 가우디 조각문양
구엘공원에 있는 조형물들의 사진
길 건너에서 본 카사밀라 건물
카사밀라 거리
바로셀로나 시티투어 버스
옆면의 카사밀라
입구 모습
카사밀라에서 추억을
가우디건축물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는 공사중으로 볼수 없었다
카사 바트요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로,
바다를 연상시키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외관은 단연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카사 바트요는 바르셀로나의 사업가였던 바트요가 의뢰해 설계한 것으로
1905년부터 약 3년간 지어진 건물이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가는 바로셀로나 거리풍경
바로셀로나여 안녕
드디어 바로셀로나 공항에 도착
공항 대합실
터키 이스탄불에서 갈아타고 대한민국으로 고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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