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는 1904년 5월 18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아버지 이가호와 어머니 허길의 6형제 가운데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에 기록된 이름은 원록(源祿), 두 번째 이름은 원삼(源三)이었고 훗날 활(活)로 개명했다.
자(字)는 태경(台卿),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다.
일제 강점기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는
일찍부터 각종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의 불꽃을 피웠고,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에 그의 시비가 있는 생가를 찾아본다
그의 생가터인 포도공원에 세워진 청포도 시비
청포도
- 이육사 -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돗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생가터 일원에 조성된 포도공원
생가터인 육우당유허지비
초가(草家) 시비
초 가
- 이육사 -
구겨진 하늘은 무근 애기책을 편듯
돌담울이 고성가티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밑에 황혼이 무쳐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묵화 한폭 좀이쳐
띄엄뛰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압밭에 보리밧헤 말매나물 캐러간
가신애는 가신애와 종달새소리에 반해
빈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나 부끄러워
술레짠 두뺨우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네줄에 비가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압내강에 씨레나무 밀려나리면
절믄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벌로 항구로 흘러간 몇달에
서릿발 입저도 못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라가고
곰처럼 어린놈이 북극을 꿈꾸는데
늘근이는 들근이와 싸호는 입김도
벽에서려 성애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의 밀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흉폐된 지역에서-
생가터인 포도공원과 붙어 있는 목재고택(穆齋古宅)
-x퇴계 이황의 후손인 조선후기의 문신 목재 이만유(李晩油)가 살던 집이다-
이육사 문학관 앞에 세워진 이육사 좌상과 "절정" 시비
절 정 (絶 頂)
- 이 육 사 -
매운 게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문학관
-이육사 문학관은 생가터에서 불과 200여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문학관 옆에 복원한 이육사 생가
이육사를 상징하는 시 "광야"는
대한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염원하는 시어로 가득 차 있다.
1945년 12월 17일자 자유신문에 발표된시다
광 야
- 이 육 사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에 휘날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벌 하뎐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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